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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wa Feb 02. 2024

<작은일터 이야기>두 눈 질끈 감고 이력서를 넣어봐

    

‘일을 할 거야’

가슴이 답답했다.

여러 가지 압박들이 나를 조여 오는 것 같았다.

지난 십여 년은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을 동반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남편은 잠만 잔다며 나를 나무랐다. 아마 무기력증의 증상인 것을 몰랐으리라.

수술받은 지 3개월쯤 되었을 때 ‘장애인도 일을 할 수 있어’라는 남편의 말은 가슴속에 응어리로 맺혔다.     


십여 년간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고관절 수술이 잘되어서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가능해졌고 아이도 어느덧 4학년이 되었다.

‘이젠 내 맘대로 걸을 수 있고 어디든지 갈 수 있어!’ 오랜만에 다시 느끼는 신기로운 감각!

가슴속에서 서서히 뭔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자유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라는 작은 불빛.     


나는 일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찾는 일에 몇 가지 기준이 있었다.

-애를 돌볼 수 있는 시간에 맞춘다.

-말로 응대하는 일은 어렵고 몸을 쓰는 일은 할 수 있다.

-출퇴근이 짧고 편안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포인트를 두었던 건 시간대다. 오전에는 내가 공부하거나 자기 계발에 쓰고 싶었으므로 점심때쯤부터 아이가 집에 돌아올 시간대를 원했다.     


아니, 알바 몇 시간 구하는데 이렇게 조건을 따진다고?

나 자신도 ‘이렇게 딱 입맛에 맞는 일이 있을까?’ 싶었다. 역시나 적당한 일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우선은 내가 원하는 지역의 역세권을 모바일로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원하는 시간대와 일의 종류를 넣었다.     

아! 뭔가 하나가 나왔다.

이건 내 조건에 완벽한 일이야!

위치는 역에서 바로 앞.

시간대는 오후 12에서 3시, 업종은 이자카야.

일 내용은 영업 전 납품 정리와 재료 밑손질 및 밑반찬 준비.

시급도 최저시급보다는 조금 높다.     


'와! 이건 나에게 완전 맞춤인데! '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고는 찬찬히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일의 내용이 좀 신경이 쓰였다.

‘이건 닭꼬치 집인데…. 그럼, 닭꼬치를 엄청나게 껴야 하는 건가? 닭다리? 똥집? 닭 날개? 닭 껍질?’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커다란 대야에 가득 담겨있는 피 묻은 닭고기, 닭 껍질, 내장 등등. 그걸 하루 종일 만들어야 한다면?

'닭비린내가 못 견디게 역겹다면 어쩌지?'

나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집에서 먹을 때도 썰어져 있는 것을 산다. 간혹 고기를 썰 때 피가 흐르면 머리에 삐쭉 소름이 돋기도 한다. 생선은 내장을 다듬어 본 적이 없고 오징어 껍질을 통째로 벗겨본 일도 없다.     

‘그런데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번민이 왔다.

하지만 주방일 중에 낮 시간대에 손님 응대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이자카야밖에 없다. (이자카야는 대체로 5시에 영업 시작이다.) 게다가 위치는 역에서 달려가면 3초 정도로 최상의 근거리다.

‘아, 어쩌나….’ 잠시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지금 나에게는 중요한 건 하루를 내가 원하는 대로 최적화해서 세팅하는 것이었다. 하루 중에 내가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은 꼭 확보하고 싶었다.

‘그래,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한번 도전해 보자! 정 못하겠으면 그만두면 되지 뭐.’

나는 두 눈 질끈 감고 응모 버튼을 눌렀다.     


회사 측에서 메일로 연락이 왔고, 응모자들이 함께 줌으로 간단한 면접을 본다고 했다.

면접일은 마침 친구 엄마들과 함께 공원에 놀러 가는 날이었다. 면접 시간이 되자 나는 친구 엄마에게 아이를 맡겨 먼저 보내고 나는 길옆에 공원 벤치에 앉아서 면접을 보았다. 벚꽃이 한창인 4월이었고 내 머리 위로 하얀 꽃잎이 폴폴 떨어지고 있었다.


곧 채용되었다는 연락이 왔고 나는 내가 희망했던 지점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어떤 곳일까? 일본에서 십여 년 살면서도 닭꼬치 집에 간 적이 한 번도 없다.     


출근 첫날, 머릿속에 핏물 가득한 닭고기들을 상상하며 가슴 졸이며 간 이자카야는 지하에 있었다. 두근거리며 계단을 내려가 본 가게 안의 정경은 의외로 내가 상상했던 곳과는 다르게 아담하고 포근했다. 술집 특유의 은은한 노란색 불빛이 나를 더 안심시켜 주었다. 은근히 배어 나오는 달짝지근한 간장 소스 냄새도 왠지 마음에 들었다. 내 마음은 두려움의 떨림에서 설렘으로 바뀌었다.     

‘아…. 생각보다 괜찮다.’     


점장과 인사한 후 휴대전화로 고용계약을 하고 몇 가지 안내 사항을 듣고 가게를 나왔다.

집으로 가는 내 머릿속은 기대와 긴장감으로 뒤엉크러져 있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이렇게 찾아온 내가 기특했다.

‘잘해봐야지’     

이렇게 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내가 모르는 새로운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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