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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움 Nov 23. 2021

한 가지 우물을 못 파는 사람

소희(가명) 언니한테 전화가 왔다.

"잘 지내? 요새 뭐하고 살아?"

"언니 넘 반가워 그렇지 않아도 어제 언니 생각나더라."

이심전심인 모양이다. 소희 언니를 알게 된 지는 5년 째이다. 우리는 작품 공모전에서 만난 후 5년간 꾸준히 굴곡 없는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언니와 나는 사람 관계에 있어 비슷한 면이 있다. 서로 너무 자주 어울려 다니지도 않고, 시시콜콜 미주알고주알 주절거리지도 않는다. 가끔 한 번씩 생각나면 서로 연락하여 얼굴을 보고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랄까? 화가로서 같은 길을 걷는 입장으로, 서로의 작품을 존중하고 전시정보나 미술계 이야기를 공유하며 도움을 주고받는다.

작년 하반기에 언니는 몇몇의 작가들과 함께 아트상품관을 오픈했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한 불경기로 1년도 채 되지 못하여 그곳을 접었나 보다. 그 과정에서 있어진 여러 가지 갈등과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며, 미술계와 이곳 종사자들에 대한 실망과 아쉬움을 토로했다.

언니는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뒤늦게 미술계에 입문하여  작가로서 큰 꿈을 품고 있었다. 데뷔한 후 몇 년을 불철주야 그림 작업과 전시에 온 정신과 시간을 갈아 넣고 있었다. 5년여 쯤 지난 지금, 미술계의 현실과 돈을 밝히는 작가들의 그리 아름답지 못한 뒷모습을 많이 접하면서 미술계가 지긋지긋하다고 하였다. 




나도 미술작가로 작품을 하고 전시활동도 하고 있지만 언니처럼 열심을 내지는 않는다. 화가가 아니라도 글작가로, 일러스트 작가로, 시인으로 하고 있는 일이 많아서이다. 뻗치고 있는 분야가 여러 곳이다 보니 굳이 미술활동에만 전념을 할 수가 없다. 한 우물을 못 파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한숨을 쉴 때도 가끔 있다. 하도 일이 많고 내려놓을 수는 없는 것들이라 몸과 마음이 지칠 때가 있어서이다. 그럴 때면 슬며시 마음 깊숙한 곳에서 그런 생각이 스멀거리며 목구멍으로 올라온다. 요즘은 한 가지가 아닌 멀티에 능해야 한다고 하지만 멀티적으로 살아보고 그런 소리를 했으면 싶을 때도 있다. 

나는 글 쓰는 일도, 그림을 그리는 일도, 시를 쓰는 일도 모두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라 골라내 버릴 게 없다. 한 가지 일만 해도 거기에서 파생되는 것들이 다양한데 서너 가지를 붙들고 있으니 오죽 신경 쓸게 많겠는가?

하지만 소희 언니 이야기를 듣고는 잠시 안도했다. 다행이네 나는 다른 할 일이 많아서 미술계 활동에 집중하지 않아서 말이야 라고. 그리고 언니의 경험이 간접적으로 내게 큰 도움이 된다고. 지긋지긋하게 겪어보지 않았어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값진 경험인가 하고.




장단점이 있는듯하다.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일과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는 일에는 말이다. 

온 마음과 정신, 시간을 집중 투자했는데 결과가 기대치에 너무 못 미칠 때의 실망과 상실감, 다른 길이 없는데 그 한 가지 길에서 느끼는 좌절감은 퍽 사람을 힘들게 할 것이다. 물론 성공을 바라는 사람은 그럴지라도 어떤 출구를 끊임없이 찾는다. 포기하지 않을 때 시간도 가고, 돈도 잃고, 낙심도 올 수 있겠지만 결국 언젠가는 값진 결과를 일구어내리라 본다. 


나처럼 여러 가지를 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를 하다가 넘어지면, 아주 낙심하거나 거기에 마음이 매몰되지 않는다. '에이 지겨워 다른 거 하자' 하며 얼른 다른 배에 벌써 올라타고 있다. 마음을 쏟을 다른 일에 집중하면 실패의 경험을 빨리 잊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안정되고 잊을만하면 다시 그 일이 슬그머니 하고 싶어질 때가 온다. 반드시 말이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일이고 잘하는 일이기에 그렇다. 그때에 일어나 다른 방향의 키를 잡고 새로운 마음으로 운항을 시작한다. 

또 좋은 점은 한 가지를 붙들고 있다 지겨워지면, 다른 일을 바꿔가며 할 수 있어서 권태와 매너리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한 가지 일을 잘하고 거기에 집중하는 사람이 부럽다가도 때로는 여러 가지를 동시다발로 하는 내가 좋다. 어쨌든 신이 잘 쓰라고 주신 재능이니까 이것저것 빨빨거리며 해보는 거다. 온 힘과 마음을 쏟아 집중을 못해서 한 분야의 대가는 못될지라도 소가(?)는 되지 않을까? 인생을 다방면에서 풍부하게 경험하고 즐기느라 심심할 겨를이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훌륭한 성공에 견줄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대가(家)가 되지 못한 대가(價)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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