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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Jun 05. 2022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 중간에 낀긴 자

#설악산 #비탐지역 #과태료 #산악회 #무박산행

덜컥 겁이 났다. 앞 뒤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설악산 비탐지역을 산행하던 도중 일행을 놓쳤다. 초단위로 감탄사를 내뿜는 가야동 계곡은 공포로 바꼈다. 뒷꿈치는 물집이 터졌다. 엄지 발가락은 12시간 걸은 댓가로 움직일때마다 통증이 밀려왔다. 극심한 가뭄에 쪽빛을 풀어 놓은 계곡물에 들어가고 싶은 욕구를 주체할 수 없었다. 하산 시간이 늦어 재촉하는 리더와 주최측 눈치를 보느라 입으로만 '풍덩'을 외치며 계곡물을 들어갔다. 10번은 외쳤을 풍덩 소리에 등산복 입고 들어가 바닥까지 유영하는 상상을 했다. 


"대장니임~~~~ 선생니이임~~~!" 



앞장서 가던 리더를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앞으로 조금만 가면 저 멀리 일행이 보이지 않을까? 기를 쓰고 걸어 시야가 트인 곳에 도착하니 콩만한 사람도 안보였다. 꺾어진 계곡을 돌면 보이겠지 하면 동서남북 하늘까지 가린 절벽과 나무만 보였다. 산행 금지 구역이라 사람들도 없었다. 에메랄드 계곡물과 비경속에서 소 털 같은 존재가 됐다. 급기야 뒤따라 오던 일행도 보이지 않았다. 계곡 입구에 국립공원 직원이 지키고 서 있어서 측면으로 빠져 산행을 마친다고 했는데 다들 나를 놓치고 먼저 간게 아닐까? 찾고 있는게 아닐까 깜깜한 밤이 돼서 조난 신고를 받고 수색대가 오는게 아닐까 온갖 상상을 하며 그와중에 좀전에 채우지 못한 풍덩 욕구를 하려고 계곡물 가까이 갔다. 묵직하게 더려워진 등산화를 벗고 발을 담궜다. 자글자글 시원한 물이 발등과 아픈 부위마다 콕콕 찔렀다. 물집이 잡혀 벗겨진 뒷꿈치에 물이 닿자 외마디 비명이 나왔다. 따듯한 자갈위에 앉아 '비탐지역'이 '비경을 탐사하는 곳'인줄 알았다는 동료 이름을 불렀다. 


"미궈언! 미궈언!"


계곡 물소리가 커서 메아리도 울리지 않았다. 핸드폰도 터지지 않았다. 감시와 관리를 벗어나 역적모의를 해도 되는 곳이다 싶었다. 길을 잃었으니 뒤따라 오는 일행을 기다리자 결론을 내리고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기를 썼다. 수직 상승한 절벽에 아슬아슬 핀 에델바이스를 봤었지. 참 예뻤는데. 수줍은 자태로 고운 크림색 함박꽃이 얼마나 대견스럽게 폈는지. 세 줄기가 올라와 한 줄기에 9개 잎사귀가 자란 삼지구엽초를 실물로 보다니! 꼬리를 흔들며 쇠 부딪히는 소리를 내는 살모사와 눈이 마주쳐 놀란일까지. 감상과 감탄이 뒤엉킨 등산의 결말이 금지 구역에 들어가 구조 당하는 신세로 전락해 신원조회로 미납된 국세까지 까발리는 게 아닌지 삽스런 생각이 쌓여갔다. 동료에게 전화를 거니 '지금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으니 다시 걸어'달란다.  별과 달의 운행을 집대성한 천문도를 만는 종족의 후예인데 GPS 없으면 동서남북 구분도 못하는 문맹 아닌가. 뒤따라오는 일행이 내쪽으로 올 것이라는 아주 작은 믿음조차도 없는 마음의 크기는 남탓으로 빠져 들었다. 


함박꽃


'아니 산행 리더면 뒷따라 오는 사람들 챙기고 관리해야 하는 것 아냐? 주최측이면 일탈한 사람들이 없는지 확인하며 동행해야 하는 것 아냐?' 20분이 흘렀을까. 사이좋은 나무들 사이로 알록달록 움직이는 물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반가움에 벌떡 일어났다. 


