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람>>(홍은전 지음, 봄날의책)을 읽고
그때는 딸아이가 조금씩 말을 시작하는 시기였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밤에 잠이 들 때까지, 아이는 아장아장 쉬지 않고 걸었고 무엇이든 궁금해했으며 궁금한 모든 걸 손으로 가리키며 묻곤 했다.
“이건 뭐야? 그럼 저건 뭐야? 응?”
한 아이의 에너지를 감당해 내려면 얼마큼의 체력과 인내심이 비축되어야 할까. 마음으로는 아이의 호기심에 응하고 상상력을 북돋아 주고 싶다고, 그럴 수 있다고 다짐했다. 그러한 엄마가 되어 아이의 세계를 무한히 확장해 주고 창의적이고 열린 사람으로 자라게 해주겠노라고. 그러나 어쩐 일인지 마음과 다르게 나는 쉽게 하품이 났고 금세 피로해졌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아이의 질문을 ‘어디에서 끊어 내야 티 안 나고 자연스러울까’ 생각하면서 호시탐탐 그 틈만을 엿보았다.
그때는, ‘둘째를 갖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 ‘동생이 생기면 둘이 논다’ ‘잠깐만 고생하면 평생 네가 편하다’라는 집안 어른들의 권유를 들은 시기이기도 했다.
어떤 날은 그 말들이 ‘지혜로운 대안’처럼 여겨져 잠시 솔깃해지기도 하였지만 금세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아이의 에너지를 온전히 감당하기에 나 한 사람으로는 어림도 없는 상황에서, 또 다른 아이가 생긴다면…?
남편은 이러나저러나 지금과 다를 바 없을 것이고, 어른들은 잠깐씩 예뻐하는 것이 고작일 텐데, 정작 내가 맞닥뜨려야 할 에너지는 몇 배쯤 더 커질까. 겁이 났다. 지금 이 아이의 에너지라도 제대로 마주하고 싶었다. 나는 어떠한 책임감이나 어떠한 역할에 충실하고자 아이를 ‘낳아 주는’ 일 말고, 지금 나의 아이 하나를 ‘기르는’ 일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정적인 계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더는 “이건 뭐야? 저건 뭐야?” 쉬지 않고 커져 가는 아이의 물음들을 대충 넘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엄마, 저거 뭐야?”
그날 아이의 손가락이 가리킨 ‘것’은 어떤, 사람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걷고 있는 중에 아이가 묻기에 또 뭘까, 아이스크림 가게라도 새로 생겼나, 솜사탕이라도 파나, 싶어 대수롭지 않게 쳐다보았더니, 사람이 있었다.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사람이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당시 아이의 말을 듣고 난 내가 어떤 행동을 먼저 했는지 가물가물하다. 아이의 손을 부드럽게 내려 손을 잡아 주었던가. 아니면 “에이, 뭐긴 뭐야, 사람이잖아.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안 되는 거야~”라고 서둘러 아이에게 말해 주었던가. 그도 아니면 짧은 순간이지만 그 사람을 바라보면서 ‘장애가 있는 걸까, 아니면 사고로 잠깐 다리를 다친 걸까’ 갸우뚱했던가.
행위의 순서는 명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아마도 아이에게 저 세 가지 모두를 했을 것이고 그런 내 행동이 괜찮았는지, 혹시 좀 더 나은, 지혜로운 방법은 없었는지 고민도 조금 했을 것이다. ‘올바름’과 ‘예의’를 강박적으로 검열하는 성격의 나는 아이에게 오히려 역효과 날까 우려될 정도로, 가족의 행동과 말투에 신경을 무척 썼다. 행여 아이가 밖에서 ‘집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느낌을 줄까 봐. 그 신경이 진정 아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일하는 엄마의 아이라는 사회적 편견과 타인의 시선을 향하는지(저 엄마는 일하느라 바빠서 애한테 별로 신경을 안 쓴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서) 자신할 수 없었지만.
