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부스는 착각하지 않았다
작년 늦여름 주말에 동네 친구들과 북한산 원효봉을 갔다. 산 중턱쯤 올라 숨이 가파랐을 때 ’봉운사‘ 푯말이 있는 오솔길로 들어갔다. 하늘에 회색 화강암 바위를 세워 놓은 것처럼 큰 바위를 배경으로 대웅전이 있었다. 마당에는 경계하는 태도로 무표정한 누런 개와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검은색 개가 맞았다. 범종이 있는 누각 앞에 정원용 탁자가 생뚱맞게 있었다. 가방을 내려 놓으니 등허리에 찬 공기를 맞아 서늘했다. 간식을 꺼내 개에게 주고 주변을 둘러봤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법복을 입은 스님이 나와 목례를 했다. 멀리서 봐도 젊어 보이는 스님이었다.
우리는 눈빛을 교환하며 ’강남에서 오신 신세대 스님 같다~~~‘며 키득거렸다. 천천히 다가오더니 궁금한 것을 물었다. 스님은 얼마전까지 ’강남 봉은사‘에 있다가 이곳 주지로 왔다고 했다. 우리들은 손뼉을 치며 방금전에 그런 얘기를 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들이 동네 교회에서 만난 언니, 동생 사이라고 했더니 자신도 출가하기전까지 교회에서 학생 회장을 지냈다고 했다. 경계를 푼 개가 다가오길래 이름이 뭐냐고 했더니 ’금강‘이라고 했다. 날이 더워지면 사찰 앞마당에 텐트를 쳐 ’캠핑‘을 하면 좋다고 다음을 기약했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이게 웬 떡인가 싶어 환호를 하며 스님 뒤를 따라 나섰다. 절 입구로 나가더니 색이 바랜 거울 앞에 서 보라고 했다.
어떻게 생겼을지 기대 했는데 실소가 나왔다. 이따금 북한산을 가면 거울속에 내 모습이 떠올랐다. 몇 달 전 템플스테이로 전라남도 송광사를 갔다. 인근에 법정 스님이 있던 ’불일암‘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송광사를 껴안고 있는 조계산에는 ’800년된 향나무 두 그루‘가 나선형으로 휘감아 하늘을 향해 있어 신령스러운 곳이 있다.
나무 옆에 터를 잡은 ’천자암‘이라는 절에 다리가 짧은 사나운 개 한 마리가 있다. 그 녀석 이름을 물으니 역시 ’금강‘이었다. 전국 사찰에 있는 개들이 ’금강‘일 것만 같아 그때부터 산에 주인없이 돌아다니는 개를 만나거나 절에 있는 개를 보면 ’금~강~아‘하고 불렀다.
작은 시골 학교에 다녔을 때 운동장에서 흙먼지를 날리며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 삼매경에 빠졌었다. 팽팽한 고무줄을 남자 애들이 도루코 칼로 끊고 도망갔다. 금강산 노래를 부르며 새까만 고무줄을 다리에 휘감았다가 풀며 1, 2절 노래를 마쳤다. 두 명이 고무줄을 잡기 때문에 3명이 기본인데 세 명이 삼각형을 만들어 놀기도 했다.
1.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봉 /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 철따라 고운 옷 갈아입는 산 / 이름도 아름다워 금강이라네 / 금강이라네
2. 금강산 보고 싶다 다시 또 한번 / 맑은 물 굽이쳐 폭포 이루고 / 갖가지 옛이야기 가득 지닌 산 / 이름도 찬란하여 금강이라네 / 금강이라네
고려 때 목은(牧隱) 이색(李穡)이라는 학자가 있었다. 그는 성균관의 으뜸 벼슬인 정삼품의 대사성으로 1328년(충숙왕 15)에 태어나 1396년(태조 5)에 사망했다. 위화도회군으로 우왕이 쫓겨나자 창왕을 옹립하며 이성계 세력과 맞섰다. 1379년에 그가 지은 시에 ’금강석‘이 나온다.
