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다가올 때

똑똑똑, 글이 문을 두드리는 그 순간에 대해

by 빗소리

글쓰기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평생 동안 그래 왔다. 어릴 적 일기부터 시작하여 꾸준히 글을 써왔다. 때론 친구와 주고받는 편지이기도 했고, 첫사랑에게 전했던 백 통의 편지이기도 했으며, SNS에 적어 내려 간 독백이기도 했다. 그렇게 모양을 바꿔가며 내 곁을 지켜온 글은 지금 브런치에 에세이 형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는 책을 낼 것이다. 독립출판으로라도 낼 것이기에 반드시 출판할 것이다. 이왕이면 출판사의 도움을 받고 싶긴 하다. 나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올 책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내 능력보다는 좀 더 나아진 모습으로 세상에 나오길 소망하기 때문이다.


조금 우스운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사실 나는 이 일을 위해 미리 기도하고 있다. 책을 내게 해달란 기도가 아니다. 내 글이 하루 동안 불나는 발바닥으로 살아온 누군가에게 깊은 밤 한 줌의 위로가 되길 바라는 나의 출판 목적, 그 목적을 잘 이해해줄 출판사를 만나면 좋겠단 기도이다. 또 단순한 관심 끌기를 위해 제목이나 글의 내용을 본래 의도와 다르게 바꾸지 않고, 나의 진심을 최대한 보존시켜줄 좋은 편집자를 만나길 원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만드는 과정의 모든 순간이 배울 수 있는 순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책을 내기 전보다 책을 낸 후의 내가 그 과정 속 배움을 통해 지혜롭고 행복해지길 원한다. 미리 기도하는 이유는 갑자기 닥칠 순간에 준비된 모습으로 있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미리 해두면 분명 우왕좌왕하며, 방향감을 잃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책을 빨리 출판하고 싶지 않다. 10년, 20년이 걸려도 상관없다. 여러 권을 내지 않아도 된다. 단 한 권이라도 돈을 주고 내 책을 살 독자가 그 돈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책을 만들고 싶다. 문장의 밀도가 높아 책값이 아깝지 않은 책이었으면 한다.


천천히 출판하고 싶은 이유가 또 있다. 아직은 작가 지망생이기 전에 본업인 주부에 충실하고 싶다. 이렇게 하나씩 모아둔 내 글이 흐르고 넘치는 시기가 올 때 나의 원고를 들고 출판사의 문을 두드려봐야겠다 생각해본다. 지금처럼 차곡차곡 조금씩 나의 사유의 탑을 쌓고 싶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 늘 노력해왔다. 뭐 쓰지, 뭐 써야 할까 머리를 쥐어뜯으며 하루 종일을 보냈다. 오늘 문득 든 생각이 글은 쓰는 게 아니라 다가오는 것이구나였다. 그저 가만히 기다리다 글이 다가오면 나는 그 글을 글자라는 옷을 입혀 세상에 내보내면 된다. 글이 내게 사뿐사뿐 다가오도록 차분하게 기다리면 될 일이었는데, 왜 그리 자신을 쪼아댔을까. 어리석음이 부끄럽다.


오늘 쓴 두 글은 글이 다가오기까지 기다린 산물이다. 잘 썼는지 못 썼는지가 중요하진 않다. 내가 글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늘 조급함에 동동거렸던 내가 이렇게 기다릴 수 있다는 사실이 기특했다.


글이 내게 또다시 다가와 문을 두드릴 때를 위해 그저 나의 순간에 몰입하며 걱정 없이 지내야겠다.


엄청난 필력을 자랑하는 작가가 되기에는 깜냥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그리 힘든 길을 가고 싶지 않다. 난 행복한 작가이고 싶다. 오솔길을 느리적느리적 걸으며 조금 부족한 필력이어도 이 길을 즐겁게 걷고 싶다. 조금 부족하지만 나도 행복하고 읽는 사람도 행복한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아프니까 철이 든다. 아프니 잘 쓴 글 보다 행복한 글을 쓰고 싶단 생각이 든다. 아파서 감사하다. 모든 게 감사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I'm beautif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