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쇼 Feb 03. 2023

파를 위하여 #1

#대파 #양념 #개념 #파농사 #음식 #치료제 #법의학 #조선 #고려

내게 '파'라는 개념은 철물점에 파는 작은 부품처럼 음식의 구성 요소일 뿐이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대파를 농사지어 자전거에 실고 시장에 가면 뒷자석에 묶은 초록색 대파단이 축 늘어져 바퀴에 걸릴 것만 같았다. 할머니는 내가 감기에 걸리면 가마솥에 파와 무를 잔뜩 넣고 달인 물을 마시게 했다. 으웩. 가게 하나 없던 시골에서는 비료 포대에 흙을 담고 파를 가득 심어 겨울내 잘라 먹었다. 그런 파를 안 먹기 시작했는데 도시에 살면서 주말 농장을 했었다. 옆에 밭은 파 농사를 크게 졌는데 어느날 정성스럽게 '약'을 호스로 뿌리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하고 농장을 뛰쳐 나왔다. 그때 시골에서 농약을 잘못 써서 돌아가신 아저씨들 기억이 났다. 성인 아토피로 8년을 고생해서 무조건 유기농만 먹으려고 했기 때문에 '약'에 대한 노이로제는 이만 저만이 아니였다. 파에 그렇게 약을 자주 뿌리는지 몰랐다. 파 농사를 짓는 아저씨는 내가 놀라서 '아저씨~~~ 아 좀..'하며 놀라 달아나면 크게 웃으면서 약을 마저 뿌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이 아닐수도 있는데 약으로 오인하고 생협에서 유기농 파를 사서 먹었다. 특히 밖에서 사먹는 음식의 파는 '모두 걷어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거부 대상이었던 파는 교회에서 나이 지긋하신 권사님이 끓여주신 북어국을 먹고 음식의 마침표가 됐다. 어찌나 파 향이 그윽한지 지금까지 먹어본 북어국 중에 으뜸이라는 생각이 지금도 변함없다. 비법을 여쭈니  '국이 팔팔 끓으면 파를 넣고 불을 끄고 뚜껑을 닫으라'고 했다. 그전에는 파를 먼저 넣고 끓여 향도 없고 끈적거렸는데 방법을 알고 나니 그 이후 모든 요리 마지막의 마지막은 '파'를 넣었다. 나물을 무칠때도, 멸치를 볶을때도, 국을 끓일때도 파 범벅이었다. 모든 음식의 향을 파로 덮어 버리고 싶었다. 밥을 지을때도 파를 넣어 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런 파가 최근에 새로운 '개념'으로 다가왔다.

두어달전 남편이 코로나로 죽다 살아났다. 신장투석을 7년째 하고 면연력이 약해 초상을 치를뻔 했다. 그를 걱정하는 절친한 친구가 집에 들러 차 한잔을 하고 갔다. 나는 남편의 회복을 위해 방안에 '참숯'으로 도배를 하고 생명체가 없는 컴퓨터나 모니터 같은 것들을 치운 뒤 화초를 사들여 방안 공기를 바꾼 얘기를 자랑삼아 했다. 남편은 그놈의 화초 때문에 창문을 열고 닫아 찬바람으로 괴롭다고 했다. 처음에는 사람을 위한 일이었는데 화초를 위해 난방비 폭탄을 맞을 판이다. 남편 친구는 자기가 키운 것 중에 '파'가 으뜸이라고 했다. 파 윗부분을 먹고 뿌리가 있는 밑동을 화분에 심으면 여러번 잘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새삼스러운 내용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시골에서는 늘 그랬으니까. 


며칠뒤 음식을 하다가 그 말이 생각나 파 윗 부분을 잘라 먹고 밑동을 화분에 심었다. 그 순간이다. 음식을 만드는 하나의 '부품' 은 다른 분류를 찾기 시작했다. 생명체를 돌볼 때 나오는 묘한 기운이 방안을 맴돌았다. 작은 부엌에서 아름다운 휴양지에 간 것처럼 다른 영역으로 크게 확장했다. 양념을 구성하는 단위이자 나사 같은 부품이었는데 내 키보다 더 큰 존재로 다가왔다. 파 화분을 안방에 놓고 다음날이 됐다. 아침에 보니 밤사이 엄지 손톱만큼 초록색 대가 올라왔다. 유전자 변형 종자인가? 정말 쑥 올라왔다. 아니면 원래 그렇게 크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때부터 꽃가게에서 사들인 화초보다 파로 시선이 쏠렸고 파가 전해주는 기운을 하나의 개념으로 설명해서 간직하고 싶었다.

며칠 뒤 작은 대가 큰 대를 따라 올라오기 시작했다. 파는 가슴속에 뭐를 품고 있지 궁금했다. 감정? 생각? 밤마다 '우리 쪼록이들 잘자~'하면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이불을 덮고 외쳤다. 아침이 되면 '우리 쪼록이들 잘 잤어?'하며 애교를 부렸다. 그렇게 2개의 대가 그대로 자랄줄 알았는데 3번째 대를 끌고 올라와 갈라지기 시작했다. 파는 무언의 말을 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청년이 된 아들은 이따끔 눈에 띠는 날파리처럼 들락거릴뿐 파보다 못한 존재가 됐다. 결혼식때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라고 했는데 사오십0대가 되니 흰머리가 나서 의외로 부부가 사는 기간은 '짧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50대 이혼은 이상한게 아니다 싶다. 


