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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Jan 05. 2023

씨이, 역사

성씨의 역사

씨이

내 남편은 말끝마다 ‘씨’를 붙인다. 똥마려씨, 배고파씨, 목말라씨, 더워씨, 졸려씨. 아 매워씨 아 배불러씨. 하도 씨씨거려서 ‘발’도 붙이지? 한마디 보탰다. 똥과 오줌에도 존칭을 붙이는 교양 있는 사람과 살다보니 어느새 부인 ‘에잇 오줌마려씨’ 한다. 그는 이씨, 나는 최씨. 둘다 본관이 경주. 이름을 묻고나면 어디 본관까지 묻는다. 미국이나 중국에서 태어난 동포들이 상하이이씨나 버지니아 김씨가 아닌 경주니 김해니 밀양이니 선대의 본을 따르는데 사람을 지역으로 분류한 연유가 있을터, 중학교 때 친구 언니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앞두고 성씨와 본이 같아서 가족의 반대에 부딪히고 혼인 신고를 못했었다. 법이 바뀌면서 가능했는데 깨소금 냄새가 나야 할 신혼 부부 낯빛이 어두웠던 기억이 난다.    

  

씨를 남발하는 서방님은 동방도 아니고 왜 서방이라고 했을까. 아내를 왜 ‘각씨’라고 귀족 여자 아이는 왜 아씨라고 했을까. 누가 최초로 성씨를 만들었는지 가장 오래된 기록을 찾아 올라가 보면 남매를 키운 싱글 대디 천자를 만난다. 그는 후대에 ‘신농神農’으로 불려 국가 제사의 가장 중요한 분이 됐다. 그에게 ‘뉘조(嫘祖)’라는 누님이 있었는데 그는 누나와 함께 뽕나무를 길러 누에를 먹이고 명주실과 견사를 뽑아 포와 비단을 만드는 잠업농을 일으켰다. 포와 비단 직조 기술은 오늘날 반도체 기술을 보유한 것과 같다. 인간 생활의 3대 요소인 ‘의식주’에서 ‘식’은 국가가 없어도 백성들이 자연에서 수렵과 채집으로 해결할 수 있다. 벌거벗고 태어난 인간을 덮어주는 ‘의’는 노동 집약적인 산업이고 전문 지식과 국가의 관리가 필요했다. 이는 다른 재화와 교환할 가치가 높아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국제 화폐’로 통했다. 오늘날 미연방은행이 달러를 발행하고 회수하면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듯 직물을 만드는 가공 기술은 국제 화폐를 발행하는 힘이나 다름 없었다.    

 

누에형상


씨의 기원

싱글대디 신농에게 아들과 딸이 있었다. 누나가 그의 딸을 업어 기르며 뽕나무를 기르고 누에를 쳤다. 아녀자 녀(女)자는 ‘고모가 조카를 업은’ 모양에서 시작됐다. 포(布)와 실크는 단기 4,500년전부터 조선 중기까지 3천년 동안 왜국 사신들이 말이나 갑옷, 병장기 같은 조공 물품을 바치면 답례품으로 하사해 줬다. 누에의 견사로 짠 비단은 군인들의 방탄복으로도 쓰였다. 화살이나 총상을 입었을 때 비단과 함께 피부로 들어간 활이나 총알을 잡아 당겨서 빼내면 내상이 적고 염증도 덜 나서 상처도 빨리 아물었다. 유럽 귀족들은 비단 조각을 구입해서 옷에 패치하고 과시하는 명품이었다. 100만 대군을 끌고 온 왜국들이 일으킨 임진, 정유란은 이런 잠업농의 시스템을 갖춘 조선을 통으로 빼앗기 위한 시도였다.      


입춘으로 음력 2월 4일이 지나면 된장, 고추장을 담구는데 술을 담구는 날도 따로 있다. 음력 첫 달, 첫 돼지날 해일(亥日)에 담궜다. 음양오행상으로 우주의 다섯 기운(목,화,토,금,수)과 천지의 여섯 기운(음,양,바람,비,어둠,밝음)이 가장 좋은 날이다. 국가의 중요한 산천 6곳에 가로, 세로 6미터, 높이 1.5미터의 사방 계단으로 ‘선잠단’에서 ‘신농과 뉘조’에게 돼지 1마리를 올려 제사를 지냈다. 오늘날 가게를 개업하거나 영화를 제작하기 전 ‘돼지머리’를 놓고 엎드려 절을 하는 풍습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롯데월드의 ‘잠실’이란 지명은 해마다 비단 실을 거두는 곳으로 각도에 하나씩 두고 40명의 관리를 뒀다. 천자와 제후는 궁안에 여러개의 잠실을 만들어 직접 누에 농사를 짓고 옷을 지어 입었다. 매년 3월 왕비는 직접 뽕잎을 따서 누에를 치는 의식을 거행하는데 애국가처럼 누에가를 부르며 행사를 마친다.     


