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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Mar 19. 2022

어떤 나무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산황산 #나무 #소나무 #골프장증설 #골프장 #고양시숲 

주먹만한 흙덩어리가 폴짝 폴짝 뛰는게 보였다. 뭘까? 흙덩어리는 앞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뛰어 올랐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행주산성에서 자전거를 같이 다던 교회 언니가 저거 뭐 같아? 어디요? 자동차들이 달리는 건너편 차도에 흙먼지를 가르며 힘껏 뒷다리를 밀며 나아가고 있었다. 자칫 차도로 뛰어들 것 같았다. 두꺼비가 자동차를 알기나 할까? 두꺼비가 차도로 뛰어들어 자동차에 깔리는 상상을 하니 끔찍하다. 두꺼비는 흙냄새를 맡고 인도쪽으로 올라가려는 것 같았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거 올려줘야 할 것 같은데.... 두꺼비 만질 수 있어?"


마침 자전거 장갑을 끼고 있어서 그쯤이야 식은죽 먹기지 하고 차도를 건너 두꺼비 있는 쪽으로 갔다. 누가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했는가. 두꺼비를 보는 순간 울퉁불퉁한 작은 언덕 같은 등에 수놓은 무늬를 보는 순간 징그러워 만지고 싶은 마음이 진공 청소기가 흡입한 듯 사라져 버렸다. 어쩌지 하고 두꺼비를 내려다 봤다. 두꺼비를 둘러싸고 차들을 막으니 어떤 남자분이 다가와 왜 그래요? 하신다. 여기 두꺼비요 했더니 맨 손으로 덮썩 집어 풀 밭으로 내려 놓고 사라지셨다. 그런데 왜 맨발로 다니시지? 감사하다고 하고 돌아서며 아 그 끔찍하게 생긴 두꺼비를 어떻게 맨 손으로 잡지 생각만 해도 몸이 오싹했다. 누군가에게는 유기된 개들을 돌보고 캣맘처럼 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마음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 산황산에 있는 나무 한그루가 생각나고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골프장이 증설되는 산황산 어떤 무덤가 앞에 환갑을 족히 넘었을 것처럼 잘생긴 소나무가 있었다. 하늘 위로 길고 곧게 뻗어 내 키의 몇 배를 땅 아래로, 하늘로 향해 있었다. 나무 밑둥은 누군가 전기 드릴로 10여개의 구멍을 뚫어 그곳에 농약을 넣는다고 했다. 산을 훼손해 개발이 가능한 곳으로 만들려는 관계자들의 짓인 것 같다고 추측을 했다. 산황산 지킴이 활동을 하는 고양환경운동연합 의장의 설명을 들으니 가여웠다. 동네에 또래 친구가 없어 밤나무에 올라가 시간을 보내곤 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아낌없이 주기만 했던 나무는 아낌없이 주고 싶지 않고 오래도록 잘 살고 싶지 않을까 힘껏 껴안아 줬다. 스스로 해독할 힘이 있을거라 위안을 삼으며 산에서 내려왔고 1년이 흘렀다. 


국사봉 참나무, 산황산 소나무는 찍어둔 사진을 못 찾겠네요. 산황산 가면 찍어서 올릴게요

산황산에 골프장을 짓기 위해 2008년부터 2022년까지 개발업자와 시청, 시민들간의 줄다리기가 이어져 오는 동안 고양시청에 텐트를 치고 매일 농성을 하던분 남편이 갑작기 폐암 판정을 받아 병간호를 하느라 텐트를 비우게 됐다. 몇몇 기독교 단체와 시민들이 나서서 농성을 이어갈 사람들을 모집했다. 골프를 치는 사촌오빠 말로는 골프장 농약이 인체에 무해한 것이라 괜찮다고 했다. 다른쪽은 골프장이 증설되면 지하수가 마르고 정수장과 300미터 떨어져 있어 농약이 날아들 것이라고 했다. 이미 개발 허가가 난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는 시 관계자들, 각 정당의 의원들이 결론을 내렸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니 뒤집을 수도 있지 않을까.  


골프장이 개발이 되든 말든 산 하나 없어지는게 어디 한두군데인가 어쩔 수 없다는 말에 무게가 실린다. 누군가의 눈에 밟힌 개,고양이, 두꺼비처럼 전기 드릴로 뚫린 몸을 안고 살아가는 소나무가 그곳에서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1일 지킴이 활동을 선뜻 자원했다. 2년여만에 일다운 일이 들어와 잠시 출근하던 회사 대표에게 사정을 얘기를 하고 하루 빠졌다. 진행하던 일이 거의 끝나가서 괜찮을줄 알았는데 바로 그날 디자인 변경 요청이 들어와 당황했다. 농성장에 인터넷이 되니 카톡으로 업무를 보겠다 하고 시청으로 갔다. 고양시의회 건물 앞에 마련한 농성장 텐트를 열어보니 답답하고 작은 밥상만한 책상 밖에 없어 춥지만 밖에 앉았다. 하늘을 뒤덮은 고농도 회색 구름과 바람이 불었다. 늦게라도 회사를 갈 생각에 가벼운 출근복이 후회 됐다. 추위에 떨고 있는데 점심을 걱정하는 교회 큰 언니가 데리고 와 샤브샤브를 사줬다. 회사에서는 변경된 일이 보류됐으니 기다리라고 했다. 배도 든든하고 마음도 편해져 천사들이 도와줬나 주변 소리에 귀기울였다.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고양시의회 건물을 들락거리는 소란스러움과 시청앞 빼곡한 주차장 선을 맞춰 정렬한 차들이 시동을 켜고 끄는 옆으로 작지만 분명한 새들의 지저귐이 들렸다. 산황산에 내 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심고 가꾼 소나무도 아니지만 걔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생업을 내려놓고 하루 정도는 괜찮지 싶었다. 땅바닥에 벌러덩 누위 배를 까고 무장 해장하는 개들이나 도도하게 호기심 어린 표정의 고양이처럼 한 곳에서 뿌리를 내려 부동의 삶을 살아가는 나무가 주는 애틋함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사람들에게 그런 마음을 주신 존재에 대해 묵상 했다. 


단 며칠만에 산 하나를 파괴할 수 있는 자본과 힘이 있는 집단이 있고 몸 하나로 막아내는 개개인이 있다.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요,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 마음에는 두꺼비 한마리, 꽃 한송이 버려진 누추한 것들을 돌보고 가꾸고 싶은게 내재돼 있나보다.  나야 하루동안만 있지만 지켜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아닌 부동의 존재들을 위해 자기의 시간을 사용하는 지나간 사람들, 앞으로 올 사람들에게 감사드렸다. 그런 분들에게 자비를 내려주시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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