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선 작가의 에세이를 좋아합니다. 5월 말에 나온 따끈따끈한 그녀의 신작을 읽고 있는데, 딸과 함께 떠난 여행기입니다. 외교관이었던 아버지가 포르투갈에서 유학생활을 보내시게 되어 임경선 작가도 리스본에서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최근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린 시절 부모님과 참 행복했던 그 리스본에 돌아가 딸과 함께 아버지를 추억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장소를 하나씩 다니며, 임경선 작가는 아버지를 추억합니다. 그 중 이 한 문장이 마음에 훅 들어왔습니다.
“자식은 정말 부모의 모든 것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소설가 장 그르니에는 그의 책 ‘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달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한 쪽만 보여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들의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서 우리는 짐작으로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이다.
18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저는 ‘아버지’로서의 모습밖에 알지 못합니다. 남편으로서 그가 어떠했는지, 아들로서는 그가 어떠했는지, 친구로서는 또 어떠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친구로서의 그를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봅니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 황망했던 아버지의 친구는 엄마 계좌에 몰래 돈 100만원을 부조로 전달합니다. 장례식 때 내면 아마도 엄마 몫으로 제대로 못 돌아갈까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상사는 아버지의 과로사가 자신의 책임도 있다 생각했는지 많이 미안해했습니다. 엄마도 한동안 그를 미워해 명절마다 오는 선물을 거절하기 일쑤였습니다. 한 철이면 끝나겠지 했던 그 미안함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을 보면 그의 미안함이 진심이었다는 걸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단순한 미안함보다는 아빠를 아끼는 마음 또한 실려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친구로서의 아빠를 잘 모르지만, 죽음 뒤에도 이어져 오는 진심들을 보며 적어도 아빠는 누군가에게 진실했던 사람이라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임경선 작가처럼 저도 아빠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아빠의 여러 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장소에 가서 그를 애도하며 지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 그리 급하다고 남겨두면 큰일 나는 듯 그의 물건들을 정리했을까요? 마치 집에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엄마와 나는 황급히 아빠의 흔적을 지웠습니다. 아마도 너무나 고통스러웠기에 그랬을 거라 생각하지만, 우린 충분히 그를 애도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애도되지 못한 감정이 우울감으로 오래도록 남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제가 죽으면 제 딸 또한 엄마로서의 제 모습만 기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어쩐지 조금은 아쉽습니다. 아빠의 다른 면을 궁금해하듯 딸도 여러 면의 엄마가 포함된 엄마의 총체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박준 시인이 쓴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지만’에서 박준 시인의 누나는 젊은 나이에 사고사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유품을 정리하다 나온 누나가 지인들과 주고 받은 편지. 신발 상자 3개가 넘게 남겨 놓은 그 편지들 중 고등학교때 누나가 친구들과 주고 받았던 편지를 읽으며 박준 시인은 눈물을 흘립니다. 급식실의 밥이 떨어져서 밥을 못 먹었다는 고등학생 누나의 허기가 너무 슬퍼서 말입니다.
그 산문집을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딸이 나의 이면을 알 수 있도록 나 또한 소중한 편지들을 남겨 놓아야겠다고 말입니다. 그동안 미니멀 라이프를 한다며 숱하게 버렸던 과거의 편지들을 생각하니 슬픕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편지를 써왔기에 더 아쉽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제게 유의미했던 편지들을 딸을 위해 남겨 놓아야겠다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