누에치는 이로움은 / 維蠶之利

백성에게 옷을 입혀줌이니 / 衣被生民

여자들의 일을 인도하고 / 道我女紅

반드시 먼저 솔선한다네 / 必躬必親

부드러운 저 뽕잎을 따 / 菀彼桑柔

어여쁜 광주리에 담아 놓아서 / 承我懿筐

수고로움 감히 꺼리지 않아 / 靡敢憚勩

사방 백성을 가르친다네 / 以訓四方     


누에고치를 키우는 우두머리는 잠업의 어머니(잠모:蠶母)로 불리며 작업복이 따로 있었다. 짧은 바지를 입고 소매 폭이 좁으며 홑옷(單衣)을 입었다. 누에가 처음 나서부터 두 잠을 잘 때까지는 아주 따습게 해주고 자신이 추위를 느끼게 되면 누에도 추우니 불을 때서 실내 온도를 더 높여주고, 자신이 덥다고 느껴지면 누에도 더우니 실내 온도를 내려주는 인간 온도 조절장치이다. 누에는 연기(燃熏)를 싫어한다. 생선이나 고기 굽는 냄새, 가죽 타는 냄새를 싫어하는데 종이 타는 냄새를 맡으면 전멸한다. 술과 식초, 마늘ㆍ부추ㆍ파ㆍ달래, 누린내, 비린내, 약재나 향료를 싫어하고 실내에서 먼지 터는 것을 싫어한다. 석양 햇빛을 싫어하고 맞바람치는 것을 싫어한다. 갑자기 문을 열어 휙 몰아치는 바람을 싫어하며 등불이 창문에 비껴 비치는 것을 싫어한다. 술을 먹고는 뽕을 따거나, 누에에게 먹이를 주거나 똥갈이를 하지 못했다. 뽕잎 관리도 철저한데 물이 묻거나 잎이 상한 것을 먹으면 죽어서 장마가 치기전 뽕잎을 미리 따서 통풍하고 말려놓아 굶주리지 않도록 했다.      

단기 3003년, 고구려가 망했을 때, 남아 있던 유민들이 신라로 이주를 다시 국가를 세웠다. 이때 고구려의 농림수산부 장관급에 해당하는 우두머리가 양잠을 하는 백성들을 이끌고 신라의 서쪽 땅에 나라를 세우고 신라는 이를 받아들인다. 단기 2380년에는 고구려 누에 농사를 짓는 거대 부락의 우두머리가 1만여 가구를 이끌고 낙랑으로 이주하는 일이 발생한다. 누에 농사는 고조선 시대부터 조선이 망하기까지 정치의 근본이었고 잦은 왜구 침략의 원인이기도 했다.    


누에는 알에서 깨어나 25일 동안 자란다. 5일마다 하룻동안 잠을 자고 그때마다 꺼풀이 벗겨진다. 마지막 잠을 자고 나면 실을 토해 고치를 만든다. 마지막 잠은 실을 생산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에 신성시 여겼다. 뿔처럼 생긴 누에 꼬리에 비녀를 끼운 모양이 상서로울 양(羊)자로 탄생한다. 후대에 양羊을 양치기의 양자로 인식했지만 누에를 기르는 신성함을 담은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글자이다. 여기에 누에를 치는 두 여인을 상징하는 아녀자 녀(女)를 결합해 최초 성씨인 강姜씨가 만들어진다. 신농과 뉘조가 죽고 그의 후손인 2대 천자 ‘소호김천’이 잠업농을 일으켜 천자국으로 발돋움한 뜻을 담아 강姜씨가 된다.   

