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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Jan 08. 2024

아이다호 : Corea의 만리장성

#만리장성 #북경 #peking #pekin #아이다호기사 #기린

우리나라의 만리장성(Great wall)


몇 해전 북한과 인접한 중국 집안현의 고구려 유적지 답사를 갔을 때다. 공중 화장실에 들어 갔다가 깜짝 놀라 돌아 나왔다. 상상해 본 적 없는 광경을 보고 동행했던 분들께 무슨 큰일이 난 것처럼 알렸다.


"선생님!! 화장실에.... 칸막이가 없어요!!!"


좌우로 여섯개가 놓인 재래식 변기 위에 허연 엉덩이를 내놓은 사람들이 볼 일을 보고 있었다. 어느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는 앉은키만한 칸막이가 있어 다행이였다. 최대한 무릎을 굽혀 옷을 내리고 앉았는데 눈 앞에 30미터도 안되는 거리에 남자들이 옆 화장실로 가는게 훤히 보였다. 눈이 마주칠까 조마조마 했다. 2013년도 만리장성을 갔을 때는 달랐다. 화장실에 대한 기대를 내려 놓아서인지 예상보다 깨끗해 이게 웬일인가 싶었다. 직원 한 사람이 상주해 쓸고 또 닦았다. 전세계인들이 찾아오는 관광지이다 보니 정부에서 청결하게 관리하는 것 같았다. 


만리장성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보니 수원화성보다 못한 축성 솜씨여도 무조건 비범해 보였다. 시간과 돈을 들여 그곳까지 갔으니 없던 만족감도 끌어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이라는 푯말 앞에서는 '세계문화유산인데...'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 권위를 이용해 다루기 쉬운 사람이 내가 아니고 누구겠는가.



1920년 내셔날지오그래픽의 한 취재원이 서울, 코리아를 방문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서울에서 가장 즐거운 여행 중 하나는 인력거를 타고 북경이나 독립문을 지나 산 사이로 굽이치는 그림 같은 길을 지나가는 것이다"


원문) 

One of the most enjoyable trips from Seoul is by rickshaw past the Peking or Independent gate through a picturesque road winding among the mountains.     


"이 시점에서 한국의 만리장성 건설은 공학적 기술의 경이로움으로 나타나서 접근하기 어려운 요새처럼 보인다."


원문)

The construction of the great wall of Corea at this point appears a marvel of engineering skill, so seemingly inaccessible is this mountain fastness.


원문)

https://www.loc.gov/resource/sn86091100/1922-07-06/ed-1/?sp=5&r=-0.485,0.173,1.58,0.707,0


서울과 북경이 옆 동네인 것처럼 다녔다. 산 사이로 굽이치는 그림 같은 길을 지나는데 한국의 만리장성 건설 기술에 탄복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외국 사람들이 먼 나라를 찾아왔으니 지명을 헷갈렸겠지. 북경을 서울로 착각했겠지. 스스로 이해를 도왔다. 


내가 분명히 비행기 타고 북경을 가고 만리장성을 갔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서울 Seoul~ 코리아 Corea~ 만리장성 Great Wall~'


나는 이 기사를 우연히 미국의회도서관에 공개된 '아이다호 주간 신문'에서 봤다. 그곳에서 직접 취재한 것은 아니다. 1888년도에 설립한 워싱턴D.C의 '내셔날지오그래픽협회'에서 제공한 기사다. 그들은 왜 서울, 코리아에 북경이 있고 만리장성이 있다고 했을까? 내가 중국에서 본 것은 뭐고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본 만리장성은 뭘까? 둘 중에 하나는 가짜이거나, 둘 다 가짜이거나, 둘 다 진짜이거나... 가능한 추론을 했지만 알 수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500여년전 우리나라에 '만리장성'이 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있다. 세종대왕 때 편찬한 지리서 154권 '평안도'편에 의하면,


옛 장성(古長城)

세속에서 전하기를 '만리장성'이라 하는데(俗傳萬里長城), 인산군 서쪽 진병곶강으로부터 쌓기 시작하여(自麟山郡西鎭兵串江始築) 의주 남쪽을 지나서(歷義州南) 삭주, 창성, 운산, 영변에 연하여 뻗치고(連延朔州,昌城,雲山,寧邊), 희천 동쪽의 옛 맹주 지경에 이르며(至于熙川東古孟州之境), 함길도 정평 지경에 닿았다.(接于咸吉道 定平境) 


조선 영조 때(1757년∼1765년)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의 평안도 지도를 보면 파란색 지명이 만리장성이 축조되면서 거쳐간 곳이다. 

여지도서의 평안도



의주도에 나온 만리장성 시작점은 왼쪽 하단 '고장성(古長城) 인산(麟山, 기린산)'이다. 



