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은 무척 괴로웠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이었다. 가족 간의 갈등에 휘말려서 이쪽의 요구 아니면 저쪽의 정반대 요구를 선택하길 강요당했다. 가족 모두와의 관계가 중요했기에 나는 금세 무기력함을 느꼈다. 무기력함에도 불구하고 몰아쳐지는 상황에서 나는 한쪽을 선택했고, 다른 가족에게 분노와 심한 말까지 들었다.
물론 나의 잘못도 있었다. 뒷일을 두려워하지 말고 아예 모두와 연락을 끊고 뒷짐을 지고 있는 게 맞았겠다는 판단이 지금에서야 든다. 마음 약한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갈등에 자연스레 휘말렸고, 모두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고 싶다는 생각은 결국 갈팡질팡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모두를 화나게 했다.
저녁에 있던 일인데도 불구하고 지금도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다. 분노는 점점 더 선연해져서 내 심장을 더 뛰게 한다. 가족이란 단어를 모든 것을 용납하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만 같은 그들의 행동에 치가 떨렸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는 내 평소 철학은 가족들에 의해 어김없이 무너질 때가 많았다.
그들을 위해 이해하고 싶지 않다. 용서하고 싶지도 않다. 오늘만은 내 분노의 감정에 따라 충분히 분노하고 싶다. 어제 TV를 보다가 심리학자가 나와서 우울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충분히 애도하지 않고 넘길 때 그 파편들이 모이고 모여 우울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심리학자의 수많은 이야기 중 유독 그 한 문장이 남았다. 다른 사람들을 늘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며 강박을 가지고 있는 내가 자주 하는 실수였기 때문이다. 정작 엉망이 되어버린 내 감정을 뒤로 뒤로 넘긴 채 아무렇지 않게 생활했다. 이따금 그 정리되지 않은 서랍은 내게 우울이란 이름으로 발견되었고, 오래도록 그 우울 속에 힘겨워하는 시기를 보낼 때가 있었다.
그들을 위해 이해하고 싶지 않지만, 내 자신을 위해 이 상황을 이해하고 싶다. 자신의 감정조차 제어가 안될 텐데 내 감정을 헤아릴 수나 있었을까. 아마 나보다 더 고통스러운 밤을 보내고 있을 가족의 상황을 이해하고 싶다. 적어도 나에게는 글이 있고, 책이 있으니까. 힘든 감정을 글로 풀어내며, 나의 감정을 두 눈 시퍼렇게 직시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는 있으니까. 어떤 책을 보던 내 상황 속에 필요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일은 늘 일어났으니까. 내게 있는 이 귀한 것들로 인해 조금 더 수월하게 감정의 정상 범주로 돌아올 수 있어서 감사하고, 조금이라도 이성을 찾고 이 상황을 이해해보려 노력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나의 우유부단함은 내 잘못이 아니라 말하고 싶다. 적어도 내 안의 사랑이 우유부단하게끔 만들어준 것이기에 말이다. 누구도 상처 받기 원하지 않았던 내 마음을 잘했다 말해주고 싶다. 모두 나의 우유부단함을 비난했지만, 나만큼은 내 우유부단함에 대해 다독여주고 싶다. 착한 네 마음이 지금은 비난받지만, 그 착한 마음을 스스로는 알고 있다고. 그리고 그 마음들이 모여 결국 네 안의 더 단단한 착함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우울한 밤이다. 남보다 가족이 더 멀게 느껴지는 밤이다. 며칠 지나면 또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싫어지는 밤이다. 그래도 아마 난 이 밤과 이 글을 며칠 뒤면 잊어버릴 것이다. 가족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싫고, 그래서 좋기도 하다.
오늘의 나를 글로서 꼭 안아주고 싶다. 너에게 상처 줄 사람은 있을지언정 네 본연의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무도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까짓 상처 3일이면 낫는다고. 그렇지만 가족들을 사랑하고, 네 자신을 사랑하는 너의 영혼은 끄떡없다고. 눈물이 난다. 그래, 나는 끄떡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