  

서기 100년에 허신(許愼)이 편찬한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양羊자는 상서로울 양祥이며 코끼리의 상아와 꼬리의 형상이라고 했다. 공자는 소양(牛羊)의 글자는 만물을 일으키는 모양이라고 했다. 1인당 국민 소득을 높여주고 수출 흑자를 내준 누에 모양에 여러 기호를 결합시켜 ’龍‘의 글자가 생겨난다. 용은 지금의 중공의 것이 아니며 상상의 동물이 아니라 누에의 모양이 발전된 것이다. 누에에서 별이름 진辰자도 만들어 진다. 누에가 실을 뽑기전 마지막 잠을 잘 때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뜨고 각을 세운 모양(羊)의 부수가 들어간 한자는 모두 좋은 뜻이다. 미국 미美자도 잠업을 하는 아름답고 큰 나라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잠업농의 여신(女神)에게 ’황제 헌원’이란 사람이 장가를 들러 온다. 예전에는 남자가 여성의 가문으로 머슴살이를 하러 오고 보디가드 역할을 했다. 이때 낳은 자녀를 머슴자(子)라고 했다.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를 뜻하는 자녀 자子이다. 여성의 이름에 ‘子’자가 들어가면 촌스러운 것으로 여기는데 모계 중심의 역사가 담긴 자이다. 헌원의 아들이 2대 천자가 되는 것이다.  아버지 황제 헌원의 ‘황黃’자는 신농의 딸과 뉘조 누님을 합친 女를 두손으로 떠받들고 공경한 글자로 황黃자가 된다. 누에는 뽕잎만 먹는데 초록색이다가 마지막 고치를 만들 때 누런 황색이 된다. 황黃은 이런 두가지 의미를 내포하며 오방색의 중심인 노랑으로 자리 잡는다. 인류의 1대 천자 신농이 누군지 기원전 202년 한나라 때(漢代) 편찬한 신이경(神異經)에 각색해서 나왔다.   

  

“옛날에 서남쪽 중앙에 사는 어떤 성인은 키가 1장이고(3미터) 배 둘레가 9척이다. 그는 거북이와 뱀을 발로 밟고 있고 머리에는 붉은 새를 쓰고 있다. 왼손은 푸른 용, 오른손은 흰 호랑이에 기댔다. 그는 강과 바닷물의 분량과 산과 바위의 개수를 기억하고 천하의 새와 짐승의 말을 알아 들었다. 사람들이 다니는 땅의 지리에 밝고 백가지 곡식 중 먹을 수 있는 것과 못 먹는 것을 분별하며 풀과 나무 중 어느 것이 짜고 쓴지를 안다. 이름은 성(聖)이고 총명하고(哲) 먼저 나아가고(先) 통하게 하고(通) 도달하지 못한 것이 없는 무부달(無不達)이다. 사람들이 그를 보면 절을 하는데 신령함과 지혜로움을 느낀다. 그는 천하의 성인(聖人)으로 생활에 필요한 지식이 풍부하고 삶에 대한 지혜가 밝은 분이다”     


사람들은 그를 최초의 ‘하느님’ 반열에 올렸고 그의 누님 뉘조는 ‘하누님, 하눌님’으로 지구라는 행성의 여신이 된다. 강姜에서 파생된 성씨가 100여개가 되는데 그 후손들이 고조선을 이끌면서 태평성대가 지속됐고 마지막 고조선 황제 후손 성씨가 김이박이다. 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나라를 다시 세우게 된다. 삼국사기에 2대 천자인 소호 김천이 신라 시조라고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하느님과 하누님에 관한 기록은 청동기 유물에 ‘금문金文’ 형태로 기록돼 있다.      


한자의 원형이라는 갑골문을 보러 은나라 박물관에 갔었다. 거북이 등딱지에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진짜? 일까 싶을 정도로 4천년전 돼지 허벅지 뼈에 송곳으로 긁어 놓은 문자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게 의아했다. 고대 문명을 만나면 그 기운이 주는 기묘한 느낌이 있는데 누군가 정해 놓은 것을 ‘믿는 것’과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끌림’이 서로 부딪혔다. 물론 진품은 따로 있다고 하는데 이런 느낌은     우리나라 유적지에 가서도 느끼는 바이다.      


신라 천년의 고도인 경주도 박정희 대통령때 포크레인이 와서 흙을 모으더니 어느날 그 자리가 천마총이 됐다는 그곳에 살던 어르신들의 증언이 전해지고 있다. 전라남도 진도에 있는 장보고 사당도 그 지역에 귀신을 모시던 사당을 어느날 정부에서 관리가 내려와 이제부터 여기가 장보고 사당이라며 바꿨다고 했다. 일제는 사료의 자의적 해석을 반대하고 실제적인 증거를 가지고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실증사학 방식을 제시했다. 박정희 대통령 이전부터 어느날 우연히 발견되는 유물들이 각 지방에서 나와 방송을 탄다.    