파는 만세를 부르듯 두 팔 벌려 올라왔다. '어서와 안아줄게' 기세였고 옥탑방 한 켠에 운동화 끈에 다는 장식용 악세사리를 꽂아 예술의 혼을 불태웠다. 파에 대한 궁금증이 들어서 한의에서 말하는 '파'를 이용한 치료와 응용, 역사서에 있는 기록들을 찾아 봤다. 한자로 '총'인데 옛날 사람들은 파를 '청색'이라고 했다. 내가 초등학교 때 가을 운동회를 하면 전교생을 '청군, 백군'으로 두 팀으로 나눠 각종 놀이를 겨루며 점수를 매겼는데 그때 '왜 청군, 홍군이 아니라 청군 백군이라고 했을까' 의아했다. 나중에 동쪽은 청색, 서쪽은 흰색으로 정해 산성이나 읍성에 동서의 위치를 알리는 깃발 색깔로 쓰였으며 초기에 태극 무늬 색깔도 '청색과 흰색'이었는데 흰색이 빨강으로 대체됐다. 


1246년 5월 고려때다.


'독충이 비처럼 내렸다. 그 벌레는 몸이 가는 그물에 싸였으며, 쪼개면 마치 흰 털을 자르는 것 같은데, 음식에 섞여 사람의 뱃속으로 들어가거나 물어서 피부로 들어가면 사람이 죽으니, 당시에 식인충(食人蟲)이라 불렀다. 온갖 약을 써도 죽지 않더니 파의 즙을 바르자 곧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사람을 죽이는 벌레를 죽일 정도니 '파'의 위력이 대단하다. 


조선시대 날짜를 알 수 없지만 5개월된 임산부의 시신을 조사할 때 파를 쓴 기록이 있다. 나라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사건의 진상과 죽음의 실질적인 원인을 조사하는 '검험관'을 파견한다. 조사관의 이름을 알 수 없으나 그는 죽은지 40일이 된 임산부가 어떻게 어느 부위를 다치고 결정적으로 무엇 때문에 목숨을 잃었는데 법문에 기록된 단어로 죽음의 원인을 결론 짓는다. 이 기록은 '검요檢要'라는 조선시대 법령에 관한 자료에 나오는데 미국 법의학 드라마를 보는 듯 하다. 시신을 검안한 사람의 내적 고민과 피해자만큼이나 범행을 저지른 자를 불쌍하게 여겨 조심스럽게 조사하는 도리를 밝히고 있다. 이 일은 시장에서 술을 마신 형제가 한 남자를 죽인 사건인데 죽음의 원인을 '발에 차인 실인(實因)'으로 기록하고 정범이 누구인지 상부에 보고한다. 


그는 죽음의 원인을 손에 의한 것인지, 발길질에 의한 것인지, 기운이 끊어져서인지 장부가 충격을 받아서인지 고심을 하며 장부의 급소인 '신장'을 만져보는데 다른 장기가 누르고 있어 신장이 만져지지 않자 파의 흰 뿌리인 총백과 식초, 지개미(머리의 비듬)를 써본다. 조선에서 기록한 법문에 의하면 이것은 상흔이 잘 보이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총백, 식초, 지개미는 무릇 상흔을 확인할 때 비스듬하고 길고 모나고 둥근 것 등을 자세히 알아야 하니, 살갗에 작은 손상이 있으면 시신을 씻기기 전에 물을 뿌리고 총백을 찧어 짓이겨 바른 뒤에, 식초와 지게미를 덮어 붙여서 한 시간 동안을 기다렸다가 제거하고, 물을 뿌리면 상흔이 곧 나타난다' 이런 결과치를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했을까. 


파와 관련된 역사적 자료는 '지명'에서도 찾아 볼 수 있었다. 파처럼 삐죽삐죽 높은 산맥인 '총령'이라든지 '총곡'이라든지 왜놈들이 쳐들어와 식량을 빼앗아 간 곳과 동학혁명 장소 등으로 기록돼 있는 지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파처럼 높이 솟아 굴곡을 이룬 곳이 어딜까. 아무튼 너무 커서 부담스러운 대파는 음식의 작은 부분을 구성하는 요소에서 법의학 도구, 치료제, 사물을 설명하는 도구 등으로 큰 족적을 남긴 소듕한 분이구나 의미를 둬 본다. 파의 마지막이 궁금하다. 시들까. 꽃이 필까. 방 구석에서 말라 버릴까. 얼마동안 반려화초로 곁에 계실 파를 누구나 한번쯤 키워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태어나기전부터 만들어진 개념의 변화와 재구성의 묘미를 느껴보시라고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은 부족한 사람들과 만나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