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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Jul 07. 2023

맨발걷기-줄행랑

#피하는사람 #도망 #새벽 #아침걷기 #맨발 

"아~ 잘 잤다~~~~!"


두 발과 다리를 벌려 기지개를 켜고 핸드폰을 켰다. 잠들기전 '와이파이'를 꺼놓는 버릇을 가졌다. 내 귀는 팔랑귀다. 5G가 몸의 주파수를 교란시켜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끄고 잔다. 원피스 하나 걸치고 공원을 향했다. 오늘은 오빠의 기일이다. 작년 이맘 때 오산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로 믿기 힘든 소식을 접했다. 마지막으로 통화한게 불과 한두달 전이었는데 나는 왜 감지를 하지 못했을까. 울고 싶어도 참고 되도록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다른 곳에 집중했다. 어차피 우리 모두 시한부 아닌가. 언젠가 갈 것을. 전날 제사 준비를 해놨다. 납골당에 가서 제만 올리면 된다. 


오늘도 짙은 초록의 솔가지와 향을 만나러 공원 옆 언덕길로 올랐다. 맨발로 잔디밭의 거친 간지러움을 느끼며 상쾌한 바람 목욕을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한 찰라 어떤 아저씨의 뒷 모습을 보고 가던길 반대쪽으로 줄행랑을 쳤다. 


'아 저 아저씨랑 마주치면 안되는데...'


그분은 내가 맨발로 걷는 언덕 옆에 개인 땅을 소유한 분이다. 그곳은 버려져 있어서 근처 아줌마, 아저씨들이 무단으로 경작했다. 들깨며 고추 감자, 고구마 같은 구황작물이 심어져 있어서 보기가 좋았다. 계란 후라이를 닮은 작은 망초대 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발 밑에서는 개미가 복숭아뼈로 올라타 간지러웠다. 가지런히 정돈된 이랑과 고랑 사이로 얼마나 많은 미생물과 벌레, 지렁이들이 살고 있을까. 그곳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체크무늬 남방에 반바지를 입은 60대 초중반의 중년 남자분이 호의를 베풀었다.


"여기 밭에 있는 상추 따다 먹어요"


"아 네 괜찮습니다. 저도 하고 있는데가 있어서요"


말문이 트이자마자 '5단지에 사는 어떤 나쁜놈'을 욕하기 시작했다. 그놈이 자기 밭에 무단으로 경작해서 쫓아냈더니 바로 옆 공원부지를 개간해 '마늘'을 심었다는 것이다. 자기가 시청에 민원을 넣고 했는데 어떻게 안됐다며 '나쁜 놈'임을 '양심이 없는 놈'임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아 그러셨구나. 그런놈은 광장에서 시위하는 윤석열 지지자들과 똑같다며 나라가 이 모양이 된 것을 안타까워 했다. 네네 했더니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그래서 민주당이 집권을 해야 한다'고 침을 튀겼다. 그칠것 같지 않았다. 특정 정당에 대한 욕설과 지지가 반복되는 연설이었다. 나는 안되겠다 싶어 몸을 뒤로 빼며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내 등뒤에서 들리는 계속되는 방송은 끌 수가 없었다. 


그 뒤로 한두번 마주쳤는데 빠르게 지나치며 대충 인사를 나눴다. 다소 일찍 나온 아침 산책에 그분을 마주칠줄 몰랐다.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걸으며 내 몸은 소듕하니까 앞으로 '좋은 것, 맑은 것'만 몸 속에 넣어주기로 다짐했다. 어떤게 있을까? 산책말고 그림? 불교 공부? 등산? 몸에 좋은 것들을 떠올렸다. 국영수보다는 '음미체'에 가까운 것들이다. 맨발걷기 코스가 길지 않아서 방향을 틀어 '5단지를 욕하던 분' 쪽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분이 일을 마치고 가셨길 바랬는데 맞은편에서 시장 가방 하나를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나무를 사이에 두고 그분을 피했다.


"아~ 맨발걷기 하시네요!, 저기 5단지 놈이 그런거 잔디를 까니까 좋죠?"


"아 네~~"


화면을 빨리감기 누르듯 못 본척, 못 들은척 들었지만 희미한 대꾸로 거절 의사를 표하고 '5단지 놈'이 파놓은 영역에 공원 잔디를 뜯어와 덮은게 보였다. 잔디를 파온 곳은 근처 공원 언덕 같았다. 흙이 드러난 곳은 경사자져서 비가 오면 구멍이 넓어졌다. 전국에서 한창 마늘을 수확하던 6월이었다. 무단으로 경작하던 곳에서 쫒겨나 공원 일부 땅에 마늘을 심은 '5단지 그놈'을 봤다.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다 은퇴한 분 같았다. 쭈구리고 앉아 마늘을 캐고 있었는데 이른 시기에 캐는데다 불법으로 경작하니 여유로움 보다는 도굴하는 사람처럼 서둘렀다. 마늘은 실하지 않았다. 실물로 마주한 '5단지 그놈'에게 무단 점거 당한 땅은 방치된 곳이었다. 누군가 조금씩 밭으로 만들어 넓어지고 퍼져서 졸지에 그럴듯한 주말 농장 텃밭이 됐다. 그 일부를 갖고 있던 민주당 지지자 아저씨는 사방에 '무단경작 금지' 팻말을 너덧개 세워 사람들을 쫓아냈다. '5단지' 사는 놈이 끝까지 버텼던 모양이다. 


5단지는 화정에서도 가장 큰 평수에 쾌적한 환경을 갖춘 곳이다. 5단지 정도에 살면서 남의 땅에 경작하거나 공원 부지를 훼손하면서까지 밭을 일구는 것에 노여움은 마늘 농사를 끝으로 일단락이 됐다. 손바닥만한 곳 하나 경작할 땅 없이 시멘트로 도배된 깔끔한 인도에 다라이며 버려진 화분에 고추를 심고 꽃을 가꾸는 곳이 있다. 대림오토바이 가게는 귀신이 나올것 같은 어두컴컴한데 화원에서 보기 힘든 꽃들과 화초들을 가꿔놔 발길을 머물게 해서 주인 아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그 앞에 풀무원 녹즙 대리점은 거대한 플라스틱 드럼통에 상추를 심어 '눈으로만 봐주세요'라는 푯말까지 붙였다. 다세대 건물 입구에 정리되지 않은 꽃밭은 누추하고 품위가 없어 보이지만 벌레와 새들, 이따금 벌들까지 쉬어가고 먹을 것을 구하는 터전이 된다.


작년 이맘 때 원일모를 우울증에 맨발걷기를 시작 했었다. 그 울적한 마음이 오빠한테 왔다는 것을 알고 가족, 형제자매, 부모, 자식 모두 보이지 않는 파장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요양원에 계신 엄마는 그날따라 오빠의 안부를 물었다. 외국에 일하러 나갔다고 둘러대고 장례를 치루며 오열했다. 오늘은 마음이 편안하다. 아마 좋은 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것 같다. 우리 모두 시한부이다. 생을 다하고 만나게 되면 왜 그랬냐고 투성한 뒤 오빠 최고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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