  

1926년 경주시 노성동에서는 스웨덴 황태자 구스타프 아돌프가 땅바닥을 파헤치고 그 옆에는 일본인 고고학자가 지켜보는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황태자는 현장에서 발견된 신라 시대의 금관을 상자에 담고 천년도 넘게 잠들어 있던 금관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자, 황태자 일행과 일본인들이 손뼉을 쳤다는 기사는 그곳이 경주임을 증명하는 자료로 쓰였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지구 반바퀴를 돌아 어떤 나라에 가서 갑자기 땅을 파고 금관이 짜잔 나오는 기적이 펼쳐 졌을까. 1962년은 박정희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킨 것보다 사람들의 정신을 훼손한 중요한 해이다. 무려 4천년 동안 써왔던 단기 연도를 없애고 서기로 바꾼다. 전 재산을 털어 독립운동을 했던 석주 이상용 선생의 후손이 이런 말을 했다.     


“언제부터인가 단기를 없애고 서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때 제 느낌은 갑자기 2천년 역사가 한꺼번에 사라진 것 같았어요.”     


우리나라는 모든 역사가 5세기로 맞춰져 있다. 고조선 역사서는 남아 있지 않은데 단군세기나 삼성기 등 신라 시대 명망 있는 승려와 학자들이 쓴 4개의 역사서를 모은 ‘환단고기’가 나왔을 때 그것을 읽으면 ‘환빠’라고 일빠들의 공격을 받았다. 학자들은 환단고기를 공식적으로 언급하기 어려워 했다. 읽어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씨.발의 역사로 다시 돌아가면,     

씨의 기록을 어디에 해놨길래 4천년 넘게 남아 있을까? 만약 내가 황족의 후예라고 가정했을 때 고조부, 조부모, 부모에 관한 족보를 출판한다고 했을 때 1번 돼지 허벅지 뼈, 2번 거북이 등딱지 3번 동굴 벽화 4번 청동기 각인 중에 고르라면 어떤 것을 선택 했을까? 1, 2번은 견고함이나 마모의 우려가 높고 동굴 벽이나 청동기에 각인했을 것 같은데 동굴은 형식의 제약과 접근성이 떨어져 고민이 들었을 것 같다. 습기나 물이 흘러내려 지각 변동의 영향을 받을테니 말이다. 고대 천자국은 주물을 만들어 청동기로 찍어 컨트롤 씨, 컨트롤 브이 해서 후손들과 제후국에 배포하는 방식을 썼다. 다이나마이트 같은게 나와서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이 나오기 전까지 깨지지도 않고 불타 없어지지 않는 괴력의 청동기는 원하는 형태와 규모, 두께로 제작이 자유로워 4천년 동안 조대朝代로 이어져 왔다. 이런 동양의 A급 유물은 대만 국립고궁박물관(國立故宮博物院)에 원본은 감춰두고 카피본을 전시하고 있다. 신농과 뉘조가 조선의 1대 천자이자 하느님, 하누님이라는 근거는 청동기 금문에 조선(朝鮮)의 조(朝)자로 각인해 놨다.      


조선(朝鮮)의 조朝자를 탄생시킨 누에는 뽕잎만 먹는다. 뽕나무는 덥고 건조한 지역에서 잘 자란다. 뽕나무는 복숭아 나무와 절친이다. 새들이 뽕나무와 복숭아 나무가 있을 때 뽕을 선호해서 복숭아 나무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어 같이 심었다. 복숭아 나무는 나라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두 번째 나무이다. 밀과 보리의 흉작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에 뽕나무, 복숭아, 밀과 보리 농사는 한 세트이다. 우리가 보리차를 먹는 이유, 무릉도원, 도원의 결의라는 도 도桃가 복숭아 나무를 말한다. 대명조선을 탄생시킨 이(李)씨의 나무 목 木자는 뽕나무이거나 복숭아 나무일 가능성이 99.9%이다. 미국 플로리다 주는 지역 이름이 ‘뽕나무’인 곳이 있는데 사람 살기가 가장 좋은 곳이다. 그 위에 있는 ’조지아주(georgia)‘는 미국에서 복숭아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피치 천국인데 별명이 ’복숭아주’일 정도이다. 2월이면 꽃이 핀다니 얼마나 아름다울까.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성씨’란 무엇인가. 옛날 사람들은 이런 정의를 내렸다.     

‘씨’를 갖고 있는 사람은 어떤 재능이나 힘은 비루하지만 공덕이 높고 선인에 이르려고 애쓴다.     

