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디에 글을 쓰고 있는가?
블로그를 꽤 오랫동안 써 왔다. 브런치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겉으로만 슬쩍슬쩍 보고 있었기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굳이 브런치에 글을 써야 하는 간절함도 없었다. 브런치에 비하여 블로그는 역사가 훨씬 깊고 블로그와 함께했던 시간이 많았던지라 블로그를 애정 했다. 블로그는 아늑한 나만의 공간이었고, 여러 재능과 잡다한 흥밋거리들을 마음껏 자랑하거나 올릴 수 있었다. 소소한 삶의 이야기들을 길거나 짧게 아무 때나 쓸 수 있고, 사진이나 그림만으로도 쉽고 재미있게 만질 수 있는 플랫폼이었다. 블로그를 하다 말다, 만들었다 접었다를 수년 하며 그저 흥미로 하고 있었다. 블로그를 통해 수익을 얻거나 유명해지거나 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몇 달 전부터 멈추고 있던 책 쓰기를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무엇보다도 나의 인생 이야기를 에세이로 기록하고 싶어졌다. 과연 내가 나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진지하게 쓸 수 있을까! 수없이 자문해보았다. 아름답거나 멋지거나 훌륭한 삶을 산 전기도 아닌데 어떻게 내 이야기를 세상에 펼쳐놓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구차스럽고 부끄럽고 아픈 과거를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에게 내보일 수 있을까? 치부를 드러내고 세상을 활보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래 나의 질곡의 삶을 건드리지 못한다면 자기 계발이라도 쓰자'하고 마음을 먹었다. 기존에 잡다한 이야기를 쓰던 블로그를 접어놓고 새로 블로그 하나를 만들었다. 오직 책을 쓰기 위한 글을 모으는 목적이었다. 카테고리 하나에 한 권의 책을 담을 요량이었으며, 카테고리가 차면 모두 책으로 출간할 계획이었다. 카테고리 한 개에 글이 차곡차곡 채워져 가고 있었다.
한데 문제가 보였다. 블로그라는 환경은 검색과 이웃, 키워드, 유입수, 상위 노출같이 신경을 분산하게 하는 것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아무리 신경을 끄려 해도 환경이 그러한지라 은근히 거기에 관여하고 있었다. 긴 시간 익숙해져 온 플랫폼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서인지 더 그러한 듯하였다. 블로그는 어쩔 수 없는 건가?
점점 브런치에 마음이 갔다. 브런치 작가에 지원하여 글을 쓰고 발행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날마다 글 한 편씩을 발행하며 브런치와 친해지다 보니 브런치의 장점이 겉으로 보기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느꼈다. 어떤 이는 브런치 해봐야 수익이 안 되니 별 의미가 없다고도 한다. 기껏해야 책을 내는 정도이니 말이다. 어디에 목적이 있는가에 따라 브런치를 보는 시선이 다를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이는 그 사람만의 관점과 중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쓰는 목적에 있어 돈이 우선은 아니다. 글에 집중할 수 있는 플랫폼을 찾았고 만났다는데 현재로선 큰 의미를 둔다.
브런치 북을 어제 한 권 묶었다. 처음으로 발행한 브런치 북은 전자책 같은 느낌이다. 시중에 출간 되는 게 아닌지라 기대가 되거나 뭔가를 해냈다는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브런치 북을 서너 권 발간하면 책을 한 권 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처럼 성실하게 글을 쓰면 아마도 서너 달이면 충분히 책으로 출간할 수 있을 것이다.
브런치의 장점
브런치 경험 1개월이 채 못된 지점에서 브런치의 유용한 점을 짚어 보려고 한다.
브런치는 글쓰기 전문 플랫폼으로 최적화되어 있다.
쓰고자 하는 글에만 집중하면 된다.
블로그처럼 플랫폼 관리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아도 된다. 이미지는 최소한을 쓰거나 쓰지 않아도 된다. 키워드에 따른 글쓰기를 하지 않아도 되며 검색에 대한 부담이 없다. 해서 유입인원도 신경 쓸 일이 없다. 원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기 글만 부지런히 써도 괜찮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 타인의 글을 많이 접할 수 있어서 좋다.
