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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Feb 17. 2023

파를 위하여 #2

#검험관 #검관 #시체검안 #수령 #무원록 #총백탕 #총백 #대파 

인류 최초의 '대일밴드'는 '파'이다. 

상처를 감싸고 지혈을 돕고 소독을 해줬다. 파는 식용, 약용, 검시용의 약물로 사용했고 소나 말을 치료할 때도 쓰였다. 1200년경 고려때 일이다. 사찰 승려들이 법문을 읊고 강론할 장을 헐어 파, 마늘 농사를 지었다. 국가에서 이를 문제 삼아 금지시켰다. 마음을 다스리고 법문을 가르쳐야 할 곳에서 농사가 웬 말이야!라고 말이다. 사찰에서 농사는 공양에 필요한 식재료를 자급자족하고 승려들의 수행에 필요한 일이다. 파, 마늘은 양념의 기본이고 의학품이었기 때문에 안정적인 식재료와 상비약으로 농사 짓는게 까다롭지 않아 외부에 유통시켜 재원을 마련하는데 주요했을 것이다. 이 당시 사찰에 대한 규제로 이득을 보는 신생 집단이 생겼을 것이다. 법당에서는 날마다 영가들과 부처님께 제를 올려야 하는 제수 품목인데 난감했을 것이다. 


옛날에 군대가 출병할 때 의관들이 챙겨야 할 약품은 '파'였다.  '왕명학'이라는 사람이 '군중의학'이라는 책을 엮었다. 그 책에 보면 군부대가 새로운 곳에서 진영을 칠 때는 반드시 '산천'을 의지했는데 그곳에서 불어오는 낯선 바람과 비, 낮과 밤의 온도 변화등으로 기운이 쇠약해지고 대규모 사람들이 뒤엉켜 돌림병이 생긴다고 여겼다. 신체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한데 물과 기후가 맞지 않으니 풍토병까지 걸렸다. 이때 두통과 열감기, 몸살을 앓는 일이 잦은데 약을 먹을 때 '파 달인 물'로 복용하게 했다. 목이 칼칼하고 열기운이 오르는 감기 기운에 '파 달인 물'을 마시면 신묘하게 가라 앉는다고 했다. 또 금속이나 날카로운 칼, 화살에 맞아 상처를 입었을 때는 '파를 갈아 붙여 파상풍을 예방'하고 '지혈'까지 했다. 의관들이 짊어진 가방에 초록색 파 한다발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을 것이다. 가져간 파가 떨어지면 취사병에게 얻었거나 산과 들에서 자라는 종자를 찾아 급하게 썼을 것이다. 


파는 한자로 총명한 풀이라는 '파 총蔥'이다.  '바쁠 총悤' 자 위에 '풀 초艸'가 있다. 몹시 급하고 서두르는 마음을 풀이 다스려주는 슬기로운 풀인 것이다. 바쁠 총자 아래 '마음 심 心'가 있다.  '심心'은 우리 몸에 '신神'이 사는 곳이다. '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인 오장과 '대장, 소장, 위장, 담낭, 방광, 삼초'인 육부의 우두머리를 '심장'으로 봤다. 파는 쓰고 맵고 달다. 쓴 맛은 심장으로 가고 매운 맛은 폐로 가고 단 맛은 비장으로 간다. 심장과 폐와 비장에 필요한 맛이 파에 있다. 파 하나만 먹어도 1타 3피다. 사대부들은 책을 읽어 시력을  많이 쓸 경우 간장에 무리가 가서 심장에 피가 부족해 지는 것으로 봤다. 그러니 심장을 돕는 파는 총명함을 도와주는 속 깊은 풀인 것이다. 선조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파'를 올린 이유일 것이다. 제를 올리던 시기를 대략 5천년쯤으로 보면 그때부터 '파'는 사람들을 살리고 상처를 낫게 해주는 든든한 풀이다. 모든 식물에 있는 독성이 파에는 없으니 신생아와 임산부에게 치료제로 썼으니 파뿌리를 잘라서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다가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파의 영양분은 '뿌리'와 흰 색 대 부분에 있다. 

