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쇼 Nov 30. 2024

과거시험 도시락

#쌀국수 #과교미선 #운남성음식 #운남성전통음식

"앗 뜨거!"


중국 윈난성 리장을 여행 중이었다. 시내에 있는 쌀국수 집에 들어가 점심을 먹다가 지인이 그릇에 턱을 데었다. 벌겋데 달아 올라 약한 화상을 입었다. 급한대로 손수건에 차가운 물을 적셔 화기를 빼라고 했다. 그날 우리가 먹은 음식은 세숫대야 크기의 뜨거운 돌 솥에 담긴 쌀국수였다. 


지인은 음식을 흘리지 않으려고 그릇 가까이 얼굴을 댔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은 '과교미센'이었다. 종업원이 마포대교처럼 생긴 쟁반에 12가지 야채가 담긴 접시를 들고 왔다. 사람당 하나씩 놔서 식탁에 빈 곳이 없었다. 음식들이 다리를 건너가는 듯 했다. 뭐 어떻게 하라는 거지? 알 수 없어 갸웃거렸다.



잠시 뒤 손에 물기가 벤 종업원이 세숫대야 크기의 항아리 색깔의 독기를 들고와 한 사람당 하나씩 놓았다. 가스불에 달궈졌는지 맹렬한 열기가 느껴졌다. 안에는 노란색 국물이 담겼다. 맛을 보니 닭고기를 우려낸 것이다. 아하 야채들을 하나씩 독기에 넣으면 되는구나. 하나씩 비우니 직원이 쟁반을 가져갔다. 뭐든 과장하는게 이나라 사람들 특기라고 생각했다.


음식은 불맛이라고 했던가. 국수를 먹는 동안 그릇이 온기를 품어 든든하게 속을 채웠다. '과교미센'이라는 한자를 찾아보니 지날과(過)자에 다리교(過)자 였다. 직역하면 '다리를 건너간 쌀국수'다. 5박6일동안 리장의 유적지와 옥룡설산 등 관광지를 소화했다. 나중에 여행을 이끌었던 분이 회사의 중국 직원이 들려준 얘기를 했다. 


옛날 어느 선비가 과거 시험 공부를 했다. 어느날 그의 아내가 어떻게 하면 남편에게 따듯한 음식을 먹일 수 있을까 고심하다 뜨거운 독기에 국물을 담아 다리를 건너 그가 공부하던 곳에 가져다 줬다고 한다. 매일 벌겋게 달궈진 그릇에 국물을 담아간 부인의 음덕이 소문이 났다. 어느날 그 사연을 접한 사업가가 음식으로 형상화해 사람들에게 선보여 회자시킨 것이다. 


멀리 한국에서 여행온 우리들에게까지 전해진게 유래가 신기했다. 이 음식은 베이징이나 다른 지역에서도 '궈차오미씨엔(过桥米线)'이란 이름으로 먹을 수 있다. 실제 다리 모양을 형상화한 쟁반에 음식이 나온 곳은 리장에 있던 그 식당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옛날에 쿠쿠 전기 압력 밥솥 같던게 없던 시절에는 갓 지은 밥을 아랫묵 이불속에 넣어 두었다가 일 끝나고 돌아온 아버지나 아이들이 먹었다. 


우리식으로 상상해 봤다. 손님들에게 뜨거운 돌판 위에 작은 솜 이불 같은 것을 덮고 그 안에 공기밥을 넣어둔다. 잠시 뒤 종업원이 반찬을 놓는 동안 품에 안고 있던 밥을 꺼내게 하는 것이다. 보온 밥솥이 없던 시절 식구들에게 따듯한 밥을 먹이려 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음식으로 대신 얘기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이불 속에 밥이 든 줄 모르고 제꼈다가 그릇을 엎어뜨려 아찔했었다. 요즘은 기계를 통해 메뉴를 선택하고 결제하는데 일부러 불편하고 번거로운 것을 고집하며 전하는 뭉클한 사연이 보양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쟁반 하나로 구전이 되는 사연이 오래도록 자양분이 됐다. 나는 가까운 사람에게 얼마나 마음을 쓰고 있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