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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Sep 08. 2022

옥상 금덕이 #3

열심히 사셨나봐요 #은행 #프로그래머 #옥상

오늘은 빨래줄도 쉬는 날이다. 세탁기도 쉬고 세제도 숨을 돌렸다. 시골 외가집에 수동 펌프를 설시하던 날 왼손으로 마중물을 조금씩 부으며 오른손으로 펌프 손잡이를 올렸다 내렸다 했다. 공기의 압력으로 지하수가 올라와 입으로 콸콸 토아내는게 재미있어 필요하지도 않은 물을 끌어 올리곤 했다. 수도 계량기나 전기료가 올라갈 걱정도 없었고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얼지 않았다. 인공지능이 따로 없다. 


오빠는 프리랜서로 기업은행에서 일을 했다. 차세대 전산망을 구축하며 젊음을 보냈고 주거래 은행이었다. 오빠의 통장을 정리하던 날 카드, 예금을 해지하는데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창구 직원이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을 쏟아내는 내게 반가운 말을 했다.


"오빠분이 열심히 사셔서... 카드하고 통장 해지 등 다 처리했는데 하이패스 자동충전 카드가 하나 있어요. 그걸 해지하려면 복잡하니까 차에서 찾아보시고 빼놓으시면 돼요..."


"네? 하이패스 자동충전 카드요? 그게 뭔가요?"


"하이패스 통과하는 카드인데 자동 충전하게 돼 있는 거예요"


"아..... 네 그렇게 할게요... 

그런데....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기다리는 동안 종이컵 반을 채운 눈물을 쏟아냈다. 젊은날, 중년이 돼서 은행일을 하며 청춘을 보낸 오빠의 기록이 기업은행에서 지워졌다. 조심스럽게 '다 끝났습니다'하는 말과 함께 직원이 건내준 종이 한장을 받아 들고 '추석 잘 보내세요 감사합니다'하고 은행문을 나섰다. 건물 틈새로 가을 햇살이 달리고 있었다. 건널목을 건너려는데 '고객님!!' 하며 다급히 은행 직원이 달려 나왔다. 내 가방을 두고 나왔던 것이다. 하루 종일 '오빠분이 열심히 사셔서...'라는 말이 맴맴 거렸다. 은행 기록만 봐도 알 수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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