내 글만 주야장천 써도 누가 뭐라 할 일은 없지만 타인의 글을 읽었을 때 좋은 점은 많다. 우선 글쓰기의 방법을 다양한 시각에서 살펴볼 수 있으니 편협해지지 않는다. 맛집이 함께 모여있으면 장사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브런치에는 글을 잘 쓰는 다양하고도 많은 작가들이 모여있다. 그러므로 타인의 글을 보고 성장하며 도전을 받는다. 이로 인한 시너지 효과가 크다.
나는 다른 작가들의 글을 하루에 최소한 대여섯 편은 읽어본다. 메인에 뜬 글뿐만 아니라 브런치 최신 글, 브런치 북, 인기글 등 말이다. 또 맞구독하는 이들의 글도 피드에 들어가 읽고 댓글을 달기도 한다.
처음에는 '브런치도 이웃 관리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거부반응이 조금 있었으나 어차피 브런치도 SNS의 성격이 전혀 없지는 않으므로 최소한의 소통은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니 좋은 건 용기가 생긴다는 점이다.
블로그에는 대체로 정보 위주의 글을 쓰기 때문에 순수하게 자기 이야기를 깊이 있게 쓰는 사람이 드물다.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으므로 이웃을 겉으로만 아는 게 대부분이다. 혼자서 내면의 이야기, 에세이, 문학 등의 글을 쓰면 이상한 사람처럼 생각이 든다. 외롭다. 그래서 진지하게 자신을 성찰하는 글을 쓰기가 어렵다. 쓴다 해도 멋쩍다. 어쩌다 한 두 번 쓸 수도 있지만 잘 써지지 않는다. 깊고 숨겨진 이야기를 쓸 용기가 나지 않는다.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브런치는 그렇지 않았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가장 좋았던 점이 이 부분이다. 브런치 작가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진지하게 쓴다. 한 사람 두 사람 그리 쓰다 보니 분위기 자체가 진지모드다. 이에 서로가 자극을 받고 하기 힘든 이야기, 부끄러운 삶도 용기를 내서 쓰게 된다. 나도 여러 작가들의 이야기에 힘을 얻었다. 그래서 차근차근 꼭꼭 잠가서 숨겨둔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놓고 있다. 내년에는 가까운 이들에게도 들려주지 않았던 나의 삶의 굴곡과 비극과 그것들을 헤쳐 나온 이야기들을 에세이로 쓰려고 한다. 눈을 감는 날까지 이 구질구질한 수렁 같은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려 했다. 브런치에 감사한다. 이런 용기를 갖게 해 주어서.
브런치 글은 때때로 상상하지도 못한 조회수를 기록한다.
브런치는 다른 SNS에 비해 개방이 되어있지 않아서 얼마나 사람들이 읽겠나 했었다. 하나 브런치 내에서의 조회도 꽤 있었지만 브런치 메인이나 다음 메인 등에 뜨게 되면 엄청난 사람이 유입이 된다. 나도 글을 쓴 지 채 20일이 되지 않아서 글 하나가 크게 노출이 되었다. 현재 그 글의 조회수는 6만이 넘었다. 또 오늘 새벽에 보니 어제 쓴 글이 어딘가에 노출이 된 모양이다. 글쓰기 전 잠깐 알림을 보았는데 조회수 1,000을 넘었다는 소식이었다. 수십만의 조회수가 생긴다는 말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나에게도 이런 기회가 올 수 있음을 체감하니 놀라웠다. 블로그 할 때에는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즐거움이었다. 블로그 글은 검색 최상단에 노출이 되어도 인기 콘텐츠가 아니면 그다지 조회가 일어나지 않는다. 전에 두어 번 네이버 특정 콘텐츠 메인에 뜬 적이 있었는데, 미술 쪽이어서인지 하루 고작 4~5천 정도의 조회를 기록할 뿐이었다. 글 쓰는 이로서는 나의 글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만큼 보람과 기쁨이 없다.
브런치에 글을 써보니 좋은 점 몇 가지를 적어보았다. 아직 한 달도 넘어가지 않은 시점이라 앞으로도 브런치의 유용한 점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단점도 있다. 구독자 수 같은 거 말이다. 신경을 안 쓰고 해도 상관없겠지만 그 버튼이 달려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 정도는 마음이 쓰인다. 떼어버릴 수도 없고. 좋게 보자면 구독자 수는 훗날 나에게 기회의 장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그러니 그 부분에 조금은 노력도 해본다. 글 쓰는 이로서 편하게 글을 쓰고 여러 유익함을 얻게 하는 브런치와 동행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