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유학 생활이 힘든 순간들
유학을 떠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복 받았다' '부럽다' '운 좋은 사람이다' 등등 기분 좋은 소리 같지만 되게 무거운 말들을 정말 많이 들었다. 유학 생활 중에도 힘든 고민을 얘기하면 그래도 해외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복 받은 거라며 그 정도의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얘기하는 친구들, 어른들, 주변 사람들이 많았다. 남이 힘들 때 내가 더 힘들어 그 정도의 고민은 별거 아니야 하는 방식의 위로는 정말 피해야 할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두 번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 행복한 척, 즐거운 척 '척'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영어로 하는 과제가 나를 얼마나 바보처럼 느끼게 하는지 셀 수도 없다. 하지만 일 년 씩이나 해외에 있었으면서 영어로 힘들어하냐는 소리를 들은 후에는 이제 영어에 관한 푸념도 늘어 놀 수 없다. 호주에서 살면서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할 때 나는 이방인이 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유학생들은 유학생들끼리 뭉쳐 다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 것 같다. 성공적인 해외 생활을 보내기 위해서는 한국인을 피하라는 조언을 본 적이 많은데, 나는 심신적으로 안정이 된다면, 마음 맞는 한국인 친구들은 유학생활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는 존재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괴로움들이 나를 잠식해오면 하루 종일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때도,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릴 때도 또 한국 드라마. 예능에만 빠져 공부고 뭐고 안 보일 때도 있다. 한국에 있을 땐 나를 스스로 당당하고 발랄한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요즘은 나 스스로 작아질 때가 너무 많고 나를 잃고 있는 느낌이 있다.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할 때도 너무 많다. 요즘엔 힘든 일이 있어도 인생에 대한 고민이 생겨도 정말 친한 친구들일지라도 터놓고 말하기보다는 블로그 공간이 위로가 되어주는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유학 생활을 겪어보기 전까진 유학에 대한 환상도 있었고 한국만 떠나면 새로운 세계와 세상이 펼쳐질 줄 알았다. 호주 땅을 밟는 순간 미드에서 보던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유학 전에 유학에 관한 도서들을 찾아봤을 때도 영어 못하던 사람이 유학 후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는 유학을 장려하는(?) 류의 도서가 대부분이었고, 그런 도서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유학에 대한 환상은 커져만 갔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유학 생활과는 다른 부분들도 정말 많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고 외로운 순간은 더 자주 아니 매일 나를 덮쳐왔다. 사람들이 유학에 대학 환상을 키워가는 이유는 유학생들이 유학생활의 힘든 부분들을 많이 공유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의 선택으로 유학길에 오른 유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힘들다', '이 선택이 후회된다' 말하기 꺼려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너무 무겁게만 느껴져서 감당이 안 되고 말로 뱉기도 힘든 순간이 있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맞은 걸까' 답 없는 질문과 싸움하며 보내는 유학 생활이 마냥 즐거울 수는 없다는 얘기다.
유학 생활 초반에는 나를 제외한 모든 유학생들이 행복해 보였다. 나는 아직 현지 적응도 안되고 친구도 많이 없고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데, 다른 유학생들은 내가 꿈꾸던 유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젠 안다. 많은 유학생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행복한 나날만을 보내고 있지 않다는 걸. 유학 생활이 적응이 안 되고 외로움이 밀려오고 마음의 짐들의 무게가 감당이 안 되는 유학생이 계시다면,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어쩌면 당연한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위로가 될진 모르겠지만, 이 글이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주변에 유학생 친구가, 가족이 있다면 그들의 고충도 한 번 생각해 봐 달라면 이기적인 걸까. 이렇게 힘든 감정을 안고 유학 생활을 이겨낼 수 있는 이유는 나를 지지해주는 부모님과 새롭게 그려질 나의 미래가 궁금한 호기심 때문인 걸까. 아직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해외 생활 일 년이 넘은 즈음부터 힘든 감정들과 함께 다양한 감정들을 느낀다. 행복 비스름한 무언가 들이 하나 둘 찾아오기 시작하는 것 같다. 앞으로는 더 다양한 즐거운 감정들이 찾아오길 바라본다.
