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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Sep 16. 2022

옥상 금덕이#11 그림으로 희석시키기

#그림 #벽화 #치유 #상처 #가족 #죽음 #힐링 #아크릴

옥상 벽면에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마음의 잉크를 재료로 어떤게 나올지 모른다. 초록색 아크릴 물감으로 생각한데로 그렸는데 붓과 물감, 벽면의 질감으로 뜻대로 안됐다. 초록색으로 잎사위 하나 그리는 것조차 구상한대로 안되는데 사는 일은 오죽하냐. 첫 붓질부터 실패다. 그렇지만 A3 사이즈를 벗어나 그려본 적이 없는데 기회다 싶다.


붓질을 시작한지 얼마 안돼 비가 내려서 엄마가 계신 요양원에 간식을 가져다 드리면서 요양원 입구 벽면에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전문가의 노련하고 매끈한 그림이 완벽한 곡선으로 빼어난 꽃화가 웅장했다. 그런데 대부분 선으로 그린 것이고 벽면의 바탕색이 그대로다. 옥상 벽면에 커다란 하트를 그리고 나니까 알게 됐다. 선으로 그려야만 그 거대한 벽면에 물감을 절약하고 시간도 단축시킬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겁도 없이 진한 초록색 하트를 그리고 나니 물감이 감당이 안됐다. 


아크릴 물감에 젤미디엄을 섞으며 물감 구입비가 슬슬 걱정됐다. 그림은 틀린게 없다. 잘못 그린 것도 다른 것을 덧대 그리면 그럴듯하게 변경할 수 있고 그리면서 생각을 입혀 나가는 묘미가 있다. 나무를 그리면서 머리속에서 떠오르는 심상을 만들어 내기 위해 나와 내가 의논해 나가는 과정이 즐겁다. 첫 시작부터 망쳤다는 생각이 떠올라 시선이 가지만 그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이 나올 것이다. 


어렸을때 봤던 초록색 고사리 순과 군집을 이뤄 꽃을 피고 벌을 불러들이는 토끼풀, 석양에 물든 그림자와 놀면서 거닐던 마을길, 오빠와 소꼽장난을 하고 마당에 멍석을 깔아 저녁밥을 먹었던 행복, 새까만 밤을 휘황찬란하게 반짝여주던 억만개의 별들과 은하수, 일식이 생겨도 흔들리지 않은 북극성과 수시로 변하던 북두칠성까지 유년시절의 고운 기억이 하나씩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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