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희주 Aug 18. 2022

하나를 보고 열을 아는 척

다르게 생겨먹은 모녀의 세상 모든 일 각자 리뷰 : 미술관 가기

엄마 (68년생)

/봐서 즐겁고, 더 못 봐서 속상하다.  


동화는 과연 어린이에게 좋은 것일까? 가끔 의심이 든다. 소위 ‘명작 동화’ 중에는 어린이가 감당하기 힘든 비극이 담겨 있을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난 지금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울적해진다. 어릴 때 읽은 ‘성냥팔이 소녀’ 탓이다. 어린아이가 추위에 벌벌 떨고 굶주리다가 길바닥에서 혼자 얼어 죽게 만드는 세상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또다시 울컥한다. 비슷한 얘기는 또 있다. 바로 ‘플란더스의 개’. 많은 이들이 그랬을 거 같은데, 동화책보다 애니메이션의 기억이 또렷하다. 1975년 일본에서 만들어져서 우리나라에서도 몇 번이나 방영됐던 만화영화.


이 작품은 원래 새드 엔딩으로 유명하지만, 나에겐 새드 엔딩을 넘어선 뭔가가 더 있다. 열 살짜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인생의 골계미(滑稽美) 같은 거라고나 할까.  

아무튼 ‘플란더스의 개’ 마지막 회.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집도 빼앗긴 네로는 파트라슈를 마을 사람에게 맡기고, 꼭 한번 보고 싶던 그림을 보러 성당으로 간다. 그림을 보려면 돈을 내야 하는데 돈이 없었던 네로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무료로 그림을 공개한다는 걸 알았던 거다. 그 당시 우리나라 tv는 흑백으로 방영될 때였는데, 화면에서는 외투도 없이 맨발에 나막신을 신은 네로가 눈을 펑펑 맞으며 걷고 있었다. 난 이미 눈물범벅이 돼있었는데, 잠시 후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 집 낡은 tv가 정신을 놔서 흑백이 뒤바뀌어 보이기 시작한 거다. 조금 전까지 하얀 눈을 맞으며 걷던 네로가, 갑자기 까만 눈을 맞으며 걷고 있는 거다! 너무 놀라 tv를 쾅쾅 쳐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때 엄마를 불렀는지 옆에 언니나 남동생이 있었는지 같은 건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어이없는 현실에 눈물에 콧물까지 터져 얼굴이 흥건했던 기억만 또렷하다. “으어어허어엉 하늘에서 까만 눈이 내려~” 이러면서 말이다. 네로의 비극에 우리 집 가정 경제의 몰락이 겹쳐져 더 슬프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까만 눈을 맞는 네로의 모습이 우습기도 했다. 나 그때 정말… 울다가 웃어서 엉뚱한 곳에 체모가 자랄 뻔했다.



이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 그림을 본다는 ‘플란다스의 개’를 보던  에피소드와  비슷한 게 아닌가 해서다. 그림에 내가 투영된다. 투영을 통해 그 작품은 내 것이 된다.


미술사나 미술 관련 책을 읽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작품을 직접 보러 다니기 시작한 건, 2008년 파리 여행 때부터이다. 처음 간 파리는 두근거림 그 자체였다. 루브르에 갈 수 있다니.

감격에 겨워 루브르에 입성해서, 가로길이 10미터에 육박하는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 앞에선 심장이 터질 뻔했고, 들라크르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은 숨을 못 쉬게 했지만, 가장 강렬했던 순간 중 하나는 알프레드 뒤러의 <엉겅퀴를 든 자화상>을 봤을 때다.


이 작품은 서양 회화 역사에서 최초의 자화상으로 꼽히는데 (그 이전에도 화가들이 자신의 얼굴을 그림에 그려 넣은 적은 있지만, 큰 그림의 일부분이었을 뿐이고, 남아있는 작품 중에서 독립적인 자화상은 이게 최초일 거라고  추정된다) 책에서 볼 때 기대했던 대로, 섬세한 그림실력은 놀라웠고 작품에서 느껴지는 패기와 자신감도 좋았다. 문제는 이 아름다운 작품이 놓인 위치였다. 뒤러는 독일 화가여서 루브르 중에서 ‘플랑드르 회화관’에 있는데, 플랑드르 회화관은 프랑스관이나 이태리관에 비해 훨씬 작다. 더군다나 그림 옆에는 빗면으로 된 천장이 가까이 있어서 왠지 갑갑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작품이 홀대받고 있다는 느낌. 섭섭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그림을 보고 돌아서며 생각했다.

프랑스 미술관에 있는 독일 작품이니 그럴지도. 기라성 같은 작품이 워낙 많으니 그럴지도. 미술사적으로 봤을 땐 그 정도가 딱히 부당한 건 아닐지도.

그림의 감동은 훼손당하지 않았지만 조금 다른 시각에서 작품을 곱씹어보는 계기였다.


미술 작품은 실제로   무언가를 남긴다. 작품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물론이고, 전시된 곳의 공기, 조명의 위치, 그날 나의 기분까지 모두 작품의 기억으로 남게 된다. 최우람의 작품을  때도 그랬다.


