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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Jun 14. 2022

말을 타니 종을 부리고 싶다

#맨발걷기 #자연 #명상 #건강 #북한산 #죽음

말을 타면 종을 부리고 싶다고 맨발걷기로 산책을 하다보니 맨 몸으로 걷고 싶다. 신발을 벗고 발모양대로 발바닥이 퍼지는 순간 칠성 사이다를 들이킨 느낌이다. 뒷꿈치부터 발가락까지 24cm 걸음마다 생명 아닌게 없고 죽음 아닌게 없다. 태어나는게 있고 사라지는게 있다. 삶과 죽음이 한뭉치의 진행형이다. 혹시나 유리조각이나 찔리는게 있을까 바닥을 보며 걷는다. 노란 좁쌀 크기의 풀들과 모나미 볼펜심으로 찍은 것 같은 절지동물들, 보이지 않는 미생물까지 아마존이 따로 없다. 마스크 없이 숨쉬는 것처럼 발바닥이 심호흡을 크게 한다. 


나무 사이를 걷다보니 한낮에 쏟아진 폭우로 흙들이 무지개모양으로 쓸려간 자국들이 보인다. 물의 방향과 바람이 지나간 흔적까지 있다. 발이 그것들을 만지며 만리밖에서 불어온 바람인지, 극동지역에서 흘러온 구름인지 더듬어 본다. 자갈길이든 모래길이든 흙길이든 잔가지 길이든 모든 길을 경험해 보고 싶다. 서행할 수 밖에 없는 강제된 조건으로 자동차를 몰때는 답답했는데 거친 바닥으로 조심성 있게 느린 걸음은 온 몸에 조명이 켜지는 것 같다. 한 살이라도 더 빨리 맨발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게 아쉬울 정도로 탈신발주의가 되간다. 집까지 그대로 간다. 마주오던 개가 저 인간이 미쳤나. 아니 저 인간이 맨발의 기쁨을 알았나. 그렇게 생각해 주기까지 바랄 지경이다.


한 달전까지만 해도 맨발로 걷는 지인을 보면서 어떻게 더러운 바닥을 그냥 걷냐며 놀라워 했다. '발이 얼마나 행복해 하는데요' 라는 말에 홀려 추앙까지 이르렀다. 위생에 묶인 공포가 사라지니 신이한 것들로 채워진다. 할머니의 하얀 고무신을 볕에 말리던 순간, 신발이 커서 신문지를 구겨 넣다가 나던 휘발유 냄새, 구멍난 랜드로바를 신고 다니다 빗물이 들어와 축축했던 기억, 발가락 사이를 파고들던 진흙의 간지러움까지 남아 있다. 발바닥의 최근 기억은 사무실에 앉아 장시간 컴퓨터 일을 하면서 끊겼다. 차를 타고 다니면서 꺼져 버렸다. 그때부터 맨 정신으로 살지 않았던 것 같다. 신발 하나 벗었을 뿐인데 신이 깃든다. 발바닥에 지구 별이 반짝이는데 신발이 누리고 있었다.


북한산성 입구에서 맨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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