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쇼 Jul 06. 2023

맨발걷기-소나무

#소나무 #바람 #발달장애 #교회 #성소수자 #군대 #공익근무요원

아들에게 영장이 나왔다. 신체검사는 2등급이지만 '중졸'이라 공익근무요원으로 분류돼서 호출(?)을 기다린지 2년이 됐다. 떠도는 풍문에 의하면 '중졸'은 '면제'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얼마나 문제가 많으면 '고등학교 졸업'도 못했냐는 것이다. '중졸' 요원들은 요양보호시설이나 동사무소, 공공기관에서 데리고 일하기가 벅차다는 것이다. 아들에게 어디로 배치 받아냐고 물었다. '장애인활동보조시설'이라는 것이다. 나는 순간 무릎을 쳤다. 아 이 무슨 조화일까. 나는 그저 욱하는 마음에 기도를 한 것 뿐인데 말이다.


맨발걷기를 하기 위해 공원으로 갔다. 천천히 걸으며 생각했다. 아니 느리게 걸을 수 밖에 없다. 발바닥에 전해오는 자잘한 통증을 때문에 평소 속도대로 걸을 수 없다. 운동도 느린 운동이 어렵듯이 속도전으로 달리던 걸음과 신체를 억지로 늦춰야 하기 때문에 어색하다. 느리게 걷는게 쉬울 것 같은데 생각과 마음이 앞질러 가던 습관과 버릇으로 느리면 뭔가 모자르고 부족해 보인다. 맨발걷기를 하면서 발달장애 아이를 둔 교회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아~ 우리 아들 영장 나왔어. 장애인 시설로 배치 받았대!"

"우와 언니 대박!"

"야 나 소름끼친다. 어디야? 점심 먹으면서 만나서 얘기하자"


아이 셋을 둔 그녀는 막내딸이 발달장애 3급 진단을 받았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는 2년 반만에 한글을 뗐다. 사과는 알지만 '풋사과'는 이해를 못한다. 그것을 설명하고 훈련하는 언어치료를 하고 있다. 웃는 얼굴, 우는 얼굴, 화난 얼굴, 짜증난 얼굴을 그림으로 그려 외워야 한다. 엘레베이터에서 대머리인 사람을 만나면 '대머리다!'하고 외친다. 배가 나온 뚱뚱한 사람을 보면 '뭐 먹고 그렇게 배가 나왔냐, 배속에 뭐가 있냐' 난감한 질문을 한다. 조금 받아주면 막대기를 갖고 와서 '배를 찌른다'. 머리속으로 하고 싶지만 선뜻 해서는 안될 행동을 구분하지 못해 엄마는 설명하고 생각하도록 지속적으로 가르쳐줘야 한다. 1학년때는 모르지만 3학년이 되자 같은반 여자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왕따'시켰다. 대화에 어려움이 있고 놀이의 진전이 없다보니 의도하지 않게 외톨이가 됐다. 그녀는 워낙 유쾌하고 씩씩해서 당황스럽지만 나름대로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복되고 소중하게 만들고 있다.


맨발은 '명상'이 된다. 사람들이 700미터 트랙을 한 바퀴 도는 동안 100미터도 못간다. 머리 신경이 발로 내려가고 주위에 나무가지와 새소리, 바람을 느끼게 된다. 머리에 새 집을 짓고 오만가지 생각의 알을 낳고 품어서 키우는 일을 멈추게 된다. 커다란 원피스 안으로 스며드는 건조한 바람의 유쾌함, 인간의 언어가 아닌 조류의 수다소리, 바람에 부딪히는 솔가지의 춤을 안볼래야 안 볼 수가 없다. 오늘은 솔가지가 허공에 흔들려 초록색 물결을 만드는 모습을 머리속에 장착하기로 했다. 