그는 기계적인 장치를 이용해서 움직이는 조각을 만드는 작가인데, 영상이나 사진으로만 작품을 보다가 2012년 갤러리 현대 개인전에서 ‘쿠스토스 카붐’이란 움직이는 조각품을 직접 봤을 땐 눈물이 날 뻔했다.


이미지 출처 : 갤러리 현대

 앞에 놓인  분명 볼트와 너트로 연결된 쇳조각들이라는   아는데,  혹은 체액처럼 쏟아져 있는  액체는 화학제품인  분명한데, 작가가 설명으로 붙여놓은 글은 전부 그의 상상일 뿐인데, 멸종하는 거대한 유기체의 최후를 보는 기분이 들어 더할  없이 슬펐다. 전시회 사진을 봤을  절대 예측할  없던 감정이었다.  감정의 밑바닥엔, 네로의 외로운 죽음과 영화 <복수는 나의 >에서 엔드 크레딧에서 들리던 송강호의 신음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 읽었을  주인공의 가없는 외로움이 뒤섞여 있었다. 잊고 지냈던 모든 감정까지 켜켜이 일으켜주니 넋을 잃고 보게 되었고, 나중에  보러 가고,  가고도 한번 더 갔다.

(오는 9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최우람의 개인전이 열린다. 벌써부터 설렌다. 이번엔  얼마나 아름답고 환상적인 우람유니버스를 선보일지.)


직접 보면 다르다. 보기 전엔 내가 뭘 느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난, 전시회 보기의 근본주의자다. 원칙을 빡빡하게 지키고 싶은데 직접 볼 수 있는 것엔 한계가 있어서 속상하다. 인생을 투덜댈 이유가 한 방울 더해진다.




딸 (97년생)

/ 그래도 기념품은 산다


스페인의 여름은 이글거린다. 한국처럼 눅눅한 찜통더위는 아니지만 숨이 턱 막히기는 매한가지다. 6월의 마드리드 거리를 걷고 있으면 땡볕에 두피가 홧홧해 껍질이 벗겨지는 상상이 든다.


유럽여행 중인 대학생은 대체로 돈이 없다. 그중에도 여름 여행족은 더 없다. 알뜰살뜰 모은 아르바이트비는 이미 휴가철 성수기 시세 값인 숙소와 교통비에 대부분 썼기 때문이다. 남은 건 패기뿐. 아무리 더워도 카페엔 가지 않는다. 돈도 아깝고, 여기까지 와서 느긋하게 앉아있자니 시간도 아깝고. 그렇다고 광장이나 공원에 가자니 의식을 잃고 강제 시에스타를 청할까 두렵다. 패기 열정 체력 말고 20대가 또 가진 거. 나이. 젊음의 특권인 프라도 미술관 공짜입장을 선택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비틀어 말하면 아는 게 없으니 보이는 것도 없다.

좋은 그림은 말을 건다는데. 나와 작품 사이엔 탄탄한 방음벽이 세워진 거 같았다. 회화에 빠삭한 엄마와 볼 땐 이것저것 주워들으며 감상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혼자 보니 파란 옷 입은 여성은 성모 마리아요 아기는 예수로다 밖에 몰랐다. 성경 얘기 같긴 한데 창세기인지 출애굽기인지 몰랐고 신화 같긴 한데 누가 신이고 인간인지 분간이 안 갔다.

그래도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솔솔 부니 천천히 감상할만했다. 혼자 공장 레일 마냥 돌돌 걸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몰라도 작품을 뚫어져라 봤다. 남들이 멈추고 보면 같이 멈추고 봤다. 제사 때 어른들 따라 절하는 어린이들처럼. 한국인 관광팀을 만나면 슬쩍슬쩍 가이드 설명도 엿들었다. 음 이게 르네상스 저게 바로크. 진심으로 마음이 동해 눈에 들어오는 작품도 있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보쉬의 <쾌락의 정원>. 유명한 작품은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쾌락의 정원> 은 한참 뜯어봤다.

보쉬 <쾌락의 정원>


전시를 한 바퀴 다 돌았을 땐 만족스러웠다. 공간이 주는 쾌적함은 물론이고 나 자신이 세련된 교양인이 된 거 같다는 충족감이 들었다. 어디 가서 “아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나 그거 실제로 봤는데..”라고 말할 수 있게 된 자신감. 오만함. 얄팍하고 세속적인 나의 작은 욕망. 고상한 평은 못 내놔도 아는 채는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물론 실제로 써먹은 적은 없다. 아무도 나에게 그런 지성을 기대하지 않아서 물어보지 않는 걸지도.  

벨라스케스 <시녀들>


프라도 미술관을 떠나며 친구와 오길 잘했다고 떠들었다. 너도 나도 미술을 모르지만 좋았으면 된 거 아니겠냐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또 가자고 했다. 한 달 후 파리. 오르세 미술관. 20여분을 기다려 티켓부스 앞에 섰을 때 직원이 국제학생증이 아니라 예술대학 학생증이 있어야만 무료라고 했다. 재수 없는 프랑스 놈들. 얕은 욕망은 14유로에 쉽게 등 돌려 나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러닝타임 110분의 그리스신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