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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Jul 17. 2023

맨발걷기-미안합니다의 위력

#꽃지해수욕장 #방포해수욕장 #펜션 #펜션웨이브 #바다뷰

아침에 맨발걷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씩씩거리며 남편에게 말했다.


"아 글쎄 공원에서 어떤 아저씨가...."


남편은  의자에 앉아 신장투석을 하고 있었다. 아침이면 부푼 풍선처럼 얼굴이 부어 있다. 짙은 쌍거플에 큰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예측 못한 대사를 읉조렸다.


"만. 졌. 어?"


뭐? ㅎㅎㅎ 맨발걷기 하다가 어떤 아저씨와 있었던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기운이 다 빠져 말 할 힘도 없었다. 아휴... 웬수.


"왜 전에 얘기했잖아 공원 옆에 땅 갖고 있는 아저씨 말이야"


아침에 언성을 높인 사연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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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나는 장바구니를 든 아저씨에게 사과를 받아냈다. 

맨발걷기를 하는데 '신발'을 벗어 놓는 잔디밭에 직사각형의 흙이 올려져 있고 발로 꾹꾹 밟은 자국이 있었다. 심지어 개똥을 싸놓은 곳까지 밟은 흔적이 보였다. 맨발걷기 코스는 500미터 가량 되는 언덕을 왔다 갔다 한다. 한바퀴 턴 해서 돌아가는데 '5단지 사는 놈'이 무단으로 경작한 공원 부지에 '장바구니 든 아저씨'가 보여 얼른 뒤돌아 갔다.


"아줌마!! 저기요!"


다섯번 넘게 나를 부르는데 못 들은척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걸어 갔다. 그도 쫓아오듯 더 큰 소리를 나를 불러 어쩔 수 없이 뒤돌아 섰다. 


"잠깐 이리와 보세요"

"네? 왜요?"

"아이 잠깐이면 돼요. 이리 와보셔요"


나는 조금 망설였다. 가고 싶지 않았는데 '사람이 부르는데' 그러면 안될 것 같아 거리를 두고 그가 오라는 지점 근처에 거리를 두고 섰다.


"여기 잔디에 흙 올려 놓은데 밟지 마세요"


라고 지시 받는 느낌의 요구를 받았다. 나는 얼른 피하고 싶어서


"네"


짧게 대답하고 돌아갔다.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는데 왜 저 아저씨의 요구대로 행동했을까 후회가 되고 내 자신이 바보 같았다. 다시 한바퀴 돌아서 가는데 장바구니 든 아저씨가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아까 거기 밟지 마세요"


또 그러길래 


"그런데 왜 저한테 이래라 저래라 그러세요?"


"아니 알려줄려고 그랬죠, 5단지 사는 놈이 잔디밭을 패서 마늘을 심어놔서 그런거..."


"여기 공원 관리하는 분들이 알아서 하시겠죠"


나는 측면으로 몸을 돌려 장바구니 아저씨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동차 소리가 차도에서 들려 언성을 조금 높였다.


"아까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알려주려고 그랬죠..."


"제가 알고 싶지도 않고요, 그렇게 불러서 불쾌했어요"


"아 왜요?"


"생각해보세요 누군지도 모르는 덩치큰 남자가 부르는데 무섭죠!"


갑자기 장바구니 남자 목소리가 줄어들더니


"아.... 미안합니다"


나는 어느새 목소리에 힘을 주고 씩씩대며 속사포로 말을 하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그 말을 듣는데 언짢은 기분과 바보 같았다는 생각이 눈 녹듯 공중으로 사라졌다. 마음이 한 결 가벼워졌다. 그는 알겠다는 말과 함께 돌아갔다. 그가 가는 방향을 보니 사람들이 트랙을 도는 역방향으로 하품을 하며 가고 있었다. 자기 땅을 무단 경작해 열 받았는데 그 옆에 공원 잔디를 뜯어내 마늘 농사를 버젓이 지었으니 화가 단단히 났다. 5단지 사는 놈이 마늘 수확을 끝내자마자 그곳을 다른 공원에 있는 잔디를 뜯어다 깔아 놓고 누군가에게 자신이 얼마나 정의로운 일을 했는지 알리고 싶었던게 아닐까. 아니면 5단지 사는 놈에 대한 화가 아직도 풀리지 않아 정의로움을 끌어와 그를 더욱 나쁜 놈 만들기 놀이에 재미를 느꼈나.


개똥을 밟으며 '5단지 사는 놈'에 대한 단죄를 했다고 만족했을까. 미안합니다 말 한마디에 '장바구니 아저씨'의 하품이 명랑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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