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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Jul 14. 2023

맨발걷기-기울어지기

#비 #공원 #운동 #맨발 #배수 #감정 #공황장애

비가 와서 망설였다. 갈까? 말까? 에라이~ 모르겠다.

우산을 들고 나섰다. 공원에는 비가 내려 벽돌 바닥 사이로 선명하게 젖어 있었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 ' 보였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렀다. 움푹 패인 곳에 모여 차오르면  낮은데로 흘렀다. 공원을 만들때 비가  경우를 대비해 '배수로' 염두해 설계 했구나 싶다. 캠핑가서 텐트를   물이 흐르도록 텐트 주변에 땅을 팠다. 봄이 되면 논두렁, 밭두렁에 도랑을 팠다.  다듬어진 공원도 그랬구나. 최초로 공원을 설계하고 그대로 구현해  사람들의 '마음' 보였다.


사람 마음도 기울어져 있어야 하나? 좋고 싫은 감정이 일어서면 밖으로 흘려 보내게 말이다. 잘 다려진 도로와 고른 바닥, 네모 반듯한 상자를 쌓은 아파트와 빌라, 다세대, 오피스텔, 잘 정돈된 도로에서 직선과 직각속에서만 살다보니 멈추고 돌아가고 속도를 줄이지 않고 가속으로 '열.심.히' 산다. 하루의 시간을 돈 쓰듯 빈틈없이 쓴다. 내일로 저축되지 않는 시간속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왜 그렇게 가열차게 몰두했을까.


"공황장애가 와서...치료 받고 있어"


어느날 존경하는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두뇌가 좋아 말발이 청산유수고 공부만 한 그녀다. 지금은 은퇴해 시간 강사만 하는데 '공항장애'가 왔다고 한다. 다소 기운 없는 목소리로 내 안부를 물었다. 어쩌냐 하며 한 숨을 쉬었다. 아픈 남편, 갑자기 자살한 오빠, 요양원에 계신 엄마, 뭐 먹고 살지 불투명한 나. 비교적 평탄하게 가정을 꾸린 그녀는 언제나 생글생글 눈웃음치며 위풍당당 했었다. 나이가 들고 몸이 쇠약해져 마음에 병이 찾아와 쉬라고, 그만 멈추라고 신호를 보낸게 아닐까.


쏟아진 빗물은 하수구로 모여 지하로 흘러 내렸다. 강으로 모여 바다로 흘러 가겠지. 글쓰기 작업방인 초록색  방수포를 바른 옥탑도 비가 오면 물 흐르는 방향이 보인다. 건물 가운데는 눈에 띄지 않게 높고 미세한 기울기로 모서리로 흘러 배수통에 모이게 했다. 미장이라고 하든가? 경사지게 시멘트 바른 기술에 찬사를 보낸다. 차도도 가운데 중앙선이 살짝 높다고 한다.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비가 오면 그 위력을 발휘한다. 북경에 갔을 때 큰 비가 내린적이 있다. 그곳은 1년에 한번 비나 눈이 올까말까 하다. 사막지대다. 도시를 건설하면서 '배수로'를 만들지 않아 비가 내리면 차도와 인도 사방이 물에 잠긴다. 그곳 화장실도 마찬가지다. 민박을 하던 집에서 샤워를 하면 물이 빠져 나가지 않아 바닥에 차 있어 손으로 하수구쪽으로 밀었던 적이 있다.


평소에 사람이 많아서 볼 수 없었던 공원은 고요하고 차분했다. 딱딱 소리를 내던 게이트볼 장의 알록달록한 의복의 어르신들이 퇴장했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다 배설물을 치우느라 허리를 숙인 이들이 없다. 헉헉 소리를 내며 전속력으로 달리던 2배속 청년이 보이지 않는다. 축구를 하며 소란스러운 아이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령과 역기를 들어 올리며 근력을 키우는 아저씨들,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보는 어르신들의 북적임이 지워졌다. 시야가 탁 트이고 청량감이 전해졌다.


보이지 않는 기울기와 경사를 만드는 연습을 배워보지 못했다. 늘 바쁘게 달려왔다. 하루를 두 배속으로 살다보니 미래 시간과 체력을 빌려다 쓴 것 같다. 솔가지가 비에 젖어 초록빛 물기운을 뿜었다. 먼지와 소음으로 지친 몸을 세차한 기분이다. 물기를 빠르게 떨궈야 하는 침엽수의 바늘같은 줄기끝마다 동그란 물방울이 달렸다. 서두르지 않고 기울어진 마음으로 삐딱이가 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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