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털과 매실나무 그림일기 #28

#매화꽃 #매실 #능곡 #사모예드 #방석 #반려견 #참새 #송충이 #개털

by 가쇼

올해 4월 능곡역 아파트 주변에 매화꽃이 떨어져 동네 부녀자 언니를 앉혀 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비가 내려 축축한 길바닥을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주저앉아 모델이 되었다. 시인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분홍빛이 스며든 매화꽃잎 방석에 두 다리를 오므려 옆으로 기울이고 무릎 뒤로 손을 깎지낀채 환하게 웃었다. 한 편의 시를 읽은 기분이 들어 얼른 핸드폰으로 찍었다.


매화꽃을 보면 예전에 살던 동네에 흰둥이 생각이 난다. 시베리아 썰매견이라는 사모예드 종인데 3중 구조의 털로 이뤄져 4월과 10월이 되면 털갈이를 한다. 이때가 되면 집 주변과 골목길에 털뭉치가 바람에 목적없이 날라 다녔다. 지나가는 어르신들이 한마디씩 던지셨다. 아 저 개털 좀 어떻게 해봐여 장독대고 여기저기 날아들어요 아이쿠 죄송해요 치운다고 치우는데 계속 나오네요. 죄송합니다 하며 흰둥이 집 주인은 날마다 빗자루질을 해댔다.


담벼락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개털을 보며 하나님은 세상에 불필요한 것은 한 개도 만들지 않으셨다는데 저 쓸모도 없는 개털은 어디다 쓰나 했다. 해마다 4월이면 흰둥이 몸에서 가출한 털님들이 동네를 무리지어 배회하고 우리집 매실나무는 꽃이 지고 새순이 자라고 있었다. 잔디잎 두개를 엇갈려 놓은 듯 삐죽 내밀며 자라는 새순이 손잡고 산책나온 유치원생들처럼 앙증맞고 귀엽다. 그러던 어느날 매실나무 아래 텃밭을 일구는데 송충이가 보였다. 파충류보다 절지동물을 더 싫어하는 나는 손에 닿으면 큰 병이라도 옮을까봐 겁이났다.

하루 이틀 송충이가 늘어나더니 매실나무를 떼지어 뒤덮어 잎사귀 갉아 먹는 소리로 합창까지 해댔다. 며칠동안 지속된 사각소리 합창은 단 하나의 잎사귀도 남겨 놓지 않을 기세였다. 아이쿠 저러다 매실나무 죽겠다 했더니 아랫층 사시는 분이 참새가 송충이를 먹을테니까 괜찮아요 하셨다. 그순간 우리집 옥상을 화장실로 쓰는 참새들을 내쫒으려 했던 마음이 떠올랐다. 빨래를 널어 놓으면 그 위에 흰색 똥을 물총처럼 쏴대서 뒷목을 잡았었는데 참새가 이럴때 쓸모가 있구나 싶었다. 얼른 송충이 다 잡아 먹어라.


온동네 참새들까지 가세해 송충이 회식을 하고 송충이는 잎사귀를 갉아 먹고 흰둥이 주인은 털을 빗어대며 힘겨루기 나날이 이어졌다. 사모예드 한마리에서 나오는 매일 매일의 털뭉치를 모으면 어린아이 솜이불 하나를 만들어도 될 것 같았고 매실나무를 뒤덮은 송충이는 80kg 가마니를 가득채울 양이었고 소란스럽게 먹은 참새들의 결과물은 옥상을 하얗게 칠해놨다.


아파트에 살다가 시골로 이사왔을 때 제일 먼저 반긴게 흰둥이였다. 털이 하예서 흰둥이인데 개를 보면 환장하는 나는 담벼락 사이로 개와 한참을 놀곤 했었다. 인간의 언어로 말을 걸면 온 몸으로 대답해 똑같이 흉내를 내며 교감을 나눴다. 개 감수성이 뛰어나서 전생에 개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우리 둘사이 영혼의 대화를 한다고 느낄 정도였으니 흰둥이 집주인이 여행 간다고 며칠 집을 비울때 동네 산책하고 먹을 것을 자진해서 챙겨주었다. 흰둥이는 척추뼈가 느껴질 정도로 좌우로 몸을 흔들어대며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짓고 했다. 그날도 흰둥이 엉덩이에 털뭉치가 대롱거리고 있는데 맑은 볕이 내려앉은 마당을 참새 한마리가 조용히 내려 앉았다. 고개를 동서남북으로 돌리며 주변을 살피더니 발을 통통 굴어와 털 뭉치에 관심을 보였다. 몇발자국 다가가 고개를 숙이더니 입에 물고 하늘로 날아 올랐다. 직감적으로 참새 둥지에 쓰는구나 싶었다. 결혼해서 임신했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이 아이가 쓸 침대와 이불을 마련한 일이었다. 가장 좋은 면으로 백옥같이 빨아 햇볕에 말려 출산을 준비했던 생각이 났다. 생태전문가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실제 새 둥지를 보면 동물의 털이 깔려 있다고 했다.


참새들에게 매실 나무를 뒤덮은 송충이는 임신한 몸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무한리필 부페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그많은 송충이를 다 잡아 먹지 못해 매실나무는 따스한 5월 겨울나무처럼 도도하게 헐벗어 있었다. 채식주의자 송충이들은 다 벗겨먹고 도적떼처럼 사라져 버렸다. 광합성을 할 잎사귀가 없으니 나무가 죽겠구나 싶었다. 7월초 황매실로 담군 청은 5월 청매실과 차원이 달랐다. 황금빛 두꺼운 빛깔이 달콤하고 탐스러워 하루에도 몇개씩 따먹곤 했었는데 이제 끝이구나 싶었다. 송충이가 사라진 매실 나무는 참새들이 연신 자리를 바꾸며 내려 앉다가 가고 새끼들은 자라고 있었다. 어느날 헐벗은 매실나무를 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었는데 어느 가지에서 송곳 같은 초록 새순이 보여서 깜짝 놀랬다. 2층 집 높이를 뛰어 넘는 고령의 매실나무 가지마다 초록 새순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송충이 없죠? 하며 망을 보듯 머리를 내밀며 가지마다 무리를 지어 나오고 있었다. 6월에 나온 새순은 순식간에 초록으로 빈틈을 채웠다. 모든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매실나무를 중심으로 송충이와 참새와 개털의 줄다리기가 끝나자 황금빛 노란 과실은 내게로 왔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이사왔다. 가끔 흰둥이가 보고 싶어 한두번 찾아가 인사를 나누곤 했는데 아들이 운동을 하게 돼 뒷바라지 하느라 몇년이 흘렀다. 어느날 문득 흰둥이가 보고 싶었다. 동네 부녀자 언니와 밤 산책을 나와 흰둥이를 보러 갔다. 어두컴컴한 화훼단지를 지나 논, 밭을 좌우로 지나 희미한 가로등불 아래 흰둥이 집에 도착했다. 흰.둥.아 하고 텅 비어 있는 개 집을 향해 조용히 불렀다. 흰.둥.아 하고 어디선가 꼬리를 치며 코를 벌렁거릴 것 같았다.


흰둥이가 왜 이제 오냐고 보고 싶었다고 꼬리로 바람을 일으켰다. 흰둥아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지?

KakaoTalk_20211130_235449531.jpg


작가의 이전글두가지 마음 그림일기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