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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May 24. 2022

6년된 입이 말한다

#능곡역 #육아 #남자아이 #교회 #시간개념 #호기심 #배려 #워킹맘

"근데요 기차 '언제' 보러 가요?"


"어? 기차?"


주일 예배가 끝나고 오랜만에 만난 교우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작은 예배당에 스무명 가까이 서서 삼삼오오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승현이가 나를 찾아 다가왔다. 자기의 목을 힘껏 뒤로 제껴 내 왼쪽 허벅지를 톡톡 치면서 교회 앞 경의선 기차를 '언제' 보러 갈 수 있는지 되물은 것이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진한 연필심처럼 그어진 까만 눈썹을 바짝 세우고 떡잎만한 빨간 입술이 '요'자 모양에서 멈췄다. 지난주에 지나가는 소리로 '언제 기차를 보러 가자'고 했던 것을 진짜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교회 언니들과 수다가 주님보다 중요한 순간 승현이의 간절한 표정을 무시하기 어려웠다. 승현이 육아를 위해 휴직중인 아빠가 승현이 요청을 듣고 있다가 교회 예바당 창문 탁자 위에 승현이를 들어올려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기차를 보여줬다.


승현이를 데리고 나가야 하는 갈등이 해소됨과 동시에 언니들과 허기진 수다를 채웠다. 몇 분이 흘렀을까 또 똑같은 질문이 왼쪽 아래에서 올라와 귀 밑에 왔다. 승현이는 아빠가 보여준 창문 너머 기차가 아닌 가까이 가서 현장을 보고 싶은 간절한 눈빛을 발사하며 내게 물었다.


"집사님... 기차 '언제' 보러 가요?"


"기차? 승현이 기차 보고 싶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탁자 위에서 스치듯 본 현장감 떨어지는 기차가 아닌 자기 발로 걸어서 눈 앞에서 보고 싶었던 승현이에게 빈말한 것을 후회했다.  '그래 가자' 승현이를 데리고 신발을 신었다. '기차 보러 가요'가 아닌 기차를 '언제 보러 갈 수 있냐'는 어른들의 시간을 계산하고 배려하는 6년된 존재에게 미안함을 해소하고 통 크게 수다를 포기했다. 지방선거 열기가 뜨거운 1번,2번,3번,4번 선거송이 한참인 기차역으로 향했다. 진짜 한 말과 빈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는 세상에 태어난지 여섯해를 넘기고 있다. 어른들에게 자신의 요구를 요청할 때 '언제 되는지' 먼저 물어야 했나보다.  아이들은 놀다가도 '이제 그만 놀고 밥 먹을 시간이야', '이제 그만 자야 할 시간이야', '이제 일어나서 유치원 가야 할 시간이야'하며 시간 단위로 움직이는 세상을 살고 있었다. 실컷 자고, 실컷 놀고, 내 맘대로 아침과 점심, 저녁 구분 없이 자유롭게 낮과 밤의 변화를 들여다 보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버스도 안다니는 시골은 해가 뜨면 눈 비비고 일어나 밥을 먹고 세수도 안하고 산과 들로 다녔다.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슴슴했던 시절과 다르게 스쳐지나가는 시간도 짜임새 있는 시대가 됐다.


기차를 직접 볼 생각에 기대감에 찬 승현이 발걸음이 팔딱거렸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위,아래 사방을 둘러보며 방송 소리와 차가운 구조물들이 승현이를 긴장하게 하는 것 같았다. 개찰구를 지나 내려가지 않고 창문 너머로 내려다 본 기차는 덮개로 가려져 있어 남쪽으로 전진하는 꽁무니만 보였다. 실망하겠다는 마음과 달리 6살 된 입술과 눈썹은 한껏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가 얼마나 에스컬레이터 타는 것을 좋아하는지 덧붙이며 밖으로 나왔다.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에 맞춰 월요일 출근을 앞둔 엄마 아빠가 승현이를 찾느라 전화가 왔다. 다정한 부모의 울타리를 거느린 승현이와 거대한 철덩어리를 감상한 순간이 아름다운 바다와 대자연이 아닐지라도 청년으로 자란 내 아들의 여섯살을 떠오르게 했다. 재미있게 놀고 신나게 여행한 그때를 함께 보낸게 황금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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