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쇼 Sep 13. 2022

옥상 금덕이 #8 발라당

이상한 만남 #발레 #상위1% #필연 #맨발걷기 #절실함 

흐린날이다. 아침 7시 지인과 만나 동네 뒷 산을 맨발로 나섰다. 30분쯤 걸었을까 진초록의 고무판처럼 펼쳐진 논에 벼가 익어가고 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더니 정말 그렇다. 옅은 노란빛이 머리를 물들이고 있었다. 300평쯤 되는 논을 향해 나무 한그루가 내려다 보고 있었고 등받이 없는 나무 의자 3개가 놓여 있다. 잠시 쉬면서 좁쌀 같은 이야기를 나눴다. 회사 출근을 앞둔 지인과 헤어지고 약수터로 향했다.


논과 채마밭이 이어진 곳은 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오솔길인데 그 길을 따라 가면 울금밭에 사는 '진순이'를 볼 수 있다. 아파트에서 살던 '진순'은 어느날 주인을 따라 밭에 왔다가 집에 가지 않겠다고 거부해 컨테이너를 의지해 눌러 앉았다. 그뒤 백옥처럼 새하얀 진순이는 누렁이가 됐다. 산책을 오가며 진순과 인사를 나누곤 했다. 6개월만에 찾아간 '진순'은 애기였었는데 젖가슴이 탱탱하게 불은 엄마가 됐다. 새끼 7마리를 낳았는데 털이 빠지고 쇠약해져서 다른개인 줄 알았다. 


며칠뒤 가방에 마른 북어를 넣고 다니며 지나가다가 주려고 했는데 주인 아저씨를 만났다. 북어를 줘도 되냐고 했더니 흔쾌히 허락 하셨다. 새끼를 낳은 어미는 예민해서 물 수 있는데 북어를 주니 관심을 보였다. 인기척에 컨테이너 바닥에서 인절미 같은 꼬물이가 고개를 내밀고 빼꼽히 쳐다봤다. 새끼들이 엄마 주위로 몰려 들었다. 진순은 새끼들을 한마리씩 살피며 북어 씹는 모습을 기특하게 바라봤다. 주인 아저씨께서 한마리 분양해 가라고 하셨다. 아무리 개를 좋아해도 그것만은 아니었다. 손사레를 치며 약수터로 향했다.


물 한병을 뜨고 운동기구들이 있는 쉼터에서 아침에 만난 빨간 꽃무늬 7부 바지를 입은 여인이 보였다. 누군가 전화를 하고 있었는데 아는체를 하자 전화를 끊더니 나를 끌고 샘물이 흐르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발을 담구고 말문이 터지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처음 만난 그녀는 진초록 논이 있던 곳에서 반갑게 아는체를 했다. '내가 아는 사람인가?' 하며 눈을 크게 뜨고 쳐다 봤다. '아니 맨발로 걷고 있길래 반가워서요~' 그녀도 맨발이었고 그 옆에 있던 다른분도 맨발이었다. 그 두분도 모르는 사이인데 맨발로 걷길래 오다가다 인사를 하는 사이라고 했다. 아침부터 생판 모르는 낯선 여인 4명이서 오래된 친구처럼 수다를 떨었다.


맨발로 걷는 '발라당'이라도 만들까 했는데 7부 몸뻬 바지 여인이 '발레'를 전공했다고 해서 '발래당'을 만들어 총수가 되면 신도들이 꽤 모일 것 같다며 어떠냐고 부추켰다. 그녀는 말했다. '불행은 갑자기 찾아오는 것 같아요' 먹물같은 슬픔을 안고 맨발로 걷는 낯선 사람이 반가워 서로 묻지도 않은 얘기를 했다. 마음 공부를 하고 종교를 만나 의지하지 않는다면 견디지 못할 고난을 지나왔다. 그녀가 18개월까지 젖을 먹인 아이는 성인이 됐는데 볼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다고 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어느 청년의 그리움이 와락 안기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침부터 가슴이 아팠나 보다. 



작가의 이전글 옥상 금덕이 #7 이모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