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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Jul 08. 2023

맨발걷기-우울할 결심

#우울 #웃음 #감정 #만세 #생리

"만세~ 만세~ 만세~"


아침이다. 눈을 떴다. 누운 상태에서 팔을 머리 위로 넘겨 만세를 했다. 사지를 찢는 형벌처럼 팔, 다리를 잡아 당겨 늘어뜨렸다. 개운했다. 원피스를 뒤집어 쓰고 공원으로 나가니 토요일이라 '남자들'이 눈에 띄었다. 오늘도 '5단지 사는 놈'을 욕하는 장바구니 든 아저씨를 만날까 염려됐다. 왜 그 분이 거북스러울까 생각해 보면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분처럼 듣고 싶지 않은 얘기를 들어서 같다. 5단지에 사는 놈에 대한 미움과 증오는 '민주당천국, 국힘당지옥'으로 연결돼 만만한 사람을 붙들고 쏟아내야 하는 '나와 닮은' 모습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행이 '5단지에 사는 놈'이 무단으로 경작하던 마늘밭은 근처 공원에서 무단으로 떼온 초록 잔디가 사각형으로 드문 드문 심어져 자리를 잡고 있다. 장바구니 남자의 개인소유 땅에는 '경작 금지, 고발조치'의 노란색 공사판 팻말 주위로 덮수룩하게 '명이나물'이 과일 나무 모종처럼 크게 자라고 있었다. '풀'이 곧 '나무'이고 나무가 풀에서 시작했다는 근거를 댈 수 있는 장면이다.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불편했다. 하늘이 회색빛 장막을 덮은 것처럼 흐려서 그런가? 갑갑하다. 푸른빛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고 짱짱한 빛이 내리쬐는 맑으면 좋을텐데 어떻게 우울에서 벗어나지? 억지로 바꿔 보려고 묘안을 생각하다가 그래 오늘은 그냥 '우울모드'로 가자 결심했는데 맞은편에서 나처럼 맨발걷기하는 동지가 오고 있었다. 누런 털 달린 진돗개는 목줄이 매고 땅 바닥을 보며 걷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화들짝 입꼬리가 올라갔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예쁘고 말을 건내고 싶은 개 종족을 무조건 응원한다. 아 나 오늘 우울하게 지내기로 했는데 다시 입꼬리를 내리며 우울한 기분을 느끼는데 노래가 나왔다


'왜 망설이고 있나요? 뒤돌아 보지 마세요.... 그대 향한 내 마음 이렇게도 서성이는데 왜 망설이고 있나요? 뒤돌아보지 말아요. 우리 헤어졌던 날보다 만날 더욱 서로 많은데' 


흥얼흥얼 변집섭의 '그대 내게 다시'가 자꾸만 나와서 '안돼!' 하고 멈췄다. 나 오늘 우울해지기로 했단 말이지. 이런 감정 조절 하나 제대로 못하면 큰 일을 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심은 3분도 못갔다. 방향을 바꿔 신발을 벗어 놓은 '5단지 사는 놈'이 경작한 곳으로 향했다. 경사진 언덕에는 꼬마 남자애와 할머니가 바람을 맞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아이의 왼손에 자기 상체 반만한 꽃을 쥐고 있었다. 입술은 도톰했다. 눈은 검은색 펜슬로 또렷하게 그린 타원형으로 진했다. 반바지에 파란색 크록스 신발을 신었다. 


"안녕~"


"에....안.녕...하..세요"


어떨결에 인사를 받은 아이는 할머니를 한번 보고 나를 보더니 우물우물 어렵게 인사를 했다.


"꽃이네~~~"


하고 관심을 보이자 조금 놀라며 등뒤로 손을 빼려고 했다. 나는 최대한 적의가 없다는 의사를 전달하려 애썼다. '꽃이 이쁘다는 둥 몇살이냐는 둥 기특하다는 둥' 뭐가? 오늘 처음 본 아이가 뭘 했다고 기특한지 말해 놓고도 이상했다. 우울해지기로 결심했는데 마음이 상승 기류를 탔다. 아들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지 엄마 갖다 준다고 하드라구"


옆에 있던 할머니가 거들었다. 나는 놀란 눈을 하며 '어머~ 세상에 엄마 갖다 주려고? 대단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멋지다'며 온갖 아양을 떨었다. '몇 살이냐'고 물으니 '7살'이라고 했다. 내년에 학교 가겠구나 내 아들이 7살이었을때가 생각났다. 엄마 밖에 모르고 앞니를 빼느라 실갱이를 하고 온갖 체험에 다니며 여행을 했다. 너는 평생 할 효도를 어렸을 때 다 했다고 말한탓에 지금은 돈 필요하거나 먹을 게 없을 때 자동차 과태료를 낼 때나 찾는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할머니와 담소를 나눴다. 중요하거나 필요한 얘기도 아니었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기억할 필요도 없는 쓰잘데기 없는 얘기였다. 집으로 가자는 할머니의 재촉에 아이와 인사를 나눴다. '잘가~~~' 최대한 다정하고 다감하게 너가 세상에서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인지 확인시켜주고 싶었다. 


잠시 멈춰서 길 건너를 바라봤다. 고기집 담장 아래 '자귀나무 꽃'이 눈에 띄었다. 보라색과 분홍빛의 가녀린 꽃잎들이 비, 바람 많은 7월을 장식하고 있었다. 은행나무에는 파란색 은행이 대롱대롱 암벽을 탄 것처럼 가지마다 매달려 있었다. 결심은 어디로 갔을까. 웃지 않고 침울하게 있으려고 했는데 무장해제 됐다. 다시 맨발걷기를 하려고 아이와 할머니가 돌아가는 길을 봤다.  꽃을 든 손에 크록스 신발을 들고 맨발로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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