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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규 Feb 24. 2024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더라

과거 트레이너를 하던 시절 한 회원분이 있었다. 그분에 직업은 타로 마스터였다. 타로 마스터이기도 했지만, 약간 영 엄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분이기도 했다. 쉽게 말해 신기(?)가 있는 분이었는데, 대화 도중 가끔 이상한(?) 얘기를 하곤 해서 놀랬던 적이 몇 번 있다. 나는 종교가 있지도 않고, 비과학적인 학문을 맹신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가끔 힘든 일이 생길 때면 내 회원이었던 타로 마스터분에게 내 속내를 털어놓았다. 내 고민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내가 가지고 있다는 걸 알지만 내 고민을 밖을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서 가끔 타로 마스터르 만나 내 얘기를 한바탕 쏟아내곤 했다.      

 


편의점을 시작하고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다. 그동안 해왔던 트레이너 일을 하루아침에 그만두기가 너무 아쉬웠다. 그간 쌓아왔던 경험, 공부했던 시간, 공부에 투자했던 비용들이 한순간 물거품이 된 것 같아 두려웠고 걱정됐다. 편의점을 시작하고 2년쯤 되었을까? 오랜만에 그 타로 마스터를 찾아갔다. 그분은 나를 보자마자 얘기했다.

“카리스마가 많이 빠졌네요?”

“트레이너 할 때는 눈이 초롱초롱했는데, 지금은 눈에 힘이 없어요”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전에 오랜만에 만나 나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변하긴 변했구나. 내 마음 상태가 겉으로 드러났구나 “     



그리고 전엔 눈이 초롱초롱했다는 말을 듣고서는 눈물이 날뻔했다. 그때 내 열정과 노력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좋아서 했던 일이라 그때는 정말 열정이 가득했다.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것도 좋았고, 내 가치를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내가 트레이닝했던 사람들이 이전보다 좋아지고, 건강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뿌듯하고 보람찼다.     




편의점을 처음 시작하면서 일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조금씩 적응이 됐다. 일이 적응되고 조금씩 몸과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 때, 어떻게든 다시 트레이너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편의점에서 남는 시간에는 전공서적을 봤고, 퇴근하고 나서 프리랜서로 일을 해볼 까 싶어서 근처 트레이닝 센터에 면접도 보러 다녔다.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내 노력이 부족해서였겠지만, 초보 점주인 내가 아르바이트생에게 편의점을 맡기고 다른 일을 하러 다니는 게 쉽지 않았다. 그 후에도 일을 놓지 않으려 이런저런 시도를 해봤지만 결국은 다 수포로 돌아갔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일이었다.     

 


결국 모든 건 ’다 때가 있는 거구나 ‘라는 걸 느낀 채 나는 포기를 했다. 발버둥 치고 미련을 가지면 가질수록 나만 힘들어질 뿐이었다. 사실 편의점을 선택한 건 지금껏 일어난 일들을 봤을 때 잘한 선택이었다. 2020년 코로나가 한창 유행했던 시절, 모든 체육시설이 영업제한 조치를 받았다. 그 당시 같이 일했던 선생님들은 출근을 할 수 없게 되자 생계를 위해 공사현장에서 일하거나 배달 일을 하곤 했다. 편의점 덕분에 코로나를 잘 대처할 수 있었다. 또 편의점을 하면서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도 잘할 수 있었고, 이쁜 딸아이를 낳을 수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편의점은 옳은 선택이었으나 내가 해왔던 일에 대한 미련은 어쩔 수가 없다.

지금은 많이 내려놨다. 편의점 일에 적응도 됐고, 새로운 식구가 생겼으니, 기존의 안정적인 일을 내려놓기에 두려움도 앞선다. 그러나 언젠가 트레이너 일을 다시 할 수도 있다는 희망은 끈은 놓지 않으려 한다. 어떤 형태로라도 할 수 있으니.     



편의점은 보통 11월~2월 사이에 매출이 뚝 떨어진다. 그러다 따뜻한 계절이 오면 매출이 조금씩 회복을 하다가 한여름이 되면 매출은 절정을 이룬다. 고난의 계절인 겨울을 잘 버티고 본격적으로 매출이 오를 때인 여름이 와야 비로소 매출은 오른다. 365일 내내 잘 되는 장사는 없다. 인생의 고난과 역경이 없는 사람도 없다. 편의점의 사계절을 5번 겪었다. 장사가 안 되는 계절에도 버티기 위해 노력하고, 힘든 상황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발버둥 쳐야 비로소 여름이라는 때를 만났을 때, 다시 한번 기회를 얻게 된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      



인생에는 다 때가 있다. 누군가는 원하는 걸 조금 이른 시기에 얻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에 얻기도 한다.. 빨리 성공했다고 해서 자만할 것도 없고, 일찍 실패했다고 좌절할 것도 없다. 포기만 하지 않고 버티면 분명 어느 때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분명 나에게 다시 한번 좋은 때가 올 거라 나는 믿는다. 그게 내가 편의점을 하면서 얻은 경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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