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참 좋아했는데, 갈수록 시장 구경하기가 어려워지는 세상이 아쉽습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마트가 편하면서도 왠지 사람 사는 맛, 멋을 잃고 살아가는 것 같아 슬픕니다. 내가 지금 건네는 돈을 받고 행복할 이가 아닌 그를 대신하는 누군가와 무표정하게 돈을 주고 받으며 물건을 사는 것이 즐겁지 않습니다.
제가 사는 친정 동네는 일주일에 한 번 장이 열립니다. 2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장이어서인지 20년 넘게 터줏대감으로 자리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제가 중학교 때부터 이 장이 열리기 시작했는데, 이제 제가 낳은 아이와 함께 장 구경을 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시장 가는 길도 즐겁습니다. 떡집에서 할머니와 손주가 서로 행복한 옥신각신을 하며 일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해집니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일하신 적이 있는 방앗간 아저씨가 방앗간 앞 거리로 나오시길래 인사 드렸더니 멋쩍게 인사하십니다. 아무래도 눈빛이 저를 기억 못하는 것 같으신데, 부스스한 얼굴이 꼭 잠옷 입고 나온 기분이라 저도 말을 아껴봅니다. 그때 오토바이로 배달가시는 아저씨가 가게마다 홍보물을 던지시는데, 아주 정확하게 가게 앞에 떨어지는 것을 보며 박수가 절로 나옵니다.
초등학생처럼 엄마께서 심부름 거리를 주셨는데, 튀김집 앞 콩나물 파는 할머니께 짧은 콩나물 꼭 500원 어치만 사오라고 하셨습니다. 왜 꼭 500원인지 물어보니 김칫국에 넣어 먹는 거라 많이도 필요 없답니다. 가서 할머니께 500원 어치만 달라고 말씀 드렸더니 낯빛이 달라지십니다.
“이 사람아, 1000원에 한 묶음 파는 걸 500원만 달라하면 어떡하나?”
안파시겠다는 할머니 앞에서 몇 초 어찌해야할지 망설인 스스로가 부끄럽습니다. 아, 나는 정말 초등학생인 것인가. 엄마가 하란대로 그대로 하고 있다니. 할머니께 1000원 어치를 사들고 오면서 할머니의 수고를 내가 깎아내버린 것 같아 마음이 함께 언짢습니다. 그래서 시장에 가면 물건 값을 잘 깎지 않는데, 왜 오늘은 넋 빠진 사람처럼 생각 없이 지냈을까 반성합니다.
저희 아기는 저를 닮아 시장 구경을 참 좋아합니다. 색색깔의 과일이 바구니에 예쁘게 담겨진 모습, 탱글탱글 터질 듯한 신선함을 자랑하는 야채를 보며 저도 즐거운데, 아기도 그 풍성한 색감이 참 좋은가 봅니다. 할머니가 사주는 귤과 블루베리, 옥수수를 먹던 아기는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점심 식사를 퉁치니 미안하기도 하면서도 점심식사와 낮잠 재우기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아마도 몇십년 뒤면 이런 시장은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출 것 같아 슬픕니다. 시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보통 50~70대이고, 갈수록 심해지는 미세먼지 탓에 야외 장이 없어지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로봇의 범위가 넓어져가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마트 조차도 점점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내가 산 물건을 만든 이, 가져온 이, 파는 이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이러한 일들을 생각할 때 저는 점점 슬퍼집니다.
시장 한 바퀴 돌았을 뿐인데, 행복하고, 미안하고, 슬프고 그렇습니다. 다양하고 풍성한 시장만큼이나 제 마음도 소란스럽습니다.
사라질 슬픔에 매여 있기 보다 하루라도 아기에게 시장을 더 보여주자 생각해봅니다. 아기가 어릴 때 즐거웠던 시장 풍경을 기억하며 오래도록 즐거웠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