아이에게 세상을 가르쳐 주는 일은 생각보다도 훨씬 더 많은 에너지와 인내와 공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날마다 실감하는 나날이었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흘렀고 아이는 어느덧 초등학생. 아장아장 걸으며 세상을 향한 모든 궁금증을 엄마에게 내비쳤던 시기와 달리 이제 아이는 하루 동안 나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며 세상을 알아 간다. ‘핑크는 여자 색, 파랑은 남자색’이라고 알려 준 어린이집 시절을 지났고 부모 참여 수업이나 아빠와의 특별 이벤트 등을 주기적으로 마련하여 ‘엄마 아빠 중 한 사람이 없으면 정상 가족이 아닐 수 있음’을 자연스레 익히도록 한 유치원 시절을 지났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남자 이름이 1번, 남자애들이 먼저 출석부에 나오는’ 현상을 마주했고 ‘발레는 여자아이들이 배우는 운동이고, 축구는 남자애들의 놀이’라는 사회의 기준을 아이는 하나둘 알아갔다.
하고 싶은 마음,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를 솔직히 손들고 말하기보다 그냥 안으로 삼키고, 친구들이 웃으면 ‘피식’ 따라 웃으며 다른 누구를 조롱하고 같이 흉보는 게 즐거운 집단 문화도 배워 나간다. 얼굴이 못생기면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감이 되고, 몸 어디가 불편하면 ‘바보’라 통하며, 장래희망보다 지금 너는 ‘몇 평에 사는지, 아빠 차가 어느 브랜드인지’ 공유하는 세상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아이에게, ‘올바름’과 ‘예의’에의 내 강박은 그러므로 더욱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유난함에 그칠 뿐인 자기만족인 것일까.
“저기 저, 까만색!” “어! 진짜 꺼멓지?”
아이 친구네 집에 놀러 갔던 날, 함께 영화 <원더>를 보다가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인 담임선생님을 가리킬 때 아이들이 이름 대신 ‘알기 쉽게’ 까만색으로 칭하는 걸 보았다. 가만히 있으려다가 결국 나는 “에이, 까만색이 뭐야~ 다른 사람들은 이름으로 부르면서 저 사람한테만 그러면 돼?” 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혹시 일하는 엄마가 잘난 척한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마음을 종종거렸으나 다행히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다. 서로 다른 차이를 차별이 아닌 다름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풀어간다고 느꼈다. 이제 제법 알 것 아는 초등학생들이 함께 보기에 더없이 좋은 콘텐츠라는 생각도. 내가 놀란 것은 그다음이었다.
“얼마나 다행이에요.”
식탁에 앉아 수다를 나누느라 엄마들은 영화를 보는 둥 마는 둥 했는데 그중 한 엄마의 이야기였다.
“우리 아이들요, 엄청 속도 썩이고 힘들게도 하지만 이게 다 정상이고 보통이잖아요. 그냥 평범하게, 건강하고, 어디 크게 안 좋거나 아픈 데 없이 자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이게 귀해요.” “맞아요, 사실 더 바랄 게 없죠. 물론 이러다 공부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지지만….”
모두 같이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끄덕.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혹시라도 생각의 ‘다름’을 들킬까 싶어, 아니, 생각의 ‘차이’가 드러날까 싶어 나는 더욱 힘주어 맞장구를 쳤던 것 같다. 다행이지, 다행이지…. 근데, 우리의 안위를 나누기 위해 저 영화가 필요했던 걸까? 차별이 아닌 다름을 받아들이는 영화가 상영되는데 현실의 우리는 ‘차이’를 더욱 굳건히 인식하며 ‘그들과 다른’ 우리를 안도하고 견고히 지켜 가고 있었다. 이게 과연, 정말로 ‘정상적인’ 걸까?
사회의 커다란 논의와 대안은 갈수록 확장되지만 아이를 키우며 마주하는 세상은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욱 좁게 느껴진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가능성’이 지역으로, 동네로,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로, 촘촘히 스며 들기엔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일까. ‘올바름’과 ‘예의’에 대한 나의 강박은 어쩌면 나와 아이와 우리 가족이 한국 사회에 무사히 살아남아야 한다는, 부디 안전히, 무난히 당도해야 한다는 두려움은 아니었을까.
<<그냥, 사람>>을 읽고 나서, 책에서 각자의 ‘우물’을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의 우물은 각각의 우물이 만나 모일 수도 있지 않을까. 더 커지고,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계속 작게, 작디작게 남아 있는 우물도 있을 듯했다. 눈에 잘 띄지 않고, 어떤 이에게는 구정물 정도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곳에, 존재하는, 우물들. 나의 우물은 어디에, 그리고 내 아이의 우물은 어떻게, 존재해야 할까.
나만을 향한 아이의 질문은 조금씩 줄어드는데, 내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꾸 늘어간다.
202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