고려 8대 왕인 현종(1009 - 1031)때 기록에 의하면,


인주에 1,349간 규모의 성을 쌓다


〈현종(顯宗)〉 21년(1030)에 인주(麟州)에 성을 쌓았다. 1,349칸이고, 문(門)은 9개, 수구(水口)는 2개, 성두(城頭)는 23개, 차성(遮城)은 6개, 중성(重城)은 55칸이다. 


이 성의 건물 규모는 북한산성과 비교하면 10배가 넘는다. 물이 들어오는 입구는 2개, 성의 꼭대기가 23개, 본성을 방어하기 위한 차성이 6개, 성벽이 내벽, 중벽, 외벽 등 여러겹으로 되어 있는 중성이 55칸이다. 평안도에 있는 '숙주, 박주, 선주, 귀주, 용주'도 1천칸이 넘는 규모의 성을 쌓았다. 


평안도 축성 지역과 규모


고려때 평안도 축성 규모


평안도는 고려초부터 말까지 35곳에 성을 쌓았다. 성을 쌓다가 볼 일 다 본 곳이다. 이곳은 홍건적, 거란, 몽골, 여진 등 20만~30만 대전이 벌어진 지역이다. 기록을 보면 1천년 이상 항시 침략에 시달린 곳으로 뛰어난 장군이 아니면 지키지 못한다. 1010년 고려 현종때는 거란군 400,000명이 쳐들어 와 격퇴시켰다. 양국의 군대가 맞섰다고 가정하면 800,000명이다. 1904년에는 8만명이 사망한 러일전쟁의 무대이기도 하다. 


조선 정조 때 편찬한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정인지(鄭麟趾)가 《고려사》 지리지(地理志) 기록을 언급하며


“인주(麟州)에 장성(長城) 터가 있는데, 덕종 때(고려 9대 왕)에 유소(柳韶)가 쌓은 것이며, 주(州)의 압록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는 고려의 병지(兵志)를 근거로 인주가 '국내성'과 인접했다고 한다. 국내성은 고구려가 500년동안 도읍할 정도로 견고하고 큰 성으로 알려져 있다.


옛 국내성 경계가 압록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부터 시작하니 국내성은 마땅히 옛 인주(麟州)의 지경 안에 있을 것이다.” 


인주의 장성과 고구려 도읍지 국내성이 연결돼 있었을 것이다. 다른 기록에는 국내성이 마치 만리장성 시작인 것처럼 기술했다. 


조선 후기 학자 최현의 '인재집'에서,


 "옛 국내성(國內城) 부근에 압록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위원(威遠), 흥화(興化:의주), 정주(靜州), 영해(寧海), 영삭(寧朔), 운주(雲州), 안수(安水), 청새(靑塞), 평로(平虜), 영원(寧遠), 정융(定戎), 삭주(朔州) 등 13성(城)을 넘어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기까지 수천 리에 걸쳐 돌로 성을 쌓았으니, 높이가 25척이요 너비도 그와 같다. 시작 지점부터 끝나는 곳까지 가려면 무려 석 달이나 걸렸다. 이로부터 동서의 오랑캐 도적들이 감히 변경을 엿보지 못했다"


위에 열거한 13개의 장소는 모두 평안도 지역이다. 높이 25척은 지금의 단위로 환산하면 대략 7.5m이다. 장성의 시작과 끝지점까지 가는데 무려 3달이 걸렸다고 한다. 서쪽에서 동쪽까지 수천리에 걸쳐 돌로 쌓았다고 하니 장관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평안도와 함경도를 뱅글뱅글 돌아도 수천리가 나오기 힘들다. 국경이라 함은 강이나 산맥을 경계로 하는데 북한과 교류를 하지 못하니 확인할 길이 없다.


계속해서 세종실록 지리지 기사를 보면,


"세간에 전해져 오길 만리장성(萬里長城)은 세 겹의 황지(隍池)로 둘러 쌓여 있다"


성을 둘러싼 '황지'란 물 없는 '해자'이다. 한 겹도 아닌 세 겹이다. 성 주위를 판 흙은 어떻게 했을까? 그것으로 성벽을 쌓았다. 일거양득의 방어 시설이다. 임진왜란 때 왜놈들이 해자를 메꿔 공격해 왔다고 하는걸 보면 물 없는 해자였을 것이다. 중국판 구글이인 '바이두'에서 '황(隍)'을 검색해 보면 왕이 아주 많은 인마(사람과 말)를 거느리고 쌓은 성이라고 했다. 


흔히 만리장성은 산성에만 있는 것으로 연상 되는데 미국 MIT 공대의  문화 시각화 연구 자료의 '페호(北河)에서 북경까지 조감도'를 보면 북경 전체를 둘러싼 성벽이 '만리장성(Great wall)'이다. 북경은 가운데 1)임페리얼 시티가 있고 양 옆으로 2) 타타시티가 감싸고 있다. 맨 뒤에 3)포비든 시티인 자금성이 있고 맨 앞에 4) 차이니즈 시티가 있다. 지금 베이징에 있는 자금성은 전체 도성의 일부분인 것을 알 수 있다. 


