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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Nov 11. 2024

한 수 배운 사연

#명리 #사주 #편인 #정인

"으아아아아~~~" 


꿈속에서 어떤 남자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렸다. "야야야, 으으으"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개 짖는 소리도 들렸다. 강아지가 낑낑대기도 했다. '좀 조용히 해주세요'라고 말을 하고 싶었다. 희미한 목소리는 선명하게 귓볼에서 들렸다. 눈을 떴다. 일어나 앉아 핸드폰을 보니 새벽 4시였다. 


나는 안동에 내려와 있었다. 1592년 임진왜란의 3대 대첩중 하나인 진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학봉 김성일 종택에서 자고 있었다. 교육방송이나 역사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많이 찾는 곳이었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성지순례하듯 찾아오는 유명한 곳이었다. 방에는 나 말고 다른 여성 둘이 더 있었다. 묵은 나무 냄새가 났다. 표백제 냄새가 나는 이불속에서 나와 동그란 문고리을 밀어 마루로 나왔다. 


찬기가 발바닥에서 전해졌다. 술취한 남자 목소리가 마당 깊숙한 곳에서 났다. 댓돌에 놓인 슬리퍼를 내려다 봤다. 검정 비닐 봉투 같은 까만 색에 새빨간 동백꽃 무늬가 귀엽게 새겨졌다. 안동 장터에서 팔 것 같았다. 일산 오일장에서도 못보던 디자인이었다. 맨발로 신으니 물컹하며 차가웠다. 


평창동 고급 주택에서 볼 수 있는 넓은 초록색 잔디 마당에 별 빛이 내려 앉았다. 너도 나도 빛나는 밤하늘을 올려다 보니 숨막힐 듯 가득한 별빛이 장관이었다. 황홀했다. 한쪽에서 하얀 반달이 굵직하게 가을 한기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겁도 없이 목소리 출처를 찾아 갔다. 


개들이 새차게 짖었다. 솟을 대문 근처 담장 아래 활엽수 몇 그루가 있었다. 중국에서 공자와 맹자의 후손들이 찾아와 식목한 나무가 있었다. 나무 그늘로 어두운 곳에서 감청색 등산 잠바를 입은 남자가 개들 앞에 앉아 있었다. 그는 지치지 않고 '으어, 아, 이씨, 으웩' 한글로 쓸 수 있는 온갖 소리를 냈다. 안채에서는 학봉 종택의 어르신이 주무시고 계셨다. 전국 각지에서 명리학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이 큰방, 작은방, 사랑방에 나눠 자고 있었다. 다들 잠에서 깰 것 같았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뭐하시는거예요?"


"예에? 누구세요? 풍수?"


"얼른 들어가 주무세요"


남자는 등을 돌리며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향해 다가왔다. 마당에 켜진 조명에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세미나가 끝나고 뒷풀이에 모인 사람들이 고량주와 공부가주를 마셨다. 그중 나이가 어린 79년생 남자가 큰 눈에 안경을 쓰고 있었다. 결혼을 늦게해 일곱살 된 아이가 있다고 했다. 회사를 다니며 사주 명리 공부를 한다고 했었다. 그는 비틀거렸다. 몸을 가누기 어려워 보였다. 마당을 팔자로 왔다갔다 하며 큰소리를 질렀다. 안채에서 며느님이었는지 한 분이 나오더니 그를 방으로 안내했다. 


나선형처럼 휘청거리는 마른 체형은 눈을 꿈뻑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상황을 종료했다고 생각하고 돌아서는데 창호지로 된 문이 다시 열리며 그가 나왔다. 며느님과 나는 그를 막아섰다. "엥? 안가고 계셨네" 멀쩡하게 말했다. 그녀는 마루에서 떨어질 것 같은 그를 붙잡아 방으로 들여 보내고 문을 닫았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방으로 들어와 잠을 청했다. 어르신이 계신 곳이고 국가 보물들을 보관하고 있는 수장고가 있는 종택에서 이게 무슨 짓인가 생각했다. 그래도 젊은 사람이니까 혈기 왕성해서 그럴 수 있지 꿈나라로 갔다. 얼마가 흘렀을까 다시 개가 왕왕 짓는 소리, 산에서 야호 소리하듯 괴성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마당으로 다시 나갔다. 그는 또다시 개가 묶여 있는 나무 그늘에 앉아 있었다. '니들도 나를 무시하냐!'

