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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Jul 05. 2023

맨발걷기

#걸치다 #나체 #속옷벗기 #풍욕 #바람 #산책 #눈시력 #맨발걷기효능

아침에 눈을 뜨고 


"아 잘 잤다~~~"


기지개를 켰다. 전날밤, 잠들기전 나만의 의식을 치룬다. 하루종일 감싼 팬티를 벗고 실오라기 한가닥 없이 눕는다. 린넨이나 면으로 된 얇은 이불 하나를 덮고 팔 다리를 쭈욱 편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달렸던 신경세포들이 멈춰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 편한 세상이 따로 없다. 나체로 자기 시작하면서 사나운 꿈들도 잦아들고 자고나면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동네 지인에게 홀딱 벗고 자는게 얼마나 좋은지 한번 해보라고 권했다


"야 안돼, 남편이 좋아해"


자면서 꿈을 많이 꾼다. 잠드는게 무서울정도로 제발 꿈을 꾸지 않았으면 하고 바랬다. 골반을 걸친 팬티를 벗으면 크린랩에 밀봉된 고기를 뜯은 것처럼 느슨해진다. 속옷을 벗고 자기 시작한지는 1년정도 됐다. 2년전 10일동안 물과 소금만 먹는 단식을 했을때 '풍욕'을 했다. 옷을 벗어 바람을 쐬이다가 이불을 덮는 동작을 반복해 노폐물을 뺀다. 밖으로 노출된 팔, 다리와 얼굴 외에 속옷으로 가린 부위를 바람으로 목욕하는 시원함을 맛본 뒤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자는 것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긴장을 했는데 점점 가속이 붙어 훌러덩 훌러덩 벗게 됐다. 곁에서 지켜본 친한 언니가 그러다가 '옷 벗는 치매'에 걸리는거 아니냐고 놀렸다.


잠자리에 일어나 속옷을 입지 않고 짙은 감청색 린넨 원피스를 걸쳤다. 입은게 아니라 어깨에 걸쳐 공원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타원형으로 된 트랙을 걷고 있었다. 전날 폭우가 쏟아져 밖으로 못 나온 사람들이 햇볕도 없이 흐리고 바람이 좋아 빠르게 앞을 보고 전진했다. 나는 그 중간을 가로질러 흙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 신발을 벗었다. 지구에 발바닥을 내딛는 순간 두번째 평안이 몰려온다. 집안에 냉장고, 컴퓨터, 와이파이 기기등 각종 전자제품이 웅웅대며 신체의 주파수에 영향을 주던 몸은 발바닥을 통해 흙으로 흘려 보낸다. 오줌을 눟고 변기물을 내리것 같다. 발로 흘려 보내는 각종 생각과 쓰레기 감정들, 아무말 없이 한없이 가벼워지는 마음, 이마가 차가워진다.


누가 보거나 확인할 일도 없는데 원피스 속으로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내장까지 낀 독소와 기름을 데려가는 것 같다. 맨발을 걷기 시작한지 1년여 됐는데 한명, 두명 나와 같은 사람이 늘어났다. 젊은 청년이 맨발로 걷는 것을 봤는데 오늘은 세 명의 중년 여인과 지나쳤다. 프라다 회색 반바지에 감청색 티셔츠에 등산 모자를 쓴 여인, 파스텔톤 꽃무늬 티셔츠와 바지를 입은 노년의 여성 등 그녀들과 지나치게 되면 괜히 조심스럽고 쑥스럽기도 하다. 발바닥에 닿는 모래와 자갈, 나뭇가지, 낙엽들이 주는 감촉이 불편하고 거칠어 천천히 서행을 한다. 어제 감사했던 일과 되돌아볼 일, 오늘 할 일과 근신할 마음 가짐을 헤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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