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보고서

#보고서 #모니터링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보치아 #스포츠윤리센터 #승강기

by 가쇼

며칠전부터 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모니터링 일을 가게 됐는데 종목과 지역이 궁금했다. 담당자에게 메일이 오자마자 마우스 휠이 클릭으로 전환됐다. 20명이 넘는 신청자들 중에 내 이름 석자와 보치아라는 명사를 발견했다. 보치아? 태어나 처음 본 텍스트 같은데 올림픽에서 양궁이 9연패를 한 것처럼 패럴림픽에서 9회 연속 금메달이란다. 비중있는 종목에 나를 배정한 것 같아 으쓱해하며 담당자가 고마웠다. 며칠뒤 지인에게 보치아 모니터링 얘기를 했더니 작년에 인권위에서 들었던 강연 중에 휠체어를 타고 온 남자 변호사 기억나지? 그 사람이 보치아 얘기 했었잖아 한다. 그가 보치아 얘기를 했었나?


내 앉은키보다 조금 높았던 강연자가 낯선 기운을 밀고 들어온 기억이 난다. 그가 손바닥 높이만한 무대 앞에 멈춰 섰을때 경사로 없이 어떻게 올라서지? 했다. 그의 앞 바퀴가 위로 들리며 고함치듯 쿵소리를 내어 착지했을 때 김연아가 공중돌기하다가 착지한 공연을 본 것처럼 청중들이 박수를 쳐댔다. 턱 있는 무대를 휠체어로 올라선게 박수 받을 일인가. 어떨결에 친 박수의 어색함을 농담으로 무마해주길 바랬다. 하반신 지체 장애인이 어떻게 그 어려운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는지 촘촘하게 그의 헤어 스타일과 눈썹, 얼굴선 안쪽에 자리잡은 이목구비로 시선을 옮겨 다녔다. 공부가 제일 안전했어요 같은 비현실적인 얘기는 끝내 나오지 않았지만 지체,지적 장애인에게 보치아 경기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꾹꾹 눌러 말했다. 나는 그가 변호사로 얼마나 버는지, 일상의 불편함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어머니는 어떤 교육열을 불태웠는지 감수성 떨어지는 장애 호기심에 열을 올렸다. 보치아 경기 모니터링을 앞두고 그가 한 강연 내용을 기억 못해서 한숨이 나왔다.


<1일>

안동실내체육관에 들어서니 아직 10월인데 텁텁한 온풍기 열기로 호흡이 거북했다. 교장실 귀빈석 같은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고 낯선 상황에 마음이 쫄아 들었다. 8개 코트에서 2명씩 경기를 치루는데 팔을 쓸 수 없는 선수들이 입에 막대기를 물고 270그람의 가죽공을 밀고 있었다.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시선으로 당구칠 때 각도 계산하듯 공을 응시한뒤 보조인들의 도움으로 장비를 움직여 가며 경기를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낯선 광경에 거북이처럼 목을 빼고 보는데 어디서 나오셨죠 하는 질의가 왼쪽에서 들려왔다. 날카로운 면도기로 가늘고 고운 머리카락 끝을 잘라 조명에 반짝 했다. 체육복 차림의 젊은 마스크 위에 눈을 응시했다. 내 목에 달린 ID카드를 보여주며 어디에서 나온 누구라고 소개를 했다. 그쪽 직원이세요 사업비 받아서 파견된 분이세요? 했다. 네? 하고 눈을 키워 젊은 마스크에게 재차 물었더니 똑같은 질문을 했다. 국가기관에서 파견됐지만 힘없는 자격 미달자 같은 기분을 상기시켰다. 그가 건낸 차가운 생수를 작아진 마음에 벌컥벌컥 들이 부었다


답답한 공기를 피해 밖으로 나왔는데 햇볕을 쬐고 있는 두 명의 선수가 보였다. 핑크색 점퍼를 전동 휠체어에 걸친 선수가 오른쪽으로 두 팔과 얼굴이 쏠려 있었다. 그의 왼편에 있다가 오른쪽으로 가서 허리를 숙여 왼쪽 귀로 들었다. 지체 장애인과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어서 뚝뚝 끊어지며 늘어나는 단어를 조합해 듣느라 신경을 곤두세웠다. 1시간 정도 들으니 내 듣기 실력도 늘어 농담을 주고 받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가 14살에 시설에 보내져 버림받은 심정과 그곳에서 보치아 경기를 알게 됐다는 점, 26살에 시설에서 나와 독립했다는 얘기는 유쾌한 표정에서 낙천적인 성격을 짐작했다. 한번 사는 인생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라고 했다. 그가 보치아 경기가 열리는 실내 체육관의 문제점을 직접 안내해서 알려주겠다고 해 이게 웬떡이냐 싶었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한쪽이 편마비인 사람들은 장애인 화장실에서 360도가 회전돼야 하고 변기가 벽으로 쏠려 있으면 안된다고 했다. 그의 도움으로 이동식 장애인 화장실 문제점까지 알고 나니 보고서용 모니터링을 채울 수 있겠다 싶었다.