그는 계속 말도 안되는 말들을 큰 소리로 떠들었다. 좀더 큰 소리로 이제 그만하라고 언성을 높였다. 휘청거리를 그를 양떼 몰 듯 방으로 들여 보내고 방으로 들어오니 이미 같은방에 있던 여성 둘이 잠에서 깨 '누구냐'고 물었다. 술이 웬수지. 다시 잠을 청했다. 다시 개 짖는 소리가 들렸고 다시 술취한 그의 목소리가 익숙하게 들렸다. 


나는 다시 마당으로 나갔다. 별빛이고 달빛이고 평창동 잔디 마당이고 문화재고 뭐고 눈에 뵈는게 없었다. 그를 낚아채 솟을 대문 밖으로 나가라고 떠밀었다. 반듯하게 나무 빗장을 걸어 잠그려고 미는데 어렸을때 살던 집이 떠올랐다. 마당에는 고요가 찾아왔다. 개들도 조용해졌다. 비로소 평화가 찾아왔는데 다른방에서 자고 있던 여성 두분이 마당으로 달려 나왔다. 그가 어딨냐는 것이다. 대문 밖으로 내보냈다고 했다. 그러다 얼어 죽는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뜨끈한 방바닥에 누워 몸을 녹였다. 바스락 거리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빗장을 걸어 잠궜는데 제대로 안 닫았나? 그가 어떻게 들어왔지? 물이 저절로 열렸나? 나는 다시 나갔다. 얼어 죽는다고 걱정하던 여성 두 명이 그를 데리고 들어왔다. 고량주와 동부가주 냄새가 나무 냄새를 밀어냈다. 그를 마루에 눕히고 온열기를 켜고 이불을 깔아주며 재우려고 했다. 술취한 남자를 이길수는 있어도 그를 가엽게 생각하는 맨정신의 여성을 이길 수는 없었다.


다시 누웠다. 다시 괴성이 들렸다. 건너방에 있던 여성들이 우르르 나와 그를 방으로 데려갔고 우리방으로 몰려와 같이 자자고 했다. 그를 방에 넣고 걸쇠를 걸어 잠궜다. 넓직하게 자던 방은 여섯명이 붙어 잤다. 다시 문을 부슬듯한 소리가 들렸다. 오줌이 마렵다는 것이다. 측은지심이 큰 두 여성은 그를 데리고 나갔고 놀란 소리를 지르며 꺅꺅거렸다. 남자가 넘어진 듯 했다. 


두시간을 그렇게 흘렀을까. 잠에서 깬 사람들이 남편이 저러면 단박에 이혼한다 부터 내 아들이 저러면 어쩌나 한탄을 했다. 꿈속에서 그의 목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한 숨을 잤을까. 건너방에서 그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눈을 비비며 그 방으로 가니 얼어 죽을 것을 걱정한 두 여성은 그에게 사주 명리를 물어보고 있었고 밤새 그와 댓거리를 하다가 명리 얘기까지 발전해 친해진 것 같았다. 


나는 어의가 없었다. 어떻게 수십명을 피해준 그 남자를 데려와 감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동그랗게 눈을 뜨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물었다. 브라운 파마 머리를 한 여성분이 '내가 편인이라서 그래요' 하며 미간을 찡그렸다. 


편인과 정인이라는 명리학 용어가 있다. 편은 치우쳤다는 뜻이고 정은 바르다는 정이다. 편인은 상황에 맞게 융통성이 있고 정인은 어떤 규칙과 룰, 제도권에 맞게 움직인다. 나는 정인이고 그녀는 편인이다. 수십명에게 피해를 줬다는 생각에 나는 가차없이 그를 내쫓았고 그녀는 그의 행동에 맞게 맞춤 대응을 했다. 


아침해가 뜨고 식사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고등어를 김치에 조린 메뉴에 전날밤 그의 행각이 반찬으로 올라왔다. 다들 잠이 못잤다고 했다. 강남에서 공인중개를 하는 여성분은 마을에 미친놈이 와서 지랄하는줄 알고 문고리를 부여 잡고 있었다고 했다. 


내가 옳다고 한 행동, 내가 정의롭고 잘했다고 한 생각들과 대비되는 그녀의 행동에 한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옳고 그름이 없이 한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고 감싸는 마음이 있는 누군가가 있기에 누수 없이 세상이 돌아가나 싶다. 나같은 사람도 있으니까 탄핵하는 일도 나오나 보다. 


다들 일정대로 움직이는 동안 한숨자고 나온 그는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합류했다. 사나운 개가 꼬리를 내린것처럼 미안하고 몸둘바 모르는 목소리가 느껴진 '죄송합니다'가 들렸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많은 모임이다 보니 그럴 수 있지하며 용서하는 분위기였다. 늙음과 젊음은 상대적이기에 그의 행동을 이해하고 넘어가는 가을, 겨울에 다다른 분들의 힘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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