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이마트 #대기업 #구멍가게 #골목
발목을 다쳐 병가를 낸 공익근무 중인 아들이 희미하게 말했다. 배민에서 음식 쇼핑으로 먹던 애가 웬일이지.
9월초 일이다. 걸어서 5분도 안되는 골목길에 유치원이 문을 닫고 이마트 슈퍼마켓이 생겼다. 역 근처 대형 마트는 식품관이 지하 2층이라 번거로워 안간지 오래다. 추석 명절에 맞춰 서둘러 오픈하느라 매장 입구 바닥에 시멘트 조각이 나뒹굴었다.
매장에 들어서니 천정까지 진열된 상품들이 하얀 조명아래 빽빽히 빛을 쬐고 있었다. 밑반찬도 있고 손질된 야채들은 그 자리에서 요리할 수도 있을 테세다. 고기 코너를 가니 호주산 스테이크와 국내산 와규가 한 끼 먹을 수 있는 양으로 포장돼 있었다. 가격도 저렴하게 느껴졌다.
필요한 것들을 골라 계산대로 갔다. 사람 대신 키오스크가 있었다. 작년에 무인양품 키오스크 화면을 디자인 했었다. 그때 이마트 계산대 화면을 참고 했는데 직접 하려니 긴장됐다. CCTV 녹화중이라는 말이 거슬렸다. 띡띡 까만줄무늬 바코드를 인식하는 스캐너가 혼잣말을 했다. 애호박을 찍으려는데 코드가 없었다. 노란 조끼를 입은 직원분께 문의 했다. 세일코너로 뺐는데 바코드를 생성하지 않아 상품 등록이 돼 있지 않았다.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마음이 급해 나머지만 계산하고 나오는데 그 직원분이 컴퓨터 앞에서 바코드를 생성해 상품을 등록시키고 있었다.
집으로 돌어와 포장된 용기들을 북북 찢어 엄마손으로 공들여 마름질한 것처럼 밥상을 차렸다.
다음날 평소 애용한 '웰빙마트'를 갔다. 이마트 슈퍼마켓이 대각선에 보였다. 아랫니가 빠져 발음이 새던 주인과 오륙년정도 다녀 단골 손님이라 자부심을 가졌다. 밤 12시까지 문을 열어서 늦게 음식을 만들다 필요한 게 생기면 달려가 요긴했다. 과일은 가게 입구 어닝 밑에 진열돼 있었다. 거봉 한 상자를 들었더니 날파리 떼가 흩어졌다. 복숭아 한 상자도 들고 계산대가 있는 매장으로 들어갔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잉잉 거렸다. 며칠동안 속상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애써 힘있는 목소리로 반겼다. 복숭아 박스를 열고 밑동을 확인했다. 두개가 상했다. 도망갈 준비조차 하지 않는 날파리 수십마리가 거봉에 달라 붙어 쫓아냈다. 그녀는 미안해 하며 가격을 깎아줬다.
어제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이마트로 들어가 장을 본게 미안했다. 뭐라도 하나 더 사고 싶었다. 예전 같으면 매장에 나오는 음악에 몸도 흔들고 그날 있었던 소소한 얘기도 나눴었다. 손님을 못 만나 시들어 가는 야채들, 썪은 복숭아와 날파리, 카드를 긁는 동안 어색함이 감돌았다.
가게가 있는 골목길은 인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비엔나 소세지처럼 상가들이 손 잡고 있었다. 차가 다니지 않아 안전하고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곳이다. 출출할 때 사먹는 화수 김밥집, 남편이 가는 화정 빵집, 내가 가는 유기농 빵집 필로, 개업식 때 갔던 장서방 정육점, 1주일 한번씩 들렀던 꽃집, 밖에서 구경만 했던 뻥과자 무인점, 한번도 먹어보지 않은 달쫀 떡볶이, 야식으로 먹었던 후참잘 치킨이 보였다. 새로 오픈한 이마트 슈퍼마켓으로 가려는 사람들로 분주한 골목길 상가들은 그덕에 잘될까 그렇지 않을까.
아파트 단지에서 지하철 역까지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출퇴근 하는 사람들, 학교 가는 아이들로 냄새가 나는 아기자기한 곳이다. 20년전 아파트 단지에서 옷가게를 한 적이 있었다. 옛날에는 가게를 하고 싶으면 직접 가서 손님이 어느정도 오는지 보고 정했다.
요즘은 매출을 예측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유동 인구와 적합성을 분석한다. 대기업들은 카드 회사를 소유하고 있으니 골목길 매출 규모와 잘팔리는 품목, 이익률이 얼마나 되는지 예측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출발은 성공적이었다.
올해 초 웰빙마트 사장님과 직원분의 따님이 9급과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