금강이 내 집과 아주 가까워서 / 金剛近吾室
삼백 리 길에 지나지 않는 데다가 / 不過三百里
강이나 바다의 막힌 것도 없이 / 無有江海隔
아주 평탄한 한 조각의 땅이거니 / 坦然一片地
왜 반드시 꼭대기를 올라가야만 / 何必上其巓
나의 뜻이 유쾌해진단 말인가 / 然後快吾志
금강목으론 내 지팡이를 만들고 / 金剛木爲杖
금강석은 내 책상 위에 있고요 / 金剛石在机
금강은 바로 내 맘속에 있거니 / 金剛在吾心
마음과 경계가 뭐가 서로 다르랴 / 心與境何異
집 근처에 금강산이 있는데 강이나 바다의 막힌 것 없이 평탄하지만 꼭대기를 올라가야 좋다고 노래하고 있다. 그의 책상 위에 ’금강석‘을 보며 자신의 마음도 금강석 같다고 했다. 금강석(金剛石)은 천연광물 중 가장 굳기가 우수하며 광채가 뛰어난 보석 ’다이아몬드‘이다.
우리나라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같은 ’오주연문장전산고‘라는 조선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쓴 책에 밤에 광채를 내는 물건으로 ’금강석‘을 언급하고 있다. 성호(星湖) 이익(李瀷) 선생이 쓴 ’성호사설‘ 만물문(萬物門)에 깊은 산에 사는 염소의 뿔로 금강석(金剛石)을 부순 사람의 이야기와 금강석은 금강찬(金剛鑽)이라고 하는데, 물 밑에 생겨서 석종유(石鍾乳) 같기도 하고, 또는 자석영(紫石英) 같기도 하다고 했다.
조선 중기 때 허준의 선배격인 정경선이 편찬하고 양예수가 교정한 의학서적인 ’의림촬요‘와 세종때 편찬한 ’의방유취‘에 다이아몬드 가루를 약재로 썼던 기록을 엿볼 수 있다.
“....중략 또한 오석(五石)을 과도하게 사용하여 진기(眞氣)를 모두 써버리면 석기(石氣)만 남아서, 양도(陽道 음경(陰莖))가 흥강(興强)하여 성교(性交)하지 않아도 사정을 한다. 이것을 강중(强中)이라 부르는데 이 병 역시 아주 위험하다”
다섯 가지의 광물성 약재는 양기석(陽起石), 종유석(鐘乳石), 자석(磁石), 공청석(空靑石), 금강석(金剛石)을 말한다.
금강산은 승려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여름에는 ’봉래산‘으로 불렀다. 스님들 염주로 쓰는 붉은색의 자단 나무(Rosewood)와 흔히 도토리나무라고 하는 참나무에 속하는 ’박달나무‘와 종이를 만드는 ’닥나무‘, ’향나무‘가 많이 나는 산을 뜻한다.
우리나라 시조 ’단군‘의 단자가 박달나무 ’단檀‘자이다.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의 ’박朴‘씨가 박달나무의 박자이다. 가을에는 단풍이 아주 크고 성대해 ’풍악산‘으로 불렸다. 겨울에는 뼈가 연달아서 잇대어 있는 모양의 ’개골산‘이라고 했다.
금강산 혹은 풍악산을 기행한 기록과 시는 왕들과 신하, 일반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수천개가 넘는다. 그런데 이 산은 찾아간다고 ’보여주는‘ 산이 아니었다. 주로 푸른빛의 기운이 도는 안개가 껴 있어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다. 금강산은 아주 넓고 큰 바다인 창해를 닮았다고 했다. 선조들의 금강산 찬양은 거의 종교에 가깝다.
역사에 기록돼 있지만 현실에서는 외국에서 수입해 오고 있다. 금강산은 다이아몬드 광산이라기 보다 보석럼 아름다운 산을 뜻하는 정도로 이해했지만 한의학에서 약재로 썼던 기록과 강도를 실험한 기록, 금광석을 책상에 놓고 감상했던 고려때 학자를 보면 무관했던 것은 아닌것 같다.
