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세대 #주차 #과태료 #주차위반 #오지랖
어려서 땅을 밟고 살았다. 대문을 나서면 온화한 봄 기운부터 숨이 턱하고 막히는 한여름 열기, 스산해지는 가을, 새하얀 눈으로 산천을 덮는 눈 내리는 모습까지 매 순간 계절의 변화를 음미하며 보냈다. 중학교 때 도시로 올라오면서 작은 시멘트 마당이 있는 주택에서 벽 하나를 두고 공중 부양해 사는 아파트까지 주거의 형태가 변해 갔다. 신혼때 복도식 아파트에 살면서 양계장의 닭들과 뭐가 다를까 싶었다. 아이를 낳자 마자 각종 예방 접종 주사를 맞혀야 하는것도 똑같고 마당없이 네모 반듯한 곳에 사는게 같다 싶었다.
내일 쌀이 떨어져도 오늘 누군가 나눌 수 있다면 아낌없이 소비한 덕에 단독주택 단지가 현재의 주거지가 됐다. 말이 단독이지 옆집과 벽하나로 붙어 있는 다세대이다. 옆 집에서 깔깔대는 소리, 핸드폰 울리는 소리까지 공동체를 외치는 이들에게 경험을 해주고 싶다. 나는 공동육아보다 개인 육아가 좋고 공동체보다 개인주의가 좋다. 그래도 옥상을 쓸 수 있어 좋고 엘리베이터 없이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다리가 튼튼해져서 좋다.
한가지 난간은 주차다. 집 앞에 주차 영역이 없다보니 비어있는 곳에 차를 대서 다음날 어디에 주차를 했는지 생각해 내야 했다. 나이드니 점점 희미해진 기억 때문에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다가 남편과 싸운다. 그거하나 기억하지 못하냐, 잘 생각해 봐라. 너는 뭐 어떻구 저떻구.
다세대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이사가 잦고 자동차가 없다. 대신 인근 상가 건물에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주차했다가 빠져 나가는 구조다. 그러다보니 내가 사는 곳에 내가 주차할 곳이 없을데가 많다. 찾다보면 어딘가 주차할 곳이 나오긴 한다. 문제는 아들내미다. 늦게 귀가하면 주차 자리가 없어서 텅빈 건널목 코너에 주차를 하고 들어온다. 그러면 어김없이 바지런한 누군가 밤11시인데 사진을 찍어 신고한다. 과태료가 8장까지 날라 왔다. 그러면 다음에 주차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또 주차를 하고 들어온다. 주차장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잔다. 돈 없어.
불 같이 화를 내보고 다정하게 타일러도 보지만 오기의 황제 자리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이 또 댄다. 도대체 밤 11시에 인적이 없는 건널목에 사진을 찍어 신고 하는 분은 누굴까. 어떤 물상인지 과태료를 낼 때마다 누가 고발했는지 사정을 말하고 따지며 설명하고 싶지만 누군지 알 수도 없고 확인할 수도 없는 그 혹은 그녀, 혹은 정신적으로 남인지 여인지 모르겠지만 원망스러웠다.
어쩌다 운 좋으면 집 앞에 주차를 해 '아싸;한다. 몇 달 전 교회 집사님으로부터 모닝 차 한대를 받았는데 이천씨씨 차량만 몰다가 경차를 모니 주차 편해 통행료 감면과 연비까지 큰 호사를 누리는 것 같았다. 큰 차는 다른차와 부딪히지 않으려고 왔다갔다 갔다왔다를 몇번 하든가. 땀을 뺀다. 경차는 공간 감각이 부족한 나에게 신세계다. 대충 대도 앞뒤, 옆이 널널해 주차하고 내려서 사방을 둘러 보며 스스로 대견해 했다.
그러던 어느날. 차를 빼려고 거북이처럼 목을 내밀어 앞 차와 간격을 가늠하고 있었다. 마침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냉커피 한잔을 든 40대 초반의 비쩍 마른 남자분이 내 차 옆에 멈췄다. 오른쪽 팔을 크게 돌리며 핸들을 꺾으라는 수신호를 보내 부딪히지 않게 도움을 주고 사라졌다. 고맙다는 말을 주고 받을 틈도 없이 각자의 길을 갔다. 아 인사를 할 걸 왜 못했지?
그리고 며칠뒤. 그날은 노란 머리를 염색한 50대 후반의 남자분이 '어어어어어'를 외치며 내 차를 두 손으로 막아 세웠다. 백만년만에 알바를 뛰러 가는 남편을 사무실에 데려다 주려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집에 두고 온 물건이 있어 남편에게 전화를 하면서 차에서 내렸는데 사이드 브레이클 채우지 않았다. 턱에 대놨던 차가 그대로 뒤로 밀렸다. 골목길 사거리라 차들이 오가는 곳이었다. 나는 재빨리 차를 다시 타려고 문을 열었고 노란 머리 아저씨는 나보다 더 큰 소리로 놀라며 두 손으로 트렁크 쪽을 막아 세웠다. 차가 가볍길 망정이지. 다시 사이드 브레이클 채우고 주차를 하는 사이 노란 머리 아저씨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고맙다는 인사를 못했는데 어디로 가신거지? 다음에 만나면 꼭 인사 해야지.
과태료 내면서 씩씩댔던 마음이 그분들의 덕에 흐뭇해 했다. 갑.자.기 퍼뜩 어떤 생각이 스쳤다. 설마 사진 찍어 고발한 오지랖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