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적사 #개 #북한산 #등산 #기도 #김밥
동네에 있는 김밥 집을 갔다
홀에는 까만 김이 멍석 말이한채 은박지에 쌓여 까만 비닐에 들어가고 있었다. 주방에는 가스불이 후라이팬을 데우며 열을 토해 내고 있었다. 계산대에 카드가 들어가고 영수증이 나왔다. 10평 남지 공간에 네 명의 친절한 앞치마가 움직였다.
가게 문을 열고 찬기를 몰고 들어선 흰 머리에 인상을 쓴 중년 남성이 들어서며 떡라면을 시켰다. 눈은 벽에 걸린 TV로 향하며 의자에 앉았다. 내가 주문한 김밥이 나올때쯤 그의 음식도 나왔다. 하얀 애나맬 그릇을 몸쪽으로 가져가더니 팔을 니은자로 테이블 위에 놓고 떡라면을 내려다 봤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며칠전 정월 대보름 전날 북한산을 갔었다. 점심 시간이 다가와 노적사에 들렀다. 특별할 것도 없다. 관광객처럼 사찰을 둘러보며 속으로 '공양간, 공양간'을 찾았다. 오가는 사람도 없고 고요해서 돌아 나갈때쯤 등산복 차림의 중년 여성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녀를 따라가니 '공양간'이 있었다. 반지하처럼 건물 아래 자리를 잡아 눈에 띄지 않았다.
함께 간 지인들을 불러 '공양간!'을 입모양과 눈짓, 표정으로 말했다. '무료'로 먹는 절밥이 낯설고 조심스러웠지만 대보름 전날이니 '나물 반찬'을 기대했다.
아담한 키에 밥을 퍼주는 공양주 분이 밥 먹기 전에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와야 한다고 했다.
"네? 그냥 인사만...."
잘못을 한 것 같아 작은 목소리로 '나중에 해야겠네요'라는 말을 흘리며 눈은 반찬을 탐색했다. 얼어 있던 식탐이 해동이 됐다. 반찬을 집은 손은 욕심껏 그릇에 담았다.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국 그릇으로 반찬과 밥을 가리며 자리에 앉았다.
따끈한 미역국에 대여섯가지 반찬과 김치, 떡과 빵, 과일 후식까지 황홀했다. 입과 눈, 귀밑에 들리는 여물씹는 소리에 행복, 평화, 사랑, 자애 세상에 좋은 말은 다 튀어 나왔다.
식기는 각자 설거지를 할 수 있게 퇴식구에 개수대가 있었다. 맛있게 먹은만큼 깨끗하게 다른 사람의 그릇까지 받아서 닦았다. 공양간을 나가면서 들어올 때 보지 못했던 기도문이 보였다.
큰 울림이 되어 그자리에서 외웠다. 몸에 온기가 돌고 포만감에 발걸음이 느긋해지면서 절을 빠져 나왔다. 부황사지 절터로 향한을 틀어 올라가니 오래된 고목 아래 평상이 놓여 있었다. 잠시 쉬었다 가려고 앉았는데 몰골이 꼬질꼬질한 개와 눈이 마주쳤다. 젖 가슴이 분홍빛으로 불어 있었고 갈비뼈가 드러났다.
애를 낳고 수유를 할 때 뒤돌아 서면 배고프고 먹으면서도 배고팠던 기억이 났다. 점심으로 싸간 도시락을 바닥에 떨어뜨려주니 그르릉거리는 소리를 냈다. 빨리 달라고 끙끙대는 것도 아니고 경계하는 소리를 내서 헷갈리게 했다.자리를 피해주자 냄새를 조금 맡더니 허겁지겁 먹었다. 절에서 받아온 시루떡도 잘라 줬다. 함께 등반한 지인이 싸온 오곡찰밥도 줬다. 잭팟이 터진 날이다.
절에서 먹은 밥이 내게서 끝나지 않는구나 싶다. 산다는게 밥 한끼 잘 먹고 마음 편하면 되는데 오늘은 쉽게 해결됐다. 음식 한 그릇 내게 오기까지 씨뿌리고 돌보고 거두고 마름질해 온갖 양념을 버무려 오기까지 하나님, 부처님 당신 아닌게 없다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햇빛이 비치는 언 땅위에 젖가슴을 내려 놓고 앉은 어미개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