북경 조감도


미국 지도에 표기한 만리장성


1909년 2,400km에 달하는 만리장성을 미국 지도에 그린 사람이 있다. 사진작가이자 탐험가인 윌리엄 에드가 게일(William Edgar Geil) 박사는 미국인 최초로 만리장성을 방문했다. 그는 '지나(차이나)의 만리장성(Great Wall of China)'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미시시피 강 왼쪽 캔자스주에서 동북부 토끼 꼬리처럼 말린 메사추세츠 해안까지 '만리장성'을 표기했다. 




만약 미국에 만리장성이 있다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같은 위도로 나타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장성의 서쪽 시작은 미시시피강을 중심으로 왼쪽 캔자스주이다. 강을 건너서 미주리주와 아칸소주에 2개의 원으로 돼 있다. 오하이오주와 펜실베니아주, 웨스트버지니아주 세 곳을 걸쳐서 둥글게 성벽으로 막고 있다. 그 아래 노란 부분이 북경이다. 만리장성 동쪽 끝인 '산해관'은 뉴저지쯤에서 끝난다. 


그런데 오른쪽 아주 작은 글씨로 현대 자동차 SUV 차량 이름인 '펠리사이드(보라색:Palisade)'라는 요철 무늬가 있다. 뉴욕을 거쳐 메사추세츠까지 특별하게 표기한 펠리사이드는 무엇일까?


 

네이버 사전에서 찾아보면


1. 명사 (특히 과거 건물 보호용으로 치던) 말뚝 울타리

2. 명사 美 (특히 강가나 해안을 따라 울타리처럼 나 있는) 깎아지른 절벽


이다. 만리장성은 건물 7층 높이니 1번 말뚝 울타리는 아니고 2번 깎아지른 절벽이다. 만리장성 동쪽 끝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돼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위치에 실재로 '깎아지른 절벽 펠리사이드'가 있다.



위 사진은 뉴욕주 동부를 흐르는 길이 507km의 허드슨 강 절벽이다. 암석에 기댄 나무들이 단풍이 들었다. 뉴욕 남쪽 뉴저지의 팰리사이드 주경계 공원에도 바다와 인접한 절벽이 웅장하다. 미국의 랜드마크라고 한다. 그런데 실재 사서에서 만리장성 동쪽 끝이 거대한 수목으로 길게 뻗어 적을 방어했다고 나온다. 기록에만 있어서 청나라가 망하면서 모두 베어 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리장성 동쪽끝인 이곳에 무너진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다. 


허드슨강 팰리사이드 공원 성벽터
팰리사이드 파크 성벽 터 - 대머리 독수리등 조류 관찰지


성벽 밖으로 무너진 돌 들


미국에 표기한 만리장성 지도 하단에


 "차이나(지나)의 만리장성은 미국 지도에 센트럴 킹덤과 거의 같은 위도를 차지하고 있다(The Great Wall of China, upon a map of the United States, occupying roughly the same latitude as in the Central Kingdom)"


만리장성을 중국 지도에 표시하지 않고 왜 미국에 했을까? 그당시 유행이었을까? 시카고 인근 일리노이주에 '북경(Pekin)'이라는 도시가 있다. 1960년 일리노이주 역사학회지에 프레드 소디(Fred W. Soady)가 발표한 논문(In This Waste Places)에 의하면 1830년에 '북경(Pekin)'의 초기 정착민 중 한 명인 나단 크롬웰( Nathan Cromwell) 소령의 아내가 '중국의 베이징과 같은 위도(정반대편)'에 있어서 지었다는 것이다.


참고)

https://www.pekintimes.com/story/lifestyle/2011/12/05/how-did-pekin-get-its/63862640007/


일리노이주의 북경(Pekin)도시의 아이스하키 팀


뉴저지 펠리사이드


우리나라 만리장성도 미국에 표기한다면 어떤 모양, 어떤 규모였을까. 서울에 북경이 있고 만리장성이 있다면 미국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1920년 내셔날지오그라픽 취재원들이 우리나라 황궁(Imperial palace)을 방문했을 때 그 성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기록이 있다. 


1896년에 '루이스 조던 밀른'이라는 미국 여류 작가가 서울을 방문해서 쓴 '크웨인 코리아(Quaint Korea)'라는 책을 냈다. 그곳에는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데 놀랍게도 서울 시티가 자금성 규모이며 코리아 사람들은 '타타르'에 가깝다고 했다. 이 책의 내용은 나중에 언급할 예정인데 MIT 공대에서 연구한 '페호에서 북경까지 조감도'의 '타타 시티'를 보고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타타시티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1920년대 내셔날 지오그래픽 취재원들이 방문한 서울의 만리장성 기사가 오류만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전세계에 퍼져 있는 '코리아(Corea)'라는 패밀리 네임을 쓰는 서양인들의 얘기를 풀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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