누에의 여신이자 지구별의 하누님인 ‘강姜’씨에서 100여개의 성씨가 나왔다. 중국이나 백제, 신라 8대 황족 성씨에는 女가 들어가는데 가부장의 주체가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사극에서 대비와 중전이 신하들과 머리를 맞대고 정치를 하며 외척의 세력을 견제하는 비사가 많은 것도 경제 대국을 일으킨 직조 기술의 핵심 인재들이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고려 때 철리국(철석이 많이 나오는 나라, 전세계 철석의 30%가 브라질에서 나온다)의 사신들이 공물을 바치고 책력(달력)을 받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책력이란 달력인데 한 해의 달력을 만들어 제후국에 배포 했다. 달력은 1년 365일 하늘의 별자리가 언제, 어떻게 어느 자리로 변하고 날씨의 변화, 기후의 예측이 가능했다. 고조선은 하늘의 별자리 지도를 만들어 놓고 세계 기상청 역할을 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하늘의 별자리 지도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별자리 중심인 ‘북극성’의 특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한자리에 고정돼 있고 그 주위를 중심으로 별자리가 돌아가 만물이 생성, 소멸한다는 발견해 유레카를 외친 것이다. 


    북두칠성의 머리 부분은 북극성을 바라보면 돈다. 북두칠성은 2개의 작은 별이 보석처럼 붙어 있어 모두 9개이다. 북두칠성 9개와 북극성 1개가 만나 10이 된다. 세계 최초의 경전 ‘천부경’은 1부터 10까지의 뜻을 담고 있는데 고조선 때 만들어 졌다.  북극성과 북두칠성의 별자리를 보고 경복궁이 만들어 졌다. 천자가 신하들과 만나는 장소, 조회를 하는 장소, 결혼을 하는 장소등 모든 것이 별자리에 세팅이 돼 있다. (지금의 경복궁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천문학자라면 가서 검증해 봐도 될 것이다.)     


단군 사화의 웅녀를 곰 토템이라고 했는데 곰은 OB맥주의 베어가 아니라 ‘고니’라는 ‘알’을 말하는 것이다. 생선의 알을 ‘고니’라고 하듯이 생명체를 말한다. 사람들의 생명이 만들어지는 ‘알의 아래’에서 ‘아랫도리’가 파생되고 알은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뜻하기도 한다. 그것은 하늘의 별자리 변화를 주관하고 사계절과 비와 바람을 만드는 북극성을 말한다. 우리가 상투를 틀어 머리 꼭대기에 똥머리를 하는 이유, 결혼할 때 족두리를 쓰는 이유, 평상시 갓을 쓰는 이유 모두 북극성과 두상을 일치시켜 생명 존중의 사상을 지키가겠다는 의미이며 ‘천손 사상’의 근간이다.     


일제 때 단발령을 내렸으니 그 당시 많은 선비들과 백성들이 충격을 받아 수없이 자결한 원인이 됐다. 김알지니, 박혁거세의 난생사화는 북극성이 내려준 고귀한 생명체를 여성이 낳아 남성과 똑같이 ‘평등’한 관계를 말하기 보다 둘의 ‘조화’를 이루라는 의미이며 여성은 대지를 남성은 하늘을 상징하는 음양이 탄생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둘이 결합해 태극이 되고 북극성을 표현하고 주변의 별자리는 건곤감리와 64괘로 표현해 주역이 만들어 진 것이다.     


북극성을 중요시 했기 때문에 천자가 위치한 곳이며 나라를 건국한 위치의 기준점이 된다. 선조들은 하늘을 28수로 나눠 모든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이름을 붙이고 위치까지 완성했다. 세계 최초로 네비게이션을 만든 것이다. 해양 어선들, 사신들의 이동, 지역의 위치를 찾아 말을 달리고 수레를 끌며 아득히 지평선만 보이는 드넓은 광야와 까마득히 높은 산, 지표가 되는 산천이 없을 때 밤하늘의 별자리를 읽을 수만 있다면 소경이 눈 뜻 것처럼 두려울 게 없는 대항해의 시대를 연 것이다. 글로벌은 고조선 때 이뤄졌고 신라 때 나침반이 세계 최초로 만들어졌다. 천지개벽이다. 


우리나라 성씨와 팔도의 지명은 이런 별자리와 연관됐다. 

조선왕조실록은 왜인들 족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귀화한 왜인들과 내방한 사신들 이름이 빼곡하다. 조선에 귀화한 왜인의 경우 정착할 토지와 성씨를 주고 결혼할 처자를 얻게 되는데 조선시대 1대 시조이면 귀화한 왜인일 가능성이 높다. 황제 후손들은 고려, 신라, 고조선때까지 올라간다. 구한말 상놈들이 족보를 사서 한반도에 양반이 없다고 하는데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리다. 1910년 조선이 완전히 없어지는 도장을 찍기전에 이득을 본 사람들은 일제한테 은사금을 받고 변변치 않았던 조상들의 시호를 자체 수여한다. 그때 어린 순조가 뭘 알았겠나. 심지어 500년전 인물까지 소급해 충무공처럼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나 주는 시호를 받는다. 한편으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은 족보라도 챙겨 왔는데 6.25 전쟁으로 피난길에 오르면서 없어지고 미군에 소속된 역사 부대가 남북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수거해 갔다.     


