세상에 태어나 자신의 나무를 갖게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남편은 자신의 나무를 가지고 있다. 소나무인데, 남편의 시골 할아버지 댁 마당에 아직도 잘 자라고 있다. 남편의 나이와 똑같이 30여 년이 넘은 소나무는 늠름한 자태를 뽐낸다.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성격이라 남편의 속내가 참 궁금하다. 자신의 나무를 갖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아버님은 할아버님처럼 나무 가꾸기를 좋아하신다. 대학교도 조경과를 나오셨다. 퇴직 4년 전 시골의 땅을 사셨다. 나무를 기르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그 땅에 지내실만한 작은 공간을 마련해놓으신 뒤 나무를 심고, 퇴근하시면 어김없이 매일 가서 물을 주셨다. 가지 치고, 수형을 다듬으셨다. 4년 동안 거의 매일 출퇴근하다시피 했던 그 땅은 원래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변해갔다.
퇴직하신 뒤 기다리셨다는 듯이 아버님은 새로운 직장을 얻으셨다. 나무 돌보미란 고대했던 직장을 얻으신 것이다. 본인이 4년 동안 일구어오신 그 땅을 매일 9시 출근, 5시 퇴근하시며 직장처럼 돌보셨다. 그렇게 지내신지도 벌써 3년 정도 되는 것 같다. 아버님은 퇴직 후 흔히들 걸린다는 병에도 걸리지 않으셨다. 무료해하실 수도 없었다. 자연을 따라가는 삶은 그런 것이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것처럼 매일 달라지는 새로운 세상에 탐험하며 살아가는 것. 무료할 틈이 없으셨고, 우울할 틈도 없으셨다. 그렇게 바쁘게 나무에 매달리며 사셨다.
자신의 퇴직을 위해 무려 4년을 준비한 아버님의 치밀한 준비성에 진심으로 놀랐다. 퇴직 후 곧바로 정상 궤도에 올라간 아버님의 삶이 대단해 보였다. 아버님을 보며, 나 또한 퇴직 전에 나의 길을 미리 일구어놓고 하나씩 준비해나가야지만 멈추지 않는 삶이 가능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글을 쓰는 이유 또한 그 첫 단추이기도 하다.
이렇게 열심히 가꾸어오신 아버님의 동산을 보며, 임신했을 때 아버님께 특별히 부탁드렸다. 그곳에 예린이의 나무를 심어달라고. 아버님은 당연하다며 흔쾌히 받아들여주셨다. 호두를 닮아 흔치 않은 백도화를 심어주셨다. 치밀한 준비성을 가진 분 답게 미리 준비해놓으셨다가 호두가 태어난 그날 바로 심으셨다.
내가 호두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았던 것처럼 아버님도 호두의 나무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셨다. 호두가 뒤집고, 기고, 걸어가듯 나무 또한 점점 성장하고, 꽃망울을 만들어갔다. 호두는 걷게 되었고, 나무도 꽃이 피었다.
오늘 처음으로 호두는 자신의 나무를 보았다. 아버님은 손녀 나무를 손녀처럼 생각하셔서 튤립으로 예쁘게 꾸며주시기까지 했다. 튤립을 매만지고, 나무 주변을 빙글빙글 걷는 호두를 보니 마음이 뭉클했다.
나의 나무를 가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내가 세상에 뿌리내리듯 세상의 흙에 점점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나의 나무. 내가 세파에 흔들릴 때 나무도 바람에 흔들리고, 내가 행복해할 때 나무도 햇볕을 느끼며 두 손을 쫙 펼치겠지. 나와 같이 함께 삶을 겪고, 나이 들어갈 나의 나무. 나의 나무를 가진다는 건 아마도 그렇게 근사한 일이 아닐까.
호두가 부러워진 하루였다. 호두를 닮아 하얗고 예쁜 복숭아꽃을 바라보며, 호두의 인생 또한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인생이 되길 소망했다.
호두나무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원래 아기의 나무를 만들어주는 게 아니야. 나무가 병들어 죽으면 어떡해. 그건 불길한 징조잖아.
아기의 나무에 대해 굳이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시는 그 태도에 마음이 꽤 언짢았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미신을 믿지 않는다. 나무가 병들어 죽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호두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호두가 가져야 할 것은 긴 겨울을 지나 마침내 꽃을 피워낸 나무의 아름다운 노력이지 자신과 관계없는 죽음이 아닐 것이다.
아버님의 정원에는 마음을 끄는 또 다른 나무가 있었다. 앵두나무였는데, 많은 풍지풍파를 겪고 모든 가지가 잘린 채 호두 키보다 작은 나무가 되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어린 잎을 피워낸 이 나무를 보고 마음이 뭉클했다. 풍지풍파를 겪는 것 자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시금 어린 잎을 피워낼 수 있는지 그 저력이 중요한 것이다.
아기 나무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는 앵두나무를 보며 씻어냈다.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호두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나무의 노력을 본받으란 것이다. 모든 것을 빼앗겨도 다시금 나의 꽃을 피워내는, 다시금 나의 이야기를 시작해내는 그 마음을 본받으라 말해주고 싶다. 그 누구도 너의 그 마음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고.
나의 나무를 갖는다는 것은 어쩌면 즐거운 것, 어쩌면 슬픈 것.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가치 있는 것. 두려움은 가치를 이길 수 없다. 어느 책 구절에서 본 문장이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