얼마전 화분에 심은 파가 성장을 멈췄다. 다 크고 난 뒤가 궁금했다. 누렇게 말라서 시들까? 아니면 꽃을 피고 씨를 맺을까. 드라마 마지막회처럼 종방을 지켜보듯 요리조리 만져보다가 초록색 줄기 하나가 꺾였다. 버리기 아까워 북어국에 넣어 먹었다. 흰색 대에서 총 4개의 초록색 줄기가 올라온 셈이다. '다 자랐나보다' 하고 결론을 내리니 흥미를 잃어 쳐다보지 않았다. 어쩌면 빨리(?) '시들어 버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서 쳐다보니 3가닥만 남아 있어야 할 초록 줄기가 그대로 4가닥이어서 잘못 봤나 했다. 분명히 한가닥 잘라져서 3개만 있어야 했는데 '다 자랐다'는 생각과 다르게 그사이 새순이 올라왔던 것이다. 이제 멈추겠지. 끝을 보고 싶은 마음에 '새순'의 신기함은 처음처럼 흥분되지 않았다. 이제는 가장 처음 올라왔던 줄기가 시레기 줄기처럼 누렇게 말라 비틀어지고 하얗 대도 수분기가 빠져 푸석하게 건조해졌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기도 전에 수천년 이어져온 생명력은 음식으로 나의 오장육부, 손톱 세포 끝까지 한 몸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동물도 병이 날 경우 파를 썼다. 소에게 약을 쓸 경우 사람과 유사했다. 감기에 걸린것처럼 몸을 떨며 땀을 흘리고 코가 찬 경우 파 뿌리를 소금물에 달여 먹였다. 말을 타고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을 당시 말이 혹사 당하지 않도록 지하철 역처럼 역참을 만들어 교대 근무를 시켰는데 한 선비가 오지를 가다가 말이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자 한탄을 하며 난감해 속상해 하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땀을 많이 흘리는 말을 탈 경우 말의 땀에는 독이 있어서 사람 옷에 총백을 바르고 탔다. 말에 물려 피가 났을 경우에도 총백과 연잎을 빻아 발라주면 신묘한 효과가 있다고 했다. 사람의 치아는 말과 비슷해 초식동물로 보는데 소가 먹는 풀의 90%는 사람이 먹어도 된다고 하니 소가 먹는 풀을 관찰하며 사람들이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 오며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다. 


언젠가 미국으로 이민간 사촌 동생이 '언니 여기 사람들은 우리처럼 뭐가 몸에 좋고 나쁜 것을 모르는 것 같아'라고 했다. 우리는 입에서 입으로 마늘은 어디에 좋고 고사리는 어디에 나쁘고 쑥은 언제 캐야하고 어디에 좋고 나쁜지 분별하며 왔다. 파는 음식의 기본 양념이고 예방 접종 같은 백신이다. 양념이란 약이 되는 청렴한 것이다. 파,마늘,간장,소금, 깨소금 기본 양념들이 들어가는 파김치, 파전, 파채무침, 파강회, 육개장, 파불고기, 파닭요리가 그냥 나온게 아닌 영양과 건강을 살피는 보약인 셈이다. 어느 음식이 어디에 좋은 것에서 더 나아가 '마음으로 먹는 약'도 개발했다. 동의보감이나 황제내경, 본초강목, 식료본초, 산림경제, 광제비급, 구급양방, 식료찬요, 의방유취 등 연령별, 직업별, 증상별 의학서도 있지만 마음으로 먹는 약을 개발한 '구선활인심법'은 기운이 소진되지 않고 총명하게 일상을 높은 경지로 끌어 올리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면 '좋은 일을 행한다, 마음을 속이지 않는다ㅡ 교활한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 겸손하고 온화하게 한다, 사나운 언행을 하지 않는다'와 같은 심성의 덕목을 심리적 약제로 생각해 마음으로 약한 불로 달여 끊임없이 살피면서 시간이나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든 따듯하게 마시라고 한다. 오장육부에 좋은 음식과 더불어 마음가짐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크게 봤다. '하늘의 마당'인 이마를 자주 문지르면 얼굴이 환해지고 점이 없어지는 미용법도 있는데 책과 컴퓨터를 많이 보고 이마를 문지르면 '눈'이 매우 시원한 것을 느낀다. 


