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곧 만남이다. 요즘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느린 사람이다. 누군가를 만나 내 마음속에 그 사람의 공간을 만들기까지가 참 오래 걸린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도 느리게 반응한다. 물론 예의상 말과 행동을 본 순간 즉각적인 반응을 하긴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천천히 생각하며 혼자서 감동하고 고마워하는 편이다. 그래도 부정적인 마음은 웬만하면 스스로를 위해 그 자리에서 털어내려 노력한다. 되도록 긍정적인 것들만 생각의 되새김질을 하고 싶다.
단순함의 미학을 사랑하는 사람인지라 번잡스러운 것은 딱 질색이다. 미디어의 발달로 온라인 공간이 생겨나고, 카톡이 생겨나며 딱 질색인 상황이 꽤 자주 펼쳐졌다. 사람들과 매시매분마다 카톡을 주고받으며 일상을 전달하는 것에 매우 취약한 편이고, 단톡방을 괴로워하는 편인데, 그 두 가지가 동시에 펼쳐질 때는 정말이지 도망가고 싶어 진다. 가뜩이나 반응이 느린 사람이 빠른 반응을 하기 위해 애쓴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덧붙이는 말이지만,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을 지인들과의 카톡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내가 말하는 카톡은 친구라 하기도 지인이라 하기도 애매한, '그저 조금' 아는 정도의 분들과 의미 없이 이어지는 대화를 말한 것이다.
이런 괴로움과 달리 온라인 공간이 내게 주는 기쁨 또한 크다. 어쩌면 오프라인에서라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과 만남을 가질 수 있고, 거리와 시간의 장벽을 넘어 나와 같은 울림을 가진 사람과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놀랍고 소중한 일이기 때문이다. 최근 2년 사이에 그런 만남이 꽤 많았는데, 아이 육아로 우울하고 힘들만한 시간에 그런 만남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내성적이라 오프라인에서는 정말 친하지 않으면 내 진심을 누군가에게 말하기가 어려운데, 온라인에서만큼은 좀 더 당당하게 내 진심을 말할 수 있고, 내가 용기를 낸 만큼 다른 사람의 진심 또한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아마도 온라인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일이다. 요즘 시대에 태어난 것에 감사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특히 내 성격에 비추어보면 더 그렇다.
진심과 서로를 깊이 생각하는 마음은 서로를 빛나게 한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나만큼 나를 생각해준다는 사실은 삶이 선사해주는 아름다움이다. 나 하나 생각하기도 벅찬 삶 속에서 누군가에게 틈을 내어준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 틈을 서로에게 허락함으로써 우리는 그 틈에 잠시 앉아 쉼을 얻는다.
나는 호두가 그런 틈을 아는 어른으로 자라났으면 좋겠다. 호두의 본명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의 틈을 넉넉히 내어주며, 때론 다른 이의 틈 속에서 자신의 지친 마음을 위로받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그 틈에 대한 감각은 호두에게 확실히 가르쳐주고 싶다. 누군가에게 내 틈을 보이는 것은 귀찮고 의미 없는 일이 아니라 매우 소중한 일임을. 나를 우습게 볼까 두려워하지 말고 너의 사랑을 자신 있게 펼쳐 나가길. 그렇게 받는 상처는 상처가 아니라 훈장이니까. 남이 나에게 틈을 보여주면 가볍게 넘기지 말고 멈추어 서서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기를. 그 틈을 보여주기까지 그 사람의 수많은 고민과 용기를 꼭 알아주기를. 그 틈 속에서 너 자신의 힘든 마음을 잠시 누이고, 회복된 만큼의 고마움을 그 사람에게 진심으로 표현하기를.
틈의 감각이 호두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 것이라 생각한다. 매일 호두를 위해 기도한다. 사람의 복을 달라고. 사람의 복 속에서 호두의 삶이 진심으로 풍성하길 바란다고.
삶을 사는 건 누구나 같다. 어떻게 사느냐는 분명히 다르다. 마치 그냥 커피와 TOP가 다르다는 광고 문구처럼. 삶을 좀 더 진하게 살고 싶다면 사람으로 인한 상처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상처를 훈장으로 여기며 맹렬히 달려들어야 한다. 내 삶 속에 사람들의 발자국을 남겨야 한다. 물론 나는 인간관계의 양은 지양한다. 굳이 많은 인간관계가 필요한 건 아니다. 나에게 유의미한 질 높은 인간관계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명만 있더라도 그 삶은 매우 풍성한 삶이라 생각한다. 다른 무엇보다 인간관계는 양보다 질이다.
내 삶에 찾아와 준 진심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새벽이다. 오늘 좀 일정이 바빠 호두를 재우다 함께 지쳐 잠들었는데, 새벽에 갑자기 눈이 떠지고, 하루를 곰곰이 되짚어보니 이런 생각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곤히 잠든 딸 옆으로 다시 가서 손을 꼭 잡고 잠들어야겠다. 내게 찾아와 준 가장 큰 진심인 그녀 옆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