<2일>

아침 일찍 경기장에 도착해 64강 개인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수동 휠체어를 탄 선수들은 직접 공을 던질 수 있어서 장비없이 복도에서 연습을 했다. 경기를 치루기 위해 입장한 경기도 소속팀 엄마가 보였다. 아들의 어깨를 어찌나 열심히 주무르는지 간절한 기도를 보는 것 같았다. 나도 경기도민이니 속으로 그 선수를 응원했는데 4:3으로 역전패를 당했다. 엄마 마음이 어떨지 안봐도 비디오다. 경기장 왼쪽 벽에서 운영진들이 점수를 기록하고 선수들과 심판을 관리 감독하고 있었는데 어제부터 눈여겨 봤던 한 운영진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그는 5살때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단했다고 했다. 그가 잘나가던 공무원을 때려치우고 보치아 심판 총 책임자가 된 것은 성장하면서 주변에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란다. 그것을 사회에 돌려 주고 싶어 주저없이 선택했다고 했다. 경기장 중앙에 회색 자켓을 입고 있는 희끗희끗 머리의 남성을 가르키며 저분이 보치아 경기를 이끈 전설이라고 했다. 물리치료사이신데 1988년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보치아 대회가 끊어지지 않게 이끌어온 분이라고 했다. 그와 인터뷰를 하면서 운영진의 속사정을 듣게 됐고 한 사람의 집념이 얼마나 많은 지체,지적 장애인과 가족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했는지 혼자 감동으로 배를 채우고 경기장 밖으로 나왔다. 경기도 소속팀 천막이 있는 곳을 향해 갔다. 주홍색 귤 5개를 까서 입으로 가져가 오물거리는 속상한 마음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어제 인사드렸던... 아까 아드님 경기 잘 봤어요. 못보셨죠? 그랬더니 아뇨 몰래 커튼 사이로 봤어요. 아우 져서 속상하시죠? 했더니 네에 할 수 없죠 뭐 하신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실력이 좋은 선수를 둔 학부모로 마음이 어떨지, 어떤말로 위로가 안된다. 아들이 고3때 중요한 경기에서 큰 실수한 기억이 떠올랐다. 강릉 소나무에 대고 얼마나 울었던지.


<보고서>

1박2일 모니터링을 끝내고 집으로 오자마자 모니터링 체크리스트 파일을 불렀다. 선수들, 운영진, 학부모, 지도자들 도움으로 이번 보고서는 문제 없겠다 싶었다. 지금까지 제출한 보고서와 체크리스트를 한덩어리로 작성해 제출했는데 체크리스트 따로 보고서 따로 제출하라는 전체 메일이 왔다. 나를 두고 한 말 같았다. 체크리스트를 열어 하나씩 작성해 가는데 승강기 점검에 관한 사항에서 멈춰섰다. 떠나기전에 장애인체육대회 체크리스트를 왜 안보고 갔을까, 그동안 관성으로 머리속에 있던 시설 점검 사항을 확신했던 불찰을 상기하며 일단 거짓말로 쓰기 시작했다.


(승강기 점검)

ㅇ 장애인용 승강기의 내부 공간은 넓고 이동하는데 불편하지 않는가?

불편했음.


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넉넉했음이라고 했다가 지웠다. 그냥 보통이라고 쓸까 하다가 지우고 그냥 불편했음이라고 썼다.


ㅇ 승강기 내외부에 승강기 안내, 층수 등에 대한 점자가 안내되어 있는가?

있음.

그런데 없으면 어떡하지? 있겠지? 화장실은 점자 안내가 되어 있으니까 6천명 수용하는 실내체육관에 점자 표시가 없을라구. 있음이라고 했다.


ㅇ 승강기 내외부에 도착, 운행 상황을 표시하는 점멸등이나 음성 신호 장치는 되어 있는가?

있음.

이라고 썼다가 다시 지웠다. 음성 신호 장치가 없으면 어떡하지? 없을라나? 머리속으로 다른 체육관에서 봤던 것과 극장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는 작은 스피커가 떠올랐다.


거짓말로 쓰고 나니 만약 사실이 아닌데 들통이라도 나면 무슨 망신인가 싶어 다시 안동을 갔다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속 눈알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왔다 갔다 굴러다녔다. 아참 이럴때 전화가 있었지! 안되겠다 싶어 안동실내체육관 시설팀에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하는 경상도 억양의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내 소개와 시설 점검에 대한 취지를 알리고 엘리베이터에 음성 신호 장치가 있나요? 하고 물었다. 그는 반색을 하며 엘리베이터요? 없는데요? 하며 당당하게 반문했다. 네? 엘리베이터가 없어요? 장애인체육대회를 치룬 경기장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요? 경상도 억양이 말을 이어갔다. 체육관 정문에 장애인 슬로프가 있어요 한다. 장애인 슬로프요? 이상하다 그쪽 찍은 사진을 보니 장애인 슬로프는 보질 못했는데 제가 서문에 있는 장애인 경사로를 봤는데요 그거 말하시나요? 했더니 아뇨 장애인 슬로프가 있어요 한다. 그에게 미안하지만 사진을 찍어서 보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씩씩한 답변이 들려왔다. 정문에 장애인 슬로프를 왜 못 봤지? 슬로프라고 하니까 스키장의 슬로프가 떠올랐고 고대 아이스하키 링크에 있는 버튼을 누르고 있어야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같은게 떠올랐다. 몇시간 뒤 사진을 받고 보니 내가 봤던 장애인 경사로 그대로 였다. 그가 말한 슬로프는 경사로였다. 내 귀에 남은 그의 말이 떠올랐다. 서문쪽에 엘리베이터 공사를 해야 하는데 안동시 코로나 백신 접종 센터로 운영하고 있어서 공사를 못하고 있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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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강기에 관한 거짓말은 다 지우고 장애인체육대회에서 엘리베이터 없는게 말이되냐는 심정으로 당당하게 문제점을 써 나갔다. 그가 보내준 사진을 첨부해서 무슨 큰 허점을 발견해서 임무를 완수 한 것처럼 말이다. 거짓말로 썼던 모니터링 답변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지우고 책임감 있게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 노쇠한 키보드를 두들겨 댔다. 보고서 말미에 내가 직원이냐 비직원이냐 같은 질문을 받았다는 고자질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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