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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Jul 26. 2023

맨발걷기 -  상처는 희석시키는 것

#상처 #희석 #글쓰기 #맨발걷기

엄마를 모시고 명지병원 안과를 갔다. 망막의 시신경이 손상 돼 치료가 불가능하다. 지금처럼 앞이 안보이고 뿌연 상태로 사셔야 한다. 앞이 안보이니 얼마나 갑갑하실까.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오빠가 잘 있냐' 묻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바빠서 전화하면 안돼'하고 말았다. 오빠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쿵하고 놀란다. 시간이 흘러도 나아지지 않는다. 내가 오빠 일로 힘들어하자 동네 부녀자 친구가


"옷에 잉크가 묻은 것처럼 마음의 상처를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아. 대신 물을 붜서 희석시키듯 묽게 만들어봐"


그녀의 친한 친구가 미국에 사는데 3번째 결혼을 해서 아이 낳고 잘 살고 있다. 그 친구가 이혼과 결혼을 반복하며 힘들어 할 때 고백처럼 들려준 얘기를 내게 전했다. 그 말은 나를 일으키는 지렛대가 됐고 1년동안 '맨발걷기'를 빼놓지 않고 하게 됐다. 발이 행복하면서 기분이 나아졌다. 두번째로 '글쓰기 레슨'을 받았다. 아들을 운동 선수로 키우면서 여러 선생님들의 레슨을 받게 됐는데 사람이 사람을 위해 기술을 가르쳐주고 잘할 수 있도록 연마시키며 커가는 모습을 봤다. 훈련을 100정도 하면 실전에서 10정도 발휘된다. 한번의 승부가 인생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듯 떨리고 실수를 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글쓰기 수업을 들었고 '한글'을 아는 것만으로 글이 나오지 않으며 선지식을 가진 사람의 '지적'을 받으며 지우고 쓰고를 반복했다. 첫 술에 배부르지 않듯 엉덩이 붙이고 쓰는 근육이 없어서 길게 쓰는 것이 안됐고 마감 시간에 밤새서 제출한 글은 '정보 모음집'이나 '뭔 얘기를 쓰려는지 알 수 없는' 쓰레기였다. 그덕에 재활의학과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을만큼 목과 어깨에 문제가 생겼다. 30년 가까이 엉덩이 붙이고 컴퓨터 앞에서 홈페이지 만들던 IT 일용직이라 잘 할 줄 알았는데 글쓰기는 다른 분야였다. 


세번째는 엄마와 화해이다. 평생동안 조현병으로 내 속을 썪였고 엄마의 이상 행동은 주위 사람을 불편하게 할 까봐 노심초사해 내 미간에 주름을 만들었다. 자식을 다 키워놓고 보니 나를 세상에 태어나도록 열달동안 품어주시고 마른자리 진자리 갈아주신 하눌님이라는 생각에 감사하다. 건강하게 사셔서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손주가 장가가는 것도 보셨으면 좋겠다. 하루 해가 구름에 가려서 어두웠다가 맑았다를 반복한다. 


잉크의 얼룩이 아니라 잉크를 양성화 시키고 얼룩을 활용할 수 있는 것들로 마음의 중심을 옮겨 놓으려 한다. 5분, 10분이라도 신발을 벗고 서 있는다. 아주 오래전 첫 걸음마를 떼고 땅에 발을 디뎠을때 환호하고 기뻐하던 아빠와 엄마의 모습을 머리는 아니지만 몸이 기억하는 것 같다. 나를 위로해주던 교회 집사님이 그랬다.


"오빠 참 멋있는 것 같아, 자기의 죽음을 결정하고 정리하고 가는 사람은 흔치 않아, 정말 멋있는 분 같아!"


누구나 다 살려고 노력한다. 개미 한마리 조차, 깨알보다 작은 절지동물조차 살려고 하루 종일 애쓴다. 오빠는 죽기전과 죽은뒤 여러번 신호를 보냈다. 오빠가 쓰던 모니터를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하던 날이다. 아무 고장없이 잘 쓰던 내 모니터가 무지개 색깔로 지직대더니 갑자기 꺼져서 못쓰게 됐다. 다른 사람주지 말고 나 쓰라고 했나보다. 지금 쓰는 이 모니터가 오빠가 쓰던 것이다. 가족은 살아있든, 죽어있든 보이지 않는 주파수로 연결돼 있다. 오빠의 장례를 마쳤을때 꿈에서 오빠가 나타났다. 와 우리 오빠 멋있다 생각했는데 마지막 시신을 확인했을때 함몰된 얼굴이었다. 49재를 마치고 꿈속에 나타난 오빠는 예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오빠를 부르니 까만 문 뒤로 사라졌다.  


아빠의 부재로 힘들게 살아야 했던 오빠와 나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속마음을 서로 알았다. 지금은 희석하고 묽게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떠났다. 엄마가 예뻐 보이고 은혜롭다. 누구나 죽지만 사는동안 상처와 목마름, 부족함과 결핍을 채우는데 애쓰지 않으려 한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땅을 딛고 느리게 걷는다. 쉽지 않은 길을 찾는다. 생각을 바꿔 용기를 내본다. '스페인어 배울까? 나이들어서 잘 안되겠지?' 같은 '의식의 흐름'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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