1대 하느님 신농(神農)은 농사의 신이라고 논농사만 생각하게 되는데농사뿐 아니라 풀과 나무를 이용해 사람을 고치는 의사이기도 하다. 강씨들 중에 대대로 의사 집안은 거짓말 같지만 4천년 넘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DNA로 격세 유전되고 분화 돼 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느 초목이 어디에 좋은지 술술술 나온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에게 귀가 닳도록 들었기 때문인데 식치와 초목을 이용한 치료, 니시 요법이라는 일본의 대체의학도 우리나라 의서 6만권을 가져가서 만든 것이다.   

   

종자씨의 이주

    시집 온지 100년 된 할머니는 파란색, 빨간색, 분홍색의 색동 옥수수 종자가 있었다. 그녀는 고향을 떠나기 전날 밤 신랑이 준 종자씨 주머니를 자신의 치마 안쪽에 매달아 바늘로 꼬맸 다. 신랑은 대나무로 목발을 만들었다. 행여 종자를 빼앗길까 다리가 불편하지 않지만 고안해 낸 방법이다. 통 안에 밤, 복숭아씨, 땅콩, 대추씨, 매화씨를 넣었다. 콩, 수수, 도토리, 기장, 밀, 보리 등 작은 것을 사이 사이 채웠다. 가져갈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종자를 넣었다. 고향을 떠나 낯선 항구에 도착했을 때 사방은 화석 연료 냄새와 연안의 비린내가 승객들을 맞았다. 하늘을 가린 증기선은 우렁찬 경적 소리를 뿌뿌 거렸다. 칼이 총 끝에 묶인 총기를 겨눈 왜적들 몸에서 쉰 내가 났다. 그녀는 신랑의 손을 잡고 바짝 붙어서 걸었다. 검색대를 통과하면서 긴장한 탓에 치마 자락을 밟아 앞으로 넘어졌다. 종자씨 주머니가 바닥에 떨어졌다. 씨들도 떠나기 싫은지 사방으로 도망치는 것 같았다. 놀라 주저 앉아 치마폭으로 가리며 쓸어 담았다. 주위에 있던 여인들도 같이 주저 앉아 담았다. 행여나 들킬까, 빼앗길까 신경이 곤두섰다. 군인들은 고함을 지르며 총부리를 겨누며 앞으로 움직이라고 목젖을 울렸다. 그녀는 종자를 입안에 넣고 신랑의 손을 잡았다. 도성 서쪽에서 같이 자란 청년 한 명이 상대편 진영에서 군복을 입고 총부리를 겨눈채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가 탄 증기선은 3,327명을 태울 수 있었다. 배 길이는 학교 운동장 한 바퀴를 풀어 놓은 것 같았다. 눈 짐작으로 300m쯤 될까. 배 폭은 마을에 있던 30미터 높이의 밤나무가 쓰러질 만큼 됐다. 물속에 잠긴 선체의 깊이는 19m, 고압의 증기를 터빈 날개에 분사해서 전진하는 엔진은 20노트(Knots)로 1시간에 37km를 갈 수 있었다. 세계 최대 태평양우편증기선 회사의 50,000톤 증기선 이름은 ‘코리아호‘ 이다. 21세기 가장 빠른 항공 모함이 30노트 조지 부시함인데 1902년 조선의 증기선은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이식하는 중추원이 됐다. 그녀는 갑판 위 빨강과 흰색, 파란 깃발이 제비 꼬리처럼 갈라진게 보였다. 봄이면 강남 갔다 온 제비가 처마 밑 흙 집으로 돌아와 안마당을 빙글빙글 돌며 인사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원기승천씨

    할아버지는 말했다. 그가 살던 고향에 동북 방향에 밤나무 숲이 빼곡한데 마을에 30미터 높이의 율목(栗木)이 있다고 했다. 붉은색 껍질에 황백색 속살의 조선밤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작지만 단 맛이 강했다. 철도를 깔 때, 석탄을 채굴할 때 갱목으로 밤나무를 썼다. 땅 속 깊숙이 뿌리를 내려 가뭄과 혹독한 환경에 살아 남아 단단하고 쉽게 썪지 않았다. 버섯을 키울 때, 건축 자재로 쓰여 왜적들은 면도하듯 주인 잃은 산하를 벌목해 황금 탑을 쌓았다. 밤나무 하나에 암꽃과 수꽃이 따로 발육하는데 나무는 바람이 결혼을 시켜준다. 날카로운 가시로 알을 보호하다가 알이 커지면 밖으로 터트려 독립시키는 밤은 한 몸이 되어 자식 낳고 살다가 고난을 이겨내라는 바램으로 폐백 때 신랑 신부에게 던져준다.     


