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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들어보는 낯선 화이팅

양평에서 여주까지 자전거 여행

by 가쇼

"화이팅~"


등 뒤에서 젊고 싱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양평에서 여주로 자전거를 끌고 패달을 밟고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경사로를 24단에 맞춰 오르는데 제자리 걸음이었다. 누가 목을 조이는 것처럼 숨이 차올랐다. 젊은 남녀가 사이클 복장에 매끈하게 빠진 자전거를 타고 가볍게 지나치며 앞서 나갔다. 화.이.팅은 조심스러웠다.


그녀는 구릿빛 종아리에 허벅지까지 오는 레깅스, 등허리 굴곡이 드러나는 쫄쫄이를 입고 있었다. 하나로 묶은 긴 생머리는 헬멧 사이로 나와 등에 엎혀 있었다. 단단하고 군살 없는 기운이 6월 파란 하늘을 이고 비타길을 올랐다. 나는 힘에 부쳐 화답도 못했다. 번개치는 순간보다 짧은 찰나의 '화이팅'에 조금 어리둥절 했다.


예전에는 등산을 하면 마주오는 사람들이 인사를 했다. 코로나를 겪고 낯선 이들에게 시선을 거두고 입을 함구하는데 익숙해져 갔다. 인간미가 사라진 침묵이 답답했지만 어쩌랴. 사이클족들 사이에서는 서로 인사하고 화이팅하는게 남아 있었다. 힘든 코스를 지날때마다 들리는 격려는 등 뒤에서 불어주는 바람 같았다.


여주 이포보에 이르자 몸이 가벼워지면서 일행들을 제끼고 앞장서 내달렸다. 15년도 더 된 낡은 MTB 자전거에 검은색 조거 팬츠, 산책할 때 신는 운동화, 아들이 유치원에 맸던 색 바랜 하늘색 배낭은 잘 갖춰 입은 사이클 매니아들 사이에서 겉도는 복장이었다.


낯설지만 젊은 연결음이 왜 그렇게 반가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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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도 처음 사이클을 타며 힘에 부쳤을때 누군가 '화이팅'을 해줬을 것이다. 남한강 어귀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만난 젊은 친구들이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건냈다. 엄마뻘, 아빠벌 되는 우리들에게 다가서는 모습에서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회사에서 나보다 열 살 많은 '삼십대 중반' 언니가 있었다. 그때 엄청 '늙은 사람이 일을 한다'고 생각 했다. 상대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소심하게 '네~ 안녕하세요?' 했다. 초등학생 동창 모임에 나온 것처럼 오십 중후반을 넘긴 일행들과 사진을 찍으며 마냥 신났다. 목이 마를때쯤 나타난 편의점에서 초코렛바를 먹으며 시야를 가리지 않는 남한강 풍광에 심취했다.


내가 가는 길이 얼마나 걸릴지, 어떤 상황일지 알아볼만큼 부지런하지 않다. 영화를 보더라도 예고편을 안 본다. 국토종단 자전거 수기쯤 하나는 읽어 봤어야 하는데 일행을 믿고 따라가기 급했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중요한 것 같지 않은 언어 '안녕하세요?'가 창자까지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노란색 금계국이 장악한 아름다운 정경보다 압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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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힘을 다해 달린 40km 여주를 향한 길은 신륵사 인근 바이크텔 여행자 숙소에 도착해 숨을 돌렸다. 토마토처럼 얼굴이 달아올라 찬물로 샤워를 하고 시내 구경을 나갔다. 새로 신축한 남한강 출렁 다리에 수백명의 인파가 모여 노을을 감상했다. 연분홍 홍시 같은 황혼이 장관이었다. 식당가로 향해 일행들과 곤두레 한정식을 먹으며 상기된 마음을 부채질 했다. 맥주 한 모금을 넘기며 밖에 나오면 '무조건 좋다'는 일행분의 말에 공감했다.


2차로 카페를 갈까, 술집을 갈까 설왕설래 하다가 숙소에 마련된 데크에서 술 한 잔을 더 하기로 했다. 늘 엉덩이가 가벼워 실행력이 높은 어르신들이 편의점으로 향했다. 제일 나이가 어린 나는 의자에 앉아 꼼짝을 안했다.


우리는 큰 일을 한 것처럼 소소한 무용담을 늘어 놓았다. 어느덧 머리위에는 새하얀 달과 반딧불처럼 별들이 반짝였다. 모두 한마음이 됐다. 땀도 많이 흘리고 저녁도 짜게 먹었는지 시원한 수박과 참외가 먹고 싶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분이 일어나 차를 몰고 사러 나가셨다.


나의 욕구는 누군가의 실행이 됐고 별 생각 없던 욕망들도 그덕에 먹으며 서로의 돌봄을 누렸다.


집까지 데려다 준 지인에게 김치 한 통을 싸서 보냈다. 같은 차를 타고온 친구는 수박을 사서 사드렸다고 했다. 힘들 때 다정하게 건낸 '낯선 화이팅'이 충만함으로 변했나 누구라도 걸리면 착하게 대하고 싶었다. 오르락 내리락하는 인생처럼 낯선이에 대한 마음씀이 쓸데없는 참견이 아니라 자율 주행의 동력이 되는 체감을 졸문으로 다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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