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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Sep 15. 2022

옥상 금덕이 #9 마음 희석

#치유 #맨발걷기 #보정명령 #후견인 #상속처리 #존엄사 #자살

"잉크를 없애려 하지 말고 잉크에 물을 타야 했더라고"


어제밤 산책을 하며 들은 지인의 친구 얘기였다. 그 친구가 힘들게 살아서 마음의 상처가 있는데 그것을 없애려고 명상도 하고 애를 썼지만 결국 잉크를 없애기 보다 잉크에 물을 자꾸 타서 희석시키는 것처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달전 갑자기 찾아온 오빠의 자살을 존엄사로 받아들이기까지 '잉크에 물을 타서 희석시키는 방법'은 치유의 종착역 같았다. 어쩌면 진짜 물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바닷가, 호수, 시냇물을 찾아 다니며 극복을 하려고 했으니 말이다.


농사짓는 외가집에서 컸던 오빠와 1월 대보름이면 분유 깡통에 못을 대고 망치질을 해서 구멍을 뚫었다. 마른 나뭇가지와 종이를 넣고 불을 붙여 논바닥에서 쉭쉭 소리를 내며 지불놀이를 했다. 온 동네 아이들이 새뻘건 불로 동그란 원을 그리는 광경은 지금 생각해도 황홀하다. 오빠와 팔이 아프도록 쥐불놀이를 하고 다음날은 창호지로 연을 만들어 바람에 띄웠다. 눈이 펑펑 쏟아지면 돌멩이에 눈을 뭉쳐 동네 아이들끼리 투석전을 했다. 눈 돌멩이가 날아올 때는 맞을까봐 마음을 졸이며 전율했다. 


경찰서 전화를 받고 병원 시신 보관실로 달려 갔을때 고인의 모습이 충격적일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던 관계자에게 '오빠라서 괜찮아요' 했다. 서류철을 꺼내던 경리실에서 일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스텐으로 된 캐비넷을 잡아 당기는 순간 새하얀 천이 붉은 장미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맨 살로 눈을 감은채 누워 있는 오빠를 보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오빠와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놀았던 그 겨울 찬바람이 전해졌다. 오빠는 조현병에 시달리던 엄마가 칼을 들고 나를 위협할 때 달려와 막아줬다. 화가 난 오빠의 뒤를 얌전히 따라가던 엄마의 모습까지 일찍 떠나간 아빠의 부재는 남은 가족에게 시련의 연속이었다.


오빠의 안부를 묻는 엄마에게 '외국으로 일하러 갔다'고 했다. 엄마가 오빠의 상속을 받아야 하는데 대신 처리를 하느라 엄마의 후견인 신청을 했다. 후견인 신청에 따른 법률 사투리를 이해하고 준비 하느라 머리가 허옇게 쇠는 기분이었다. 엄마에게 후견인이 필요하다고 판단을 내리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종합병원에서 판단한 의사의 진단서였는데 의사가 소견서만 써줄 수 있다고 해서 제출했더니 퇴자를 맞았다. 소견서와 진단서의 차이를 몰랐고 개인병원과 종합병원의 무게감을 몰랐다. 


엄마를 20년동안 치료한 안양의 신경정신과 병원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작년 12월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직 50대이셨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엄마를 진찰하던 청년의사 시절이 떠올랐다. 환자보다 의사가 먼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다행히 엄마의 입원 기록이 있던 종합병원의 담당 의사가 여전히 근무하고 있어서 엄마를 모시고 갔더니 알아 보고 진단서를 써줬다. 그렇게 가장 중요한 진단서와 내 신용정보조회서, 엄마의 현 상태를 찍은 사진 2장, 시설급여를 받고 있다는 증명서, 후견인이 없다는 부존재증명서를 제출했더니 또 빠꾸다. 보정명령서식 97번에 맞게 겉 표지를 써서 제출하라고 했다. 법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서식 120개가 벽돌처럼 쌓여 있었다. 그렇게 보정명령을 받은 미비 서류를 갖춰 내고 잠이 들었다. 


이제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후견인 판정이 나면 오빠가 살던 집에 가서 유품정리를 해야 한다. 오빠의 선택을 아픔이 아닌 존엄사로 받아 들이고 마음을 내려놓기까지 두어달이 걸렸다. 잉크에 물을 부어서 희석시키기 위해 어린 조카의 웃음 소리를 듣고 명랑한 이들을 만나고 산사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세웠다.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낯선 사람이 들려준 자기 아버지가 준비한 웰다잉에 위로가 없었다면, 잉크를 지우기보다 희석시키라는 친구의 얘기가 없었다면 오빠분이 성실하게 사셨다는 은행 직원의 말이 없었다면 나를 학대하는 방향으로 몰아갔을 것이다. 


우리 모두 죽음으로 가고 있다.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린 사람들도 실오라기 하나 가져가지 않는다. 평소에 주변을 정리해야 마지막도 웰다잉 할 수 있다는 것을 오빠와 주변 사람들의 경험담으로 배우고 있다. 자신을 학대하거나 괴롭히기보다는 아픔을 희석하는 방향으로 가는 종점에 가고 있다. 매일 맨발로 걸으며 삶과 죽음이 농축된 지표면에 떡잎 같은 새생명이 올라오고 누런 낙엽이 떨어져 삭아가는 모습을 보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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