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생겨먹은 모녀의 세상 모든 일 각자 리뷰 : 동사서독 리덕스
/ 장국영-이선희 듀엣 무대를 기억함
앗!
어느 날 아침 아파트 화단에서 매화가 피식 피어있는 걸 발견했다.
어느새 봄.
봄이 되니 한동안 잊고 지낸 봄소식을 딸이 전해준다. “엄마, 장국영 추모 영화제 한대.”
그렇구나. 또다시, 그가 떠난 계절이 돌아왔구나.
딸은 추모 영화제를 하는 극장에서 <동사서독>을 보고 왔고 나는 넷플릭스를 열었다.
영화를 클릭하면서 놀랐던 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었는지 비디오로 봤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사실이었다. 작품의 특성상 극장에서 봤다면 인상이 또렷했을 거 같은데 아무리 기억해내려 해도 분명치가 않다. 기억을 지워주는 술 ‘취생몽사’는 영화에만 있는 게 아니다.
취생몽사(醉生夢死).
영화 후반에 나오는 설명에 의하면 그런 술은 없다. ‘취생몽사’는 장국영과 장만옥이 좋았던 시절 주고받던 농담 중 하나였을 뿐.
예전엔 스쳐 지났지만 지금은 문득 궁금해진다.
왜 젊은 연인들이 하필 ‘망각’을 농담으로 삼았을까?
그건 어쩌면 젊었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니었을지.
서로에게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서 오는 농담.
취생몽사를 얘기하며 웃던 시절 두 연인은 사랑을 굳게 믿었을 테니까.
그걸 보며 50이 넘은 나는 생각한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잊혀지고 취하지 않아도 지워질 텐데.
젊은이에게 망각은 농담일 수 있지만, 나이 든 사람에게 망각은 현실이니까.
젊은이에게 망각은 선택일 수도 있지만, 나이 든 사람에게 망각은 피할 수 없는 일상이니까.
청춘을 통과한 기억이 아득한 사람에게 취생몽사는
술의 이름보다는 시간의 별칭으로 더 와닿는다.
효능은 좀 더 광범위하다.
<동사서독>을 극장에서 봤는지 비디오 대여점에서 봤었는지 하는 사소한 문제부터
젊은 시절엔 칼끝처럼 뾰족하게 외치던 말을 어느새 뒤집어 딴소리를 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하니까.
다만 술과 시간 사이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이 스치고 간 자리의 흔적이 나름 혹독하다는 거.
술은 숙취를 남기고, 시간은 예상 못하던 ‘나’를 남긴다.
이렇게 둔감해지고 뻔뻔해지고 헐렁해진 ‘나’라니!
시간에게 어퍼컷 당한 상처를 잊기 위해 술이라도 한 잔 해야 할 판이다.
/ 중경삼림.. 은 안 좋아함
동사서독은 무협의 탈을 쓴 지독한 사랑 영화이다.
영웅의 탄생 배경이나 일화를 다루는 척 하지만 본질은 사랑이다.
로맨스는 아니다. 망한 사랑을 구차하게라도 쥐어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모용연은 상대의 빈 마음을 외면하기 위해 자아를 둘로 나눈다.
눈먼 검객은 아내가 보고 싶다는 말 대신 복사꽃이 보고 싶다 말한다.
황약사는 구양봉을 질투하면서도 그를 핑계로 장만옥을 보러 간다.
질퍽하고 찐득한 감정들은 틈틈이 쌓인 장국영의 말과 마지막 장만옥의 독백에 엉겨 붙는다.
잃어버린 후에 깨달은 사람은 잡아보려도 하지 않는다.
매달리지 못한 마음들이 더 무겁다.
나는 사랑영화에 취약하다.
절절히 우는 게 아니라 '왜 저래' 심보가 튀어나온다.
그치만 동사서독은 달랐다. 왜?
이 영화는 가장 아름다운 때를 놓친 사람들의 사랑 얘기이다.
근데 그게 장국영과 장만옥 아하(?)
영화는 원하는 걸 가질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결코 잊지 않는 일이라는 장국영의 내레이션으로 막을 내린다.
그를 추모하기 위해 튼 영화가 잊지 말라는 대사로 끝난다는 건 아주 이상한 일이었다.
영화의 말마따나 기억력은 번뇌를 낳고 인간은 괴롭다.
동시에 기억은 사라진 것을 쥘 유일한 방법이고 특권이다.
죽음으로 기억되는 삶과 기억으로 되살아나는 삶들이 있다.
세상에 취생몽사도 깔끔한 망각도 없다면 애써 잊으려 하지 말고
추모와 애도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스스로를 위하는 일 아닐까.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정말 아름답고 슬프고 잘 만든 영화지만..
양조위를 두고 바람이 났다는 건 치명적 오류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