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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Mar 20. 2022

이삭줍는 외증조할아버지

#농사 #외가댁 #외증조할아버지 #논농사 #이삭줍기 #한복 

가을하면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친정 엄마의 할아버지이자 나의 '외증조할아버지'는 한복을 입고 까만 둥근테 안경을 쓰셨다. 외가댁은 농사를 지었다. 외증조할아버지께서는 탈곡한 가을 마당에 배를 내놓은 벼이삭을 엄지와 검지로 집어 한쪽 손바닥에 올려 놓으셨다. 나중에 외증조할아머지는 노환으로 돌아가셨는데 집에서 장례를 치뤘다. 안방 마루에 하얀 천으로 휘장을 두르고 한 달 넘게 제사상을 차려놓고 조석으로 밥을 지어 올렸다. 조선말에 태어나셨으니 조선의 장례 옛법이겠거니 추측해 본다. 


외증조할아머지는 귀가 잘 안들리셨는데 식사하시라고 귀에다 대고 큰 소리로 알려드리는 것은 내몫이었다. 외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염을 하는 모습을 몰래 지켜봤던 기억도 난다. 어른들이 정신이 없으셨기 때문에 뚫어진 창호지 사이로 동네 어르신들이 외증조할아머지에게 하얀색 수의를 입히고 입안에 쌀을 넣었다. 장사를 치루는 동안 상주들이 잠들면 안된다고 했다. 상주들이 돌아가면서 뜬 눈으로 밤을 새고 지켜야 하는데 내 기억에는 없지만 내가 잠을 자지 않고 외증조할아버지 계신 안방을 지켰다고 외증조할머니가 대견해 하셨다. 


며칠동안 장례를 치루느라 나를 학교에 보내는 것도 잊었는지 나혼자 알아서 학교를 갔다. 수업하는 중간에 하얀 한복 차림으로 도시락을 싸갖고 오신 외증조할머니가 교실 앞문을 여시며 숨을 헐떡이신 기억이 난다. 도시락을 갖다 주시러 2개의 산과 방죽과 두개의 마을을 지나 걸어오신 셈인데 숟가락을 놓고 오신걸 알고 나뭇가지로 급히 젓가락을 만드셨던 것 같다. 삐뚤빼뚤한 나뭇가지 젓가락을 도시락과 함께 건내셨는데 그게 그렇게 창피해 젓가락도 밉고 외증조할머니도 미웠다. 이런 기억은 나이가 들면서 외증조할아머지가 돌아가셨을때인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인지 겹쳐서 헷갈리곤 한다. 


가을 누렇게 익은 논을 볼 때마다 엄지와 검지로 이삭을 집어 손바닥에 올려 놓으신 외증조할아버지 기억은 내가 누구의 뿌리인지 알 수 있어서 안심이 된다. 쌀 한톨을 소중하게 다루시던 태도를 유산으로 남겨주신채 볕좋은 가을 마당 외증조할아버지는 영원히 살아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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