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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Jul 09. 2023

맨발걷기-양말 너머

#양말 #자식 #엄마 #남편 #주부 #여성 #청결 #청소 #빨래 #결혼


"언니! 그거 고치셔야 돼요! 그러시면 안돼욧! 아~ 정말 나도 그건 싫어~~"


그녀는 흥분을 하며 야단법썩을 떨었다. 벌레 보듯이 알~옘병. 유난히 말이다. 30대 딸과 사는 언니가 양말을 식탁 의자에 벗어놔 잔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그녀는 '딸의 말을 새겨 들으라' 강조 했다. 그런 행동은 고치라고 말이다. 딸의 구박(?)을 들은 언니의 죄목은 이러했다.


인덕션 위를 닦은 휴지를  옆에 뒀다. 쓰레기통에 바로 버리지 않았다. 의자 밑에서 버려진 이쑤시개를 두개나 발견해 딸이 버렸다. 신던 양말을 아무렇게 벗어 식탁 의자에 놓았다. 어느날 서른 초반의 이 언니를 불러 지적 및 취조를 당해 우리에게 그 하소연을 한 것이다. 딸의 말은 ' 두번 일을 하게 만드냐' 것이다.대낮부터 교회에서 와인을 마시고 나타나 언니는 몸도 발음도 살짝 꼬여 '꽐라' 상태였다. 딸과 살며 눈치를 보는 고충을 털어놨다.


우리는 언니의 그런 습관을 고쳐야 한다며 딸의 손을 들어줬다


"그래? 아이구 내가 잘못했네. 알았어~ 잘못했다구"


언니는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혀 엉덩이를 뒤로 뺐다. 그녀는 딸보다 더 크게 목에 핏대를 세우며 자기집 남자들이 그러면 가만 안둔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딸의 까탈스러움에 대해 공감하며 언니가 아무렇게 쓰레기를 집안 곳곳에 버린 것을 타박하며 '행동 교정' 명했다. 나도 양말을 아무데나 벗어 놓기 때문에 조용히 듣고 있었다. 같이 사는 이십대 초반 아들이 ' 짓거리' 한다. 잔소리를 한다고 바뀌지 않기 때문에 냅두는 편이다.


언니에게 행동 교정을 명한 그녀는 남편이나 아들이 그러는게 “너어무우나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들이 식탁위에 벗어둔 적도 있는  같다. 내가 아무 생각없이 올려둔 적도 있는  같은데 그녀는 토끼처럼 놀란 눈을 뜨며 뭐라구? 식탁위에? 라며 ~~ 소리를 냈다. 너무 했나 싶어서 아닌가? 그건 아닌것 같다고 번복했다. 우리는 “젊은애들의  새겨 듣기로 하고 헤어졌다. 양말을 벗어서 세탁기에 바로 바로 넣고 휴지를 아무데나 두지 않고 쓰레기통에  즉각 버리기로 말이다.


“야 있잖아 어제 저녁에 말이야”

“어”


다음날 새벽 맨발걷기를 하려고 '행동교정'을 명한 그녀가 입을 뗐다. 숲 속 산책길 너른 공터에 1인용 낚시 의자를 펴고 앉아 에티오피아 분쇄된 커피를 필터에 내리고 있었다. 비가 내렸다. 하늘은 레이어드된 나무들의 잎사귀들이 우산이 됐다. 빗방울이 소박하게 흩어져 맞을 만 했다. 지나가던 곰인형처럼 생긴 남자분이 웃으면서 '저 아래서부터 커피 냄새가 나더라구요~ 하하~' 하며 귀여운 표정을 지었다. '어머 그래요? 어쩌나 담에는 여유있게 가져와야 겠네요. 드릴게 없네요 하하~' 실행 불가능한 인사를 나눴다. 그녀가 운을 뗐다.


"어제 산책 끝나고 집에 갔더니 식탁 의자에 '하얀 양말'이 있는거야.”


어제 그녀가 유난스레 그런 잘못된 습관은 고쳐야 한다고 그랬던게 기억났다.


“그래서 '박! 봉! 석!'하고 남편을 불렀더니 '어어 왜?' 하며 나오더라구 '이거 양말 뭐야?'했더니 남편이 '양말을 집어 들면서 내꺼 아닌데?' 하는거야. 그래서 봤다니 내꺼인거 있지?"


나는 숲 속이 떠나갈 듯이 배꼽을 잡고 허리를 제끼며 웃었다. 뭐지? 통쾌하기도 하고 고소하기도 한 이 헐렁함. 항상 똑부러지고 똑떨어지고 바지런한 그녀의 빈 구석을 봐서 나와 별다르지 않다는 안도감인가? 어제 그렇게 '딸과 사는 언니가  양말을 아무데나 벗어 놓은 것을 야무지게 잔소리'하면서 힘주어 얘기하더니 아 웃겨~ 남들에게 뭐라고 한게 다 자기 얘기가 된다


딸에게 잔소리 폭탄을 당한 언니는 한갑을 넘었다. 육십 평생을 살아오며 혼자서 자식 둘을 키웠다. 먹고 사느라 생계형 자격증이 많은 언니의 발 모양이 떠올랐다. 엄지 발가락이 안쪽으로 휜 '무지외반증'이다. 신장 백오십 조금 넘는 키에 가슴은 E컵으로 컸다. 상체의 반을 차지한다. 한번은 북한산 등반을 셋이서 하는데 하늘의 태양빛이 언니의 주황색 등산 자켓 앞 가슴을 찬란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깔깔대고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왜?' 하는 표정을 지으며 웃는 이유를 궁금해 했다. 내가 언니의 가슴을 부러워할 때마다 언니는 하나도 도움이 안된다며 큰 가슴의 괴로움을 토로했다. 나와 그녀는 '뽕브라의 괴로움을 아시냐'며 응수했다. 언니는 몸무게를 잴 때 가슴 두짝 무게인 2kg정도 빼야 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언니의 발은 '버선발'처럼 앞부분이 넓었다. 몸무게를 지탱하느라, 아이 둘을 대학 보내고 먹고 사느라 뛰어다니고 힘쓰고 집안일까지 그 모든 무게를 지탱한 발이 떠올랐다.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며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발이 앙증맞아 눈을 뗄 수 없었다. 틈날때마다 발을 주물러주며 혈액 순환을 시켰다. 지금은 뒷꿈치도 손 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커져 버린 아들의 발은 열시간씩 알바를 하느라 발 냄새가 심했다. 남편의 발은 12시간 이상을 책상에 앉아 프로그램을 짜며 신발에 갇혀 있었다. 엄마의 발은 미용실을 하느라 딱딱한 바닥에 서서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가느다란 몸을 세우고 있었다. 오빠의 발도 하루종일 컴퓨터 아래서 빛 한번 보지 못한채 구두에 가려져 있었다.


양말에게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혀 엉덩이를 뒤로 빼' 감사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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