내가 유학 생활하면서 힘들다고 느낀 점들
1. 이방인 같은 느낌
내가 이 사회에 소속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 맞는 건가 생각이 든다. 내가 뿌리내리고 살아온 한국을 뒤로하고 이곳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친구를 사귀어도 그 친구는 이미 이곳에 오래된 친구들이 있다. 공유하는 스토리도 다르고 자라온 환경도 너무 다르다. 아직 일 연차라 마음 제대로 맞는 친구를 못 만난 거라 위로해본다. 이런 사실들이 나를 외롭고 쓸쓸하게 만들 때가 있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고 그 길이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2. 영어의 한계
영어의 한계.... 학교를 다니면서 영어 때문에 수백 번이고 바보가 된 느낌을 받았다. '내 의견을 말했는데 교수님이 못 알아 들었을 때', '궁금한 것이 있는데 단어 찾다가 타이밍을 놓쳤을 때' 등등 영어 때문에 작아지는 순간은 정말 다양하다.. 특히 과제를 할 때 한국어로 했으면 정말 재밌게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을 텐데..라고 수백 번은 생각하고, 시험공부할 때도 어렵지 않은 내용인데 영어 때문에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한심하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모든 순간들이 괴롭긴 하지만 난 배워가는 단계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스스로 위안을 한다. 하지만 호주에 어린 시절부터 산 교포 친구들을 만날 때, 나는 아무리 공부하고 노력해도 저 정도 네이티브 실력을 갖추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완벽하지 않은 영어 실력이 괴로운 것이 아니라, 성인이 돼서 영어권으로 공부하러 갔을 때 영어의 한계가 있다고 생각이니 괴로운 것이다. 노력하면 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어렸을 때 배우는 언어와 성인이 되어서 배우는 언어는 확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레벨까지는 당연히 노력으로 메꿔지겠지만, 여기서 어린 시절부터 자란 사람들의 표현과 문장과는 비교가 안 될 것이다. 아냐 주현아 할 수 있어 화이팅,, 그래도 이렇게 아슬아슬한 영어 실력으로 좋은 학점도 가끔 받고 하는 거 보면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남는 존재가 확실하다.
p.s 같이 한국말하면서 술 마시던 교포 친구들이, 술에 취하면 어느 순간 영어만 사용하곤 한다.. 특히 취해 약간 뭉그러진 단어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나오는 슬랭들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보다 한국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자괴감이 어마 무시하다.
3. 내가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힘들다고 얘기 못함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제대로 배웠다. 나의 선택에는 수많은 책임이 따른다. 나의 선택을 지지하기 위해 부모님은 얼마나 큰 희생을 하고 계시는지 생각하면 내가 처한 힘든 상황은 힘들다고 말하지도 못한다. 부모님은 나를 위해 고생하고 계시지만, 나는 나를 위한 것들을 하는 와중에 힘든 일들이 따라온 것이다. 어떻게 부모님께 힘들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항상 즐겁다 괜찮다 행복하다 말하고 나면 쓸쓸함이 찾아온다. 패기 좋게 선택한 길이기에 잘못된 길이라고 돌아갈 수 없다. 끝은 보겠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 내가 스스로 밟은 땅이니 이곳에 영역 표시는 하고 돌아가야겠다는 마음가짐이다. 이런 생각을 호주 친구들이나 교포 친구들 또는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공감해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유학생 친구가 한두 명은 필요한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유학생 친구들 다 한국으로 떠났다... 생각보다 버티기 힘든 유학 생활인 것 같다.
4. 미래가 불안정(비자, 영주권 등등)
유학생 신분으로 학교를 다닐 때는 학생 비자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이는 것은 없다. (아니다.. 휴학도 힘들고.. 출석률도 신경 써야 하고 은근 신경 쓰이기는 한다..) 근데 학교 졸업 후 졸업생 비자를 받고 취업을 준비할 때 영주권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은 생각보다 일자리 구하는 것이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아니 팩트다. 취업에 성공을 해도 이년 졸업 비자가 끝나면 일하는 곳에서 스폰서를 써줄지도 미지수다. 이런 많은 생각들이 현재 상황에 집중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런 비자 문제는 타지 생활을 하면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비자 문제가 올 때 내가 비주류로 꼭 해외 생활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5. 인간관계
한국에서는 항상 친구들에 둘러싸여 혼자 있는 시간이 없었다. 학교 친구들, 학원 친구들, 동네 친구들 여러 명의 친구들과 두루두루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많은 친구들과 카톡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해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깊지 않았던 친구들과의 연락은 점점 줄었고 안부를 묻는 빈도도 줄었다. 나는 인생 친구라고 생각했던 친구가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런 사실이 너무 슬프고 좁아지는 나의 인간관계 거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사실에도 장점이 있다면 나를 진정으로 생각해주는 친구들을 알게 된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호주에 일 년 넘게 살면서 정말 친한 친구들과는 몸이 멀어졌다는 느낌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연락했고, 힘든 일이 있으면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친구들 덕분에 위로받았다. 또 나는 가깝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들은 나의 자존감 지킴이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힘들다고 느끼는 점들이 많지만, 이 정도의 힘듦은 어느 길을 선택했든 간에 나를 따라왔을 거라 생각한다. 또 힘든 만큼 얻는 것도 많고 배우는 것도 많다. 무엇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랬다 ~~ 그렇게 오늘도 나는 과제의 늪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