그는 낯선 땅에 이주해 와서 제일 먼저 밤나무를 심었다. 대나무 목발을 쪼개서 밤과 종자씨를 골랐다. 아궁이에서 불을 때고 남은 재와 오줌을 섞어 발효한 거름에 흙을 섞어 모종판을 만들었다. 다른 열매들은 땅에 심으면 분해가 되지만 밤나무는 모종에서 싹이 트고 열매가 열릴때까지 어미 밤이 매달려 있다. 첫 열매가 열려야 비로소 소임을 다한 것을 알고 썩어갔다. 인간은 어쩌면 나무의 자식인지 모르겠다.   

   

밤나무가 집안을 껴안을 정도로 커지면서 동네 사람들을 다 먹이고도 남을 밤이 가을 새벽마다 지붕에 우박처럼 두두둑 떨어졌다. 그녀는 바구니를 증손녀 손에 쥐어주며 사람들이 다 가져가기 전에 주워 오라고 새벽에 내보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밤을 저장해 겨우내 먹으려고 갖가지 실험을 했다. 소금 항아리에 박아 놓기도 하고 땅속에 묻기도 했다. 옆집과 거리가 100미터쯤 떨어져 인적이 드문 시골에서 밤나무는 언제든 다가 갔다가 지루하면 거리를 둘 수 있는 참친구였다.      


밤나무에 오르고 뛰고 껴안으며 놀았다. 가을이면 밤잎을 쓸어 아궁이 불쏘시개로 썼다. 기원전 202년 한나라때(漢代) 편찬한 신이경(神異經)이란 책에 동북쪽 변경에 높이가 120미터에 잎이 1.5미터인 밤나무가 있다고 했다. 많이 먹으면 사람의 기가 약하고 고갈된다고 전해진다. 1964년 셸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나왔을 때 미국의 목재 회사는 벌목으로 상상할 수 없는 부를 쌓아 올렸다. 나무를 부러뜨려 올린 황금은 다른 나라의 문명까지도 훔쳤다. 1910년 이전까지 미국은 억그루의 밤나무가 있었다다. 무차별 벌목은 멸종 위기까지 왔다. 그들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벌목의 이로움과 정당성을 외칠 때 나무는 소리쳤다.      

‘열매는 마음대로 가져가!

하지만 살고 싶어

 아낌없이 주기 싫다구‘          


무지개씨    

몇 해전 미국의 중부 오클라호마 체로키 농부가 자신이 갖고 있던 옥수수 종자를 혼합 교배해 무지개 옥수수를 개발했다. 얼마전 우리나라에도 수입돼 소문을 타고 옥수수 매니아가 비싼 값을 주고 사서 지인들과 같이 쪄 먹었다. 이 사이로 옥수수 껍질이 끼었다. 미제 무지개 옥수수란 말에 호기심이 증폭해 김이 오르고 익기를 기다렸는데 껍질을 벗겨 작은 색 구슬이 박힌 무지개 옥수수를 한입 베어 먹는 순간 정수리 아래 골수를 타고 전두엽, 후두엽 어디쯤 저장된 기억들이 동공으로 튀어 나와 눈 앞에 펼쳐졌다.      

매미가 윙윙 울어대는 나른한 오후, 시골 대청 마루에 앉아 뜨거운 열기를 벤 무지개 옥수수를 한 입 베어 먹다가 손가락으로 옥수수 한 알씩 파서 입안에서 오물거렸다. 오봉에 탈곡된 옥수수 뼈대가 쌓이고 사람들의 혓바닥과 치아가 바쁘게 움직였다. 사람들에게 말했다.      

‘어?? 저 어렸을 때 무지개 옥수수 먹어 봤어요 할머니가 농사 지었는데....’      