어렸을 때 감기에 걸리면 할머니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방을 뜨겁게 하면서 파를 잔뜩 넣은 국을 끓이셨다. 나는 솜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다가 땀을 빼고 나서 국을 먹었다. 살다 보면 갑자기 충격적인 일을 당하게 되는데 이때 '총백탕(蔥白湯)'을 끓여 먹였다. 몸이 아플때뿐 아니라 사람의 감정과 기분이 상했을때도 총백을 썼다. 사람이 놀라거나 걱정하거나 갑자기 노하면 그 기운이 방광을 타고 심장에 올라와 충격을 줘 배가 아프고 방광 주변이 통증이 오는데 오래 묵은 귤 껍질과 해바라기씨, 파 뿌리를 넣고 달인 '총백탕'을 끓여 먹이는 처방전의 이름도 '파 총蔥'자를 써서 파가 주인공이다. 백성들이나 왕들이나 소나 말이나 태아나 임산부나 신분의 고하, 생명의 크고 작음, 인간과 동물의 구분 없이 파에 의지하고 파에 기대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옛날에 심장은 아주 큰 불이라고 생각했다. 사시사철 기운을 돋게 해 만물이 시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마음, 심장이 잘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이 파에 있다고 보니 파에 대한 감수성이 참신하다. 21세기에 사는 내게 파는 단순한 음식 재료이지만 상고시대부터 근세 이전에는 문학작품에서 '푸른 나무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것'을 '총수蔥秀'라고 했다. 조선후기 인물 이덕무는 '총蔥'은 '푸르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당시 푸르다는 '파'의 색을 연상하게 했다. 파는 '초록'색인데 어느시점에서 푸른색과 초록색은 구분된 것 같다. 조선시대 임금이 전쟁터에 나갈 때 썼던 모자가 초록색이어서 의아했는데 신성한 색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던 것 같다. 


17세기 말 숙종때 가정생활 백과 같은 '산림경제'에 보면 곤장을 맞았을 때 총백을 찧어서 불에 볶아 상처에 붙이면 통증을 그치게 하고 어혈을 헤쳐내는데 귀신같이 잘 듣는다고 했다. 우리가 오장육부라고 하는 육부에는 대장, 소장, 위장, 담낭, 방광, 삼초가 있는데 삼초는 몸에 흐르는 기운을 같은 것을 말하는데 파가 담당했던 부위는 주로 육부에 문제가 생겼을때다. 오늘날 배꼽에 쑥뜸을 들여 몸의 열기를 올리는데 파도 쑥처럼 뜸을 들여 육부의 문제를 해결했다. 동의보감의 어머니라 할 수 있는 의림촬요(醫林撮要)는 조선시대 명종(明宗)과 선조(宣祖) 때의 내의(內醫)였던 양예수(楊禮壽)가 앞서 편찬한 의서인데 중풍으로 인사불성이 되고 침을 흘리며 움직이지 못했을 때 측백나무와 총백을 갈아 술에 넣고 달인날 복용하면 중풍을 물리치며, 기(氣)를 순조롭게 만들어서 장애가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일일이 열거하기 지루할 정도로 총백을 이용한 처방전과 임상사례가 많아서 우리는 파를 의지하고 기생해 온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개장, 파전, 파김치, 파국, 파무침은 물론이요 갖은 양념의 중심인 '파'는 쑥과 마늘처럼 신화의 반열에 올려야 한다. 조부가 북한산 자락 아래 텃밭에서 농사 지은 대파를 자전거에 실고 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 돈으로 할머니는 아이스크림을 사와서 손주, 손녀들 다 제껴놓고 하나 밖에 없는 당신의 딸에게 내밀었다. 나는 고모가 그 아이스크림을 다 먹을때까지 뚫어져라 쳐다봤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전 그 얘기를 했더니 웃으셨다. 하얀색 카라가 달린 감정색 교복을 입은 고모가 새허연 아이스크림을 핥아 먹던 기억이 파 냄새를 맡을 때 겹쳐지곤 한다. 아궁이에서 철철 넘쳐 흐르던 파 향이 가마솥 뚜껑을 일으켜 식치로 다스린 일상의 지혜는 타이레놀과 해열제로 밀렸지만 기본 양념으로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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