사찰의 개 이름으로 통일된 '금강'이의 영어식 이름은 '다이아몬드'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바라, 벼라vajra‘이며 ’벼락‘을 뜻한다. 제우스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무기인 '번개'이다. 다이아몬드에 대한 세계 최초 기록은 기원전 4세기 북부 인도 왕조가 작성한 산스크리트어 원고이다. 인도가 기원전 4세기부터 금광석을 다뤘을 것으로 본다.
미국 의회 도서관에 1667년에 제작한 버지니아주 지도가 있다. 지도 왼쪽 상단에 ’중국과 인도해(The Sea of China and Indies)‘라고 돼 있다. 가운데 인물은 드레이크 경이다. 1667년은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선지 30년 됐을 무렵이다. 서양에서는 버지니아 동부 연안을 왜 중국해와 인도해라고 했을까.
https://www.loc.gov/exhibits/lewisandclark/images/LC007.jpg
콜롬부스는 아메리카를 서인도로 착각했다고 배웠는데 어떤 학자는 "미국이 왜 신대륙이어야 하는가" 반문했다. 그러게. 지금은 중국을 ’차이나‘라고 부르지만 그 당시에는 ’지나(支那)‘라고 불렀다. 스페인은 ’치노‘라고 하고 프랑스와 독일어는 ’시나‘로 발음한다. 영국에서 청일전쟁을 '시노 차이나 워(sino-japanese war)'라고 한다.
'지나'는 중국인들을 얕잡아 부르는 말이라고 해서 '차이나'로 발음이 바뀐지 오래되지 않았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지 일본에서는 라면 그릇을 '지나면기', 번개 문양과 봉황이 새겨져 있는 그림을 '지나화'라고 한다.
인도에서는 불교에서 지켜야할 계율을 '시라(Sila尸羅)'라고 한다. '멋있다'는 뜻이다. 신라 때 학자 ’최치원‘은 세상에 선한 뿌리를 만든 자들은 ’시라(尸羅)의 땅‘에 의지하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자로 '시(尸)'는 베풀고 혜택을 준다는 뜻이며 코끼리가 누워 있는 모양이다. 코끼리가 누워 있는 모양의 비단(羅)국이 신라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은 자명하다.
지나, 시나, 시라가 우리나라와 관련 있다면 저 버지니아 지도가 꽤 흥미롭지 않은가. 기원전 4세기부터 다이아몬드를 다뤘던 인도가 신대륙이 아닌 그냥 '아메리카 대륙'에 오래전부터 존재했다면 콜롬부스는 착각한게 아니라 제대로 찾아간 것이고 신대륙 발견의 목적이 다이아몬드 광산을 찾으러 간 것이 아닐까 싶다.
위 지도를 보고 미국에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는지 찾아보니 수도 워싱턴DC가 있는 매릴랜드주에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34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캔 역사가 있다. 신부들이 결혼 예물로 받는 다이아몬드가 1캐럿이나 0.5캐럿 정도인데 34캐럿이면 상상이 안된다.
우리나라 선조들이 기록한 다이아몬드가 나는 곳은 ‘물가’라고 했다. 미국은 애팔래치아 산맥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려가는 물이 만든 강줄기가 수백개가 되고 오징어 다리가 바다에 빠진 것처럼 반도들이 많아 퇴적물들이 쌓일 최적의 조건이다. 버지니아 동부 연안은 강철이 나서 철령과 같은 아이언 힐, 아이언 마운틴이 있다.
미국 남서부 ‘아칸서주’에서는 돈을 내면 다이아몬드를 흙물에서 채굴하는 체험 학습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기껏해야 딸기 체험인데 미국은 금도 아니고 ‘다이아몬드’를 채굴해 간다. 얼마나 흔하고 흔한 금강산 나라인가. 부러우면 지는거다.
https://www.gousa.or.kr/experience/search-diamonds-tiny-arkansas-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