그들은 관심 있게 듣지 않았다. 진 초록의 밤나무 이파리가 바람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반짝이던 광경, 할머니, 할아버지의 담배 연기, 옥수수의 끈끈한 촉감과 어금니에서 톡톡 터트리는 재미를 다시 체험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치마 안감에 감춰온 종자씨는 100년간 손자, 증손자, 고손자까지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는 기적이었다. 2000년이 되면서 시골은 대규모 토목 공사로 수십만 가구가 떠나고 토종 종자는 사라졌다. 종묘 회사에서 공급하는 옥수수 씨는 그들이 만든 비료를 주지 않으면 자라지 않았다. 가난한 시골 할머니들은 비료 값을 감당할 수 없어 밭을 갈아 엎었다. 독립운동의 선봉에 섰던 김승학 장군은 왜놈보다 무서운게 ‘옥수수 밭의 모기’라고 했다. 왜적을 피해 도망친 옥수수 밭은 끝도 없이 넓었는데 모기가 하도 물어 정신이 혼미했다는 것이다.     

 

씨겨루기

강호동이 이만기를 엎어치며 환호하던 시절, TV에서 천하장사 씨름 대회를 중계 했다. 상대방의 속임수에 큰 힘을 줬다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서로가 샅바로 묶여 있어 이기거나 지거나 한 끗 차이로 동시에 넘어졌다가 같이 일어섰다. 경기장 규격은 높이 70cm이하 30cm이상 넓이는 직경 8m 원형이다. 씨름은 힘과 능력에 중점을 둔 레슬링과 달리 미덕과 서로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씨름은 각저(角觝)라고 했다. 동물의 뿔과 같은 상투를 튼 남자들이 서로 각을 겨누는 것이다. 하늘의 별자리 시작은 각수로 시작한다. 각수는 나무의 기운을 맡은 동방의 상징이고 청룡의 뿔에 해당한다. 각수는 두 개의 별이 있는데 왼쪽 좌각의 안쪽에 있다. 봄을 알리는 별자리이며 동방을 지켜주는 별이라고 여겼다. 오행의 나무에 해당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목자가 들어간 성씨가 많다. 李씨, 朴씨, 林씨, 權씨, 宋씨, 柳씨, 梁씨 등이다. 이런 것을 함축한게 씨름의 탄생이다. 좌각과 우각이 겨누는 것이다. 동방은 왼쪽을 신성시 여겼고 ‘동쪽’ 방향으로 봤다.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삼정승 중에 좌의정이 높았으며 한복의 여밈도 왼쪽에서 오른쪽에 고름을 달았다. 고구려의 각저총에 있는 신단수 아래 씨름 장면은 왼쪽을 신성시 했던 동방의 상징들과 정반대다. 일제 시대 때 상투를 자른 것 만큼 불길하게 여겼던 오른쪽으로 옷이 여며졌고 다리 위치도 왼쪽 다리를 걸고 넘어지게 그려져 있어 씨름의 기본과 동떨어져 있다. 고구려의 무덤이 아니거나 조작됐거나 다른 나라의 것이다.   

  

씨름은 상대방의 무릎 윗 부분이 모래에 먼저 닿으면 이긴다. 평지가 아니기 때문에 힘을 쓴다 해도 제어가 어렵지만 부상이 다른 경기에 비해 적다. 몸무게가 40kg이상 차이가 나도 적은 사람이 큰 사람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모래판 위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샅바를 쥐는 순간 상대가 힘이 쎈지, 이길만한지 ‘감’으로 알 수 있다고 한다. 하늘 아래 천하 장사가 되는 순간 허공에 모래를 뿌리며 만세를 부른다. 황소를 타고 씨름판을 돌며 비단 가운을 풀어 헤친채 왕좌에 오른 것처럼 환희에 찬 표정을 짓는다.      

씨름은 스페인 사람들도 한다. 그들은 이 경기를 ‘루차 카나리아’라고 한다. 1490년 북아프리카 모로코 대서양 앞바다에 위치한 그란 카나리아 섬에서 ‘관치‘ 사람들이 씨름하는 것을 보고 차용했다고 한다. 그곳은 유럽인들이 사랑하는 휴양지로 북아프리카 모나코 앞바다 대서양에 있다. 푸른 옥색의 큰 바다가 펼쳐진 이름난 관광지는 상체를 탈의하지 않고 샅바 없이 바지 가랑이를 잡고 하는데 경기 규칙은 우리네 씨름과 비슷하다.      

1929년 조선박람회가 경복궁에서 열렸다. 힘 좋은 ‘체코 여인’이 황소와 씨름을 했다. 여자가 황소를 상대로 엎어치기를 하니 힘이 평균 이상인 셈이다. 갓 쓰고 한복 입은 사람들 너나 할 것 없이 구경하고 있다. 그 시절 세계 대공황이 터져 사람들이 길거리로 내몰리던 때 웬 체코 여자가 우리나라에 와서 소와 씨름을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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