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모를 수도 있는 거야.

모르는 것은 배우면 된다. 괜히 내 자존심을 깎지 말자

by 양소영 코치

회사에 신입으로 들어가기로 한 전 날, 광우병 사태가 터졌다.

나는 불고기 소스를 담당하는 부서에 들어갔다. 출근 첫날, 내 위에 사수님은 전날 새벽까지 야근을 하다 잠시 근처에서 쪽잠을 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색함을 뛰어넘을 두려움과 무서움으로 나는 달달 떨고 있었다.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지금 현재의 분위기는 내가 축하받거나 챙겨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란 것쯤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곳은 이미 전쟁터였기 때문이다.


"일단 엑셀 raw data를 일자별로 매출 정리해. 광우병 발표 전후 매출 현황을 봐야 하니. "


회사를 들어가기 전에 나름 학교에서 ppt로 팀플 발표는 했고, 무슨 엑셀 수업을 듣기는 했지만, 그때뿐이었지 이렇게 직접적으로 큰 데이터를 만지는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엑셀 줄 수가 몇 만을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드레그를 해도 숨 한번 쉬면 튕겨져 나갔다. 데이터가 너무 많아서 어쩌지? 이걸 어떻게 일자별, 지역별, 제품별로 나누어 보지?


난 3시간을 그 엑셀 시트 1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등 뒤에 날카로운 사수의 눈빛이 느껴졌다.


3시간이나 되는 대책회의에서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대책을 내놓으라는 다그침을 받는 것이 분명한 눈빛이었다


"data는?"


" 그게.. 아직.. "


" 그게..... 왜.... 아직이지?"


죽고 싶었다는 감정이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느껴지는 것을 보니 그땐 진짜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공포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나름 대학원에서 마케팅 전공하고 학점을 잘 받았고, 나가서 마케팅 잘할 거라는 뿜 뿜이 단 3시간 만에 백만 조각쯤 부서져서 흔적을 찾을 수도 없었다. 난 마케터로 재능이 없나 봐. 왜 학교에서는 ppt만 시켰지? 엑셀 못하는 나는 마케팅하면 안 되는 거 같아. 난... 마케터가 되면 안 돼.... 머릿속에 내가 나에게 온갖 말들을 뱉어내면 시궁창을 만들고 있었다.


지나가다 분위기를 감지한 관리팀의 어느 대리님이 얼른 우리 둘 사이에 들어왔다.


"에이~ 모를 수도 있는 거야. 내가 5분 만에 해줄게요. 대리님 잠깐 담배 피우고 와요"


그분은 사수가 18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담배를 피우고 "아.. 오늘 들어온 (아직 이름도 못 외운 ) 신입이 엑셀도 못해."란 이야기를 주변에 한 후 위로받고 올라올 때까지 약 10분 정도 시간을 벌어다 주었다.


"피벗 테이블이라고 들어봤어요? 자 이렇게 이렇게 하면 돼요. 봐봐. 3분이면 되지? 그렇게 드래그 안 하고 cont+shift 에 좌우 버튼 하면 한 번에 딱 잡혀요. 그러고 나서 피벗을 이렇게 하면 돼요 "


그 10분의 시간 동안 나는 지옥에서 천사를 본 느낌이었다.

아, 내가 죽지 않아도 되는구나.

나 마케팅 계속할 수 있겠구나.

내가 출근날 짤리지 않는 거구나.




재능과 실력, 스킬은 같이 갈 수도 있고 따로 갈 수도 있다.

재능이 있지만 스킬을 배울 시간이 없을 경우 나는 재능이 없나 봐..라고 먼저 단정 지어서 포기할 수 도 있다.


우리나라는 그 누구보다 교육사업이 발달되어 있고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도움과 배움으로써 스킬을 익힐 수 있다. 배우면 할 수 있는 일인데 굳이 얼마 없는 나의 자존감과 자신감까지 깎아내리지 않았으면 한다.


모든 일을 다 잘하면 신이 되어 있을 것이고,

모든 일을 다 알면 귀신이 돼서 어디 무당 옆에 자리 잡고 있을 거다.


모르고 못하니까 사람이다


다만 내가 무엇을 모르는 지를 깨닫고 그것을 배우려 노력하면 된다.


모르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알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때가 진정 위험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