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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Sep 06. 2022

옥상 금덕이 #1

구름에 관하여

3일간 비가 내렸다. 아니 오셨다. TV에서 재난을 알리는 빨간색 고딕체가 위태로움을 알렸다. 어렸을때는 그런 방송이 무서워 태풍이 지나가길 빌었다. 그때는 전쟁이 날 것처럼 재난 경보가 울리고 대피 훈련도 해서 적군의 포탄을 맞아 마을이 파괴되는 악몽을 꿨다. 지금은 어둡고 습한 어둠 뒤에 있을 햇빛을 떠올리며 빨래를 돌린다. 때를 벗긴 파란 하늘 아래 목화솜 빛깔의 구름이 떠다닌다. 선글라스도 뚫고 들어올 햇빛이 태풍처럼 강성하다. 엄마가 했던 이상한 말은 '비가 오신다'이다. 비에 대한 극존칭이 궁금하지만 비가 가신 뒤 똥꼬 발랄한 구름이 오셨다.


하늘을 보고 두 팔 벌려 배영하는 구름이 늘어져 있다. 그 아래 나선형으로 몸을 돌리며 장난치는 게 있고 대각선으로 느리게 상승하는 게 있다. 미끄럼틀 타듯 내려오는 뽀송한 흰색이 파란빛을 높여준다. 북에서 남으로 떼지어 달려가는 무리들이 중원을 차지한다. 역방향으로 가다가 휩쓸려 간 구름이 흔적도 없이 묻혀버렸다. 변방에서 유유자적 배회하다 얇은 습자지처럼 흐려진 구름 사이로 손바닥만한 동네 새들이 위아래로 곡선을 그린다.


초가을 바람이 낮다가 높기도 하고 빠르게 가다가 늦추기도 하며 옥상 빨래줄을 흔든다. 그 밑에 있던 4만원짜리 접이식 빨래 걸이가 옆으로 고꾸라진다. 다시 일으켜 세우며 날개를 접어 놓는다. 검회색 비둘기 한마리가 난간에 앉아 멍때리는 것들과 눈이 마주친다. 꽝하고 옥상문이 닫힌다.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니 다급히 내려오는 구름에 놀란다.  5층 높이 건물과 지척이구나. 따끔한 햇살을 가려버린 구름떼가 천지 사방 조도를 낮추고 기분도 바꾼다. 


옥상 아래 골목길은 오토바이가 뛰어다니고 카센타 앞 2차선 도로는 경적을 울리며 신경질적인 차들이 가다 서다 좌로 우로 교차한다. 엄마 손을 잡은 유치원 가방이 경쾌하게 발을 구르며 노란조끼 입은 어르신들이 건널목 차들을 저지한다. 지하철로 향해가는 섬유 유연제들, 구청과 우체국으로 향하는 커피들 , 밤을 새우고 퇴근하는 요양보호사들의 뿌듯하고 노곤한 낯빛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 야간 배달로 바빠진다. 


옥상 금덕이에게 침을 뱉은게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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