최근에 내가 다니는 교회에 '전도사' 한 분을 초빙했다. 이름은 여자인데 남자 한복을 입어서 유아반과 초등반 아이들이 '남자냐, 여자냐' 물었을 때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어 생물학적 성보다는 그저 단 한 명의 '사람'으로 존중해주길 바란다며 교회 밴드에 올렸다. 인지와 지능에 어려움이 있는 한 성도는 '남자 전도사' 아니냐고 할 정도로 언뜻보면 '남자'지만 목소리와 이름은 여자이다. 평소에 성소수자 단체에서 일을 하고 '여자'분과 산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었다. 교회에는 자신을 양성애자로 밝힌 청년이 있다. 나는 그 청년의 성정체성에 무게 중심을 두지 않고 대했다. 누가 남자와 섹스를 하든, 여자와 섹스를 하든, 프라다를 좋아하든, 구찌를 좋아하든, 강아지를 기르든, 고양이를 키우든 성인이 된 사람들이 각자의 판단을 하며 살아가는데 내가 '싫어하는 행위'라고 해서 그것을 배척하고 비난하지 않는 상식 정도는 지니고 살아간다. 서울에서 퀴어축제를 하거나 노동 집회를 하거나 태극기 집회를 하거나 그분들의 생각과 신념으로 하는 일에 '하는구나' 정도로 받아 들인다. 단지 우리가 쓰는 수돗물 옆에 농약 살포하는 골프장이 들어선다고 했을때는 반대 집회를 하고 항의를 하는 나약한 존재이다.


이런 생각으로 살다가 아이들을 담당하는 사람이 그분이 됐을때 우려가 됐다.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만 그분과 유대관계를 맺으며 시간이 쌓이다 보면 혹시나 이성보다는 동성에 관심을 두고 연애를 하는 아이들이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나의 우려는 주변 사람들을 피로하고 피곤하게 만들었다. 당신 레즈비언이냐? 라고 묻는 것은 이성애자에게 '너 남자랑 섹스하냐?'고 묻는것과 같다며 했다. 맞는 말이었다. 물을 수 없으니 의구심과 커져갔고 근심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장애를 둔 엄마와 체험 학습을 가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목사님께 얘기하자 '성소수자들도 그렇다'고 동일시 하는 말에 화가 났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발달장애 아이들이 누군가 자신을 욕할 때 댓거리 하지 못하고 '부당함에 대한 항변'의 능력이 없어 안타까운 것을 '성소수자'와 같은 반열에서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지는 의문이었다. 


최근 퀴어축제에서 동성애자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해준 이동환 목사는 말했다. 


"성소수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편견과 낙인 가운데 살아가는 분들이잖아요?"


누가? 어떤게? 구체적으로 묻고 싶었다. 퀴어축제를 혐오하며 반대하는 기독교 신자들? 일부가 그렇게 행동한 것이지 '사회 전체'는 아니다. '일반화의 오류'이다. '사회'라고 선언하고 결론 내리는 순간 존중하고 인정하던 사람까지 편견과 낙인을 찍은 사람이 된다. 성정체성을 묻거나 우려를 표명하는 것은 아직 여러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어린 아이들의 교육 담당자로 오는게 적절한지 생각을 나눠보고자 했다. 머리에 성소수자 전도사에 대한 우려의 새집을 짓다보니 그분이 읽어주는 동화책이 내포하는 저의가 순수하게 보이지 않아서 교교회를 점점 멀리하게 됐다. 주변 지인들은 나의 이런 생각과 우려에 어떻게 네가 그런 생각을 하냐고 저항을 받고 더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나에게 대안은 차라리 '장애가정'이 많이 와서 교회가 그쪽으로 슬로건을 내걸고 종교단체가 해야할 일은 누군가의 성정체성을 옹호하는게 아니라 폭넓고 거시적으로 생계의 어려움, 신체 활동의 제약과 고통을 받는 쪽으로 가야하는게 아니냐며 하나님께 기도 아닌 기도를 했다. 그랬더니 그 다음주 전동휠체어를 타신 장애인 한 분이 교회를 방문하고 자폐증을 앓고 있는 자녀를 둔 분이 새로 교회에 왔다. 막상 그분들과 지내다 보니 예배 시간에 돌발적으로 행동하는 아이 때문에 당황하고 좌식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전동휠체어가 그대로 들어와 '위생'이 염려가 돼서 긴장을 하는 나를 만났다. 나를! 내 안에 얄팍함을! 내 안에 구분짓고 분류하는 것에 익숙한 마음을!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는게 쉽지 않음을, 필터링 되고 걸러진 사람들과 살아가는 것에 노련한 나에게 초록색 소나무 가지가 바람에 요란한 춤을 추면서 흔들리는 모습을 얹어 놓기로 했다. 


나도 숨 좀 돌리자.

작가의 이전글 맨발걷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