세상 환한 얼굴로 벙글벙글 웃으며 다가오는 미권이 '어? 너 같이 안갔어? 너 잡힌 줄 알았어'하며 즐거운 표정이다. '뭐라고?' 앞장섰던 리더 3명이 특별 단속하던 국공직원에 걸렸다는 것이다. 그분들만 과태료를 내고 우리들은 명단만 적는 것으로 얘기가 됐다며 그분들 기다리는 곳으로 내려가자고 했다. 길 잃은 어린양에서 벗어난 마음은 블랙리스트가 또다시 걱정이 됐다. 가능성 1%도 없는 '정계에 진출했을때 까발리는 것 아냐'하는 삽스러움에 오싹해졌다. 


잠시 고요하게 누릴 수 있었던 순간을 엉망으로 보내고 무리에 섞이니 안도감이 밀려왔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렇게 목놓아 부르던 대장님이 가야동 계곡 한구석에 베이지색 유니폼 입은 직원들과 있는게 보였다. 가까이 가자 앳된 청년이 우리들을 핸드폰으로 찍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을 모자로 가렸다. 젊은이들에게 본을 보이지 못할 망정 웬 창피람. 한심하게 바라보는 것만 같은 (순전히 내 혼자 생각으로) 직원들이 내민 A4용지에 이름과 주민번호 연락처를 적었다. 내 인적 사항을 적고 '죄송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장화를 신은 중년의 관리자는 과태료가 문제가 아니라며 교육이 필요하니 모이라고 했다.  세상 엄격한 표정으로 왜 비탐지역에 들어가면 안되는지 사망사고를 예를 들며 강조 했다. 미권은 이런 상황이 재미있는지 착한 유치원생처럼 두 손을 모으고 죄송합니다를 다같이 하자고 했다. 심지어 하루에 몇 명이 걸리는지 물어보라고 부추켰다. 대략 이랬다. 비탐지역에서 사망사고가 났다. 보험사는 비탐지역인지 아닌지를 묻고 비탐지역이면 사망보험금을 안준다. 사망사고 유가족이 관리 소홀로 국립공원을 상대로 소송을 낸다. 산행을 이끈 사람들이 연락을 피하고 도망가버린다 등 내가 생각했던 멸종된 무슨 종을 되살리고 자연을 보호하는 뭐 그런게 아니었다. 


"하루에 몇 명까지 잡아보셨어요?"


결국 미권의 부추김과 나의 호기심이 더해 질문을 던졌다.


"하루 최대 100명까지 잡았어요"

동료가 보내준 사진

그분이 얼마나 성실, 근면하게 단속했는지 과거 사례가 파노라마처럼 느껴지는 다부진 표정에 대고 우리들은 '우와~' 탄성을 질렀다. 일장연설을 듣고 자신을 따라 오라며 계곡 매표소로 향했다. 입구에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혼잣말을 하며 그들도 들으라는 듯이 우리들을 향해 '여기 다시는 들어오시면 안돼요오~'하시며 근엄한 소리를 듣고 헤어졌다.


등산화와 등산복을 연신 닦아내던 깔끔쟁이 리더는 자신이 어떻게 3명만 과태료를 내는 것으로 마무리 했는지 대견스러운 행적을 들려줬다. 3명만 과태료 내고 나머지 일행은 봐달라고 하자 '지금 협상하자는 것이냐'며 관리자가 화를 냈다고 했다. 비탐지역을 데려온 자신의 책임이 크고 후배들에게 아무 죄가 없으니 봐달라고 읍소했다는 것이다. 현명한 대처와 응대로 12명이 낼 과태료를 먼저 간 3명으로 끝났는데도 '먼저 된 자 나중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를 챙기지 않아서 삐졌던 마음이 엉뚱한 것에 링크를 걸었다. 


에델바이스

두부전골을 예약하는 리더의 전화 소리에 허기가 몰려왔다. 식당에 도착해 험한 산행 큰 사고 없이 마친 것에 감사를 나누는데 코와 입을 그릇에 파묻는게 급했다. 달콤 짭쪼름한 반찬과 허연 밥 앞에 교양이고 뭐고 독님처럼 핥아댔다. 회비 정산을 하는 과정에서 과태료는 모두 나눠 내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과태료를 혼자 부담하겠다는 리더의 선의를 다같이 책임지는 것으로 귀결하는 총무 언니의 포용력을 배우기 전에 회비 2만원을 더 내야 하는 부담과 아까운 마음은 좀체 사그라지지 않았다. 심장 박동처럼 뛰는 대자연 앞에 옹색한 생각은 왜 넓혀지지 않을까. 그분들이 쌓아온 시간과 노력덕에 비경을 탐사할 수 있었것만 앞장설 경력도 안되고 뒤쳐질 용기도 없이 중간에 껴서 사는 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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