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쓰면 남는다

by 비움

'기록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에 대한 기록이 없다면, 훗날 그가 위대한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겠는가? 세상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의 대다수는 스스로 기록했든지, 타인이 써 주었든지 그 사람에 대한 기록이 있음으로 알 수 있다. 왕이나 장군이나 위인들은 역사나 실록을 기록하는 이들이 글로 남겼고, 화가는 그림으로, 작가는 글로, 시인은 시로 자신들의 흔적을 남겼다.


글이나 작품이 남겨져 있고 어떤 모양으로든 기록이 있는 사람들은 당대에 추앙받지 못해도 후대에 대부분 재평가되곤 한다.

중국의 역사서 <사기>를 쓴 사마천은 태사령의 지위에 있다가 '부득이하게 흉노에 항복한 이릉을 변호했다'라는 죄목으로 한무제의 분노를 사 옥에 갇히게 되었다. 후에 궁형(생식기를 자르는 형벌)을 받았다. 궁형은 당시에 가장 수치스러운 형벌이었다. 이에 죽으려 마음을 먹었던 사마천은 옥중에서 마음을 돌이켰고, 옥에서 나와 중서령의 직위인 내시가 되었다. 그는 '역사서를 편찬하라'는 부친의 유언을 생각했고, '그 일을 반드시 해야겠다.'라는 각오가 있었다. 그러기에 죽을 수 없었다. 그가 만약 궁형을 받았을 때 죽음을 선택했다면,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저 유명한 <사기>가 오늘날까지 전해져 올 수 있었겠는가? 이런 예가 어찌 한둘이겠는가? 나치에 의해 죽임을 당한 유태인 소녀가 쓴 안네의 일기, 동생 허균이 모아 편찬했던 허난설헌의 시 난설헌집, 고흐가 남긴 편지와 그림들, 플라톤의 철학과 제자 플라톤에 의해 기록된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철학,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등 무수하지 않은가?

스스로 기록하여 수천수백 년간 남겨진 글도 있고 타인이 기록해서 알려진 것들도 많다. 그리하여 그들은 후대에 오래도록, 혹은 영원히 남는다.


기록한다는 것, 글을 쓴다는 일은 자신을 기록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람에 대해서는 그가 쓴 글과 그가 남긴 작품으로 알 수 있다. 그가 남긴 것은 바로 '그'라고 해도 맞는 말일 것이다.

내가 훌륭한 인물이라면 타인이 나를 기록해 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내가 나를 기록해야 하지 않을까? 요즘처럼 자신을 쉽게 기록하고 남길 수 있는 세상에 태어나 사는 일이 얼마나 복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각종 SNS가 넘치고 마음만 먹으면 출판이나 전시 등 스스로를 기록하고 써낼 수 있는 장이 많다.

한 단어, 한 구절, 무엇이라도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 훗날 그것이 나의 전기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 해도 누군가 기억해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없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기억한다 해도 그것이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억하는 사람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고 만다. 이문영 <사마천, 아웃사이더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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