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에너지를 쏟아
잘하는 것에 집중해

못하는 것은 어차피 노력해도 잘 되지는 않아.

by 양소영 코치

회사 첫날부터 엑셀로 꼬인 인생이었다.

대학원 다니며 팀플 하느라 ppt는 눈감고, 졸면서도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회사에 들어왔는데 이 회사는 ppt보다 엑셀을 100배는 더 많이 하는 회사였다.


왜 교수님은 말해주지 않았을까? 마케터의 능력 중 하나가 엑셀질이라고. 엑셀과 야근은 정의 상관지수를 가지고 있었고, 대학교 때 잠시 잠깐 교양과목으로 배웠던 엑셀은 이미 내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방을 빼고 청소하고 나간 후였다.


엑셀을 배울 시간이 없이 엑셀로 data를 가공해야 하는 일은 매일 야근으로 이어졌다.

특히 경영계획을 세우는 8월이면 사원, 대리 급들은 새벽까지 엑셀을 만지는데, 그때쯤 퇴근의 순서는 엑셀의 능력 순이었다. 7시에 퇴근하는 옆 팀 대리님에게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면 "부러우면 엑셀을 잘해. 악바리로 배워 엑셀 잘하면 너도 내년에 저녁 퇴근이 가능할 거야"라는 대답을 듣기 일쑤였다.


예나 지금이나 숫자에 너무나 감이 없는 나는, 주간 회의부터 연간 경영 계획까지 줄줄이 실수 연발이었다. 만지는 엑셀마다 금을 만들기는커녕 상상 못 할 오류를 내는데, 그것을 찾아내지 못하는 눈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나에겐 너무나 큰 data 들이었고 (옆과 아래 다 만 단위가 넘어가는 엑셀 숫자 가공이라니.) 그 실수를 찾지 못하는 능력 또한 차고 넘쳤다. 손과 눈이 다 똥 멍청이가 되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난 왜 숫자가 안 보이는 것일까..


연구소에서 회의를 하고 회사로 컴백해서 다시 엑셀질을 해야 했던 어느 날. 그날 역시 회의자료 도중 숫자가 틀렸다. 연구원들도 척 보면 아는 숫자를 담당자인 내가 틀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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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에서 강북으로 넘어오는 택시 안, 한강을 쳐다보며 난 또다시 똥 멍청이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었다.

"전 이제 밥도 안 먹고 엑셀을 계속 만져야 하나 봐요. 전 왜 이리 못하죠? 어떻게 하면 엑셀 1등이 될 수 있죠? 제가 하면 될 수나 있는 것일까요? 하아....... 사람들에게 피해가 안 가게 실수라도 안 하고 싶은데..."


이제 회사에 들어온 지 몇 달째. 매일매일이 실수 연발이었던 그때, 결국 한강에 반짝거리는 햇살을 보다 눈물이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옆에 앉은 사수 얼굴을 보면 울 것 같은데 한강을 보면 또 눈물이 나고, 눈을 감으면 애써 참은 눈물이 흐를 것 같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 엑셀만큼이나 막막한 시간이었다.



"보통 못하는 걸 되기 잘하려 엄청 노력하잖아. 근데 애석하게도 그 노력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못 하는 거 죽도록 노력해도 결국 보통 사람들의 평균 정도밖에 못되거든. 그러니, 못하는 것은 그냥 인정해. 뭐 신도 아닌데 어떻게 모든 것을 잘할 수가 있겠어. 그래도 회사 생활을 해야 하니 네가 못하는 것을 남들에게 큰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만들어.

그리고 네가 잘하는 것에 최대한 집중해. 네가 1등 하는 것에 사람들이 기억하고 집중하게 만들어. 제품도 그냥저냥 쏘쏘 한 것들은 그냥저냥 소소하게 팔려. 무엇인가 하나에 1등 하는 제품이면 그걸 필요로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팔리는 거야. 조금 하자가 있더라도 감수하면서. 그게 1등이니까"


택시 안에서 찬란했던 가을 햇살을 뒤로하며 눈도 못 감고 괴로워하고 있는 나의 등 뒤에서 들리던 이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고 내 삶의 기본 설정값으로 남아있다.



그때 내가 잘하던 것은 제품의 콘셉트를 잡는 것이었다. 그래서 콘셉트를 잘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 당시는 본격적인 신제품을 만들기 전 (NPD) 마케터가 콘셉트를 잡은 다음, 소비자 조사를 통과해야 만 연구소와 디자이너 등등의 협조를 받아 제품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한 번도 콘셉트 조사에서 내가 만든 콘셉트가 떨어진 적이 없다.


다음 해에 팀 내에 "엑셀 귀신"이란 분이 들어왔다. 그분은 엑셀은 너무 잘하지만 창의력+상상력이 필요한 콘셉트를 만드는 것은 무척 힘들어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윈윈을 했다. 그분은 내가 보고서를 마치기 전 최종적으로 검토하며 내 엑셀의 오류를 잡아주고, 대신 내가 그분의 신제품 콘셉트에 대해 조언과 가이드를 해드렸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잘할 수 없고, 잘하려고 노력해서도 안되고 잘할 필요도 없다.

나는 왜 못할까? 란 감정에 휩싸여 주저앉지 말고 그 상황을 빨리 인정하고 대책과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좋다. 내가 못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된다. 좌절, 슬픔, 불안, 분노 등의 감정이 나를 휩쓸게 하기보다는 그래 나 이건 좀 못하네. 하고 쿨하게 인정해 버리기를. 그리고 내가 잘하는 것을 찾고 그 능력을 올리는데 에너지를 써야 한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그 장점과 강점이 반짝거리게 만들 것. 그리고 그것으로 나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법을 찾을 것.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일하는 멘탈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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