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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무담당 이대리 Apr 14. 2020

Why do you exist,너는 어떨 때 살아있니?

일의 의미#3

Why do you exist?


인스타그램을 돌아다니다 피드에서 한 멋진 청년이 서핑보드를 타고 물었다. 너는 왜 사냐고, 너는 왜 존재하느냐고.

출처: @kory_kirby인스타그램


당신은 왜 존재하나요? 그 질문이 어느새 화두가 되어 한 달여간 내 머릿속 어딘가를 돌아다녔다. 대답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질문이 떠나질 않는 것이다.


질문 자체가 너무 모호했다. 우울할 때에는 그 질문이 책망과 죄책감에 오염된 채 너는 대체 왜 사냐(이 쓸모없는 놈)는 질문인 양 공격적으로 들렸고, 조금 괜찮을 땐 내가 존재하게 된 경위, 그러니까 내 탄생부터 현재까지 모두 돌아보게 만들었다. 과거를 돌아보며 상처 받은 내면아이를 알게 되었고 그와 관련된 영상이나 책들이 눈에 자꾸 들어왔다. 그렇게 얼마간 나의 피해의식, 열등감들에 대해 돌아보고 나니 질문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무얼 위해 존재하는가, 나는 대체 어떤 의미로 남는 사람이고 싶나, 내가 원하는 게 진짜 뭘까.


자꾸 무기력해지는 나와 주변 친구들을 보며 일의 의미를 찾다가 문득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사람은, 왜 사는 걸까? 나는 내 삶에서 뭘 원하는가?' 정답이 없는 질문이었다. 부모님과 주변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을 특별한 의심 없이 따르고 믿다 갑자기 다른 세상에 떨어져 그 모든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라는 과제를 받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특별히 간절한 바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저 죽지 못해 살아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 어디서부터 떠올려야 하는지도 알기 어려웠다.


가끔 공격적으로 들리는 그 질문을 바꿨다. 나는 어떨 때 존재한다고 느낄까? 나는 어떨 때 살아 있는가?


너는 어떨 때 살아있니?


이 질문을 하고 떠올린 맨 처음 장면은 특이하게도 농구를 하던 때였다. 고등학교 때 체육관에서 있는 힘껏 뛰어다니며 농구를 하고 지쳐 쓰러져 체육관 바닥에 드러누워 천장을 보던 때. 심장이 터질 듯 뛰고 귓가에 오로지 내 숨소리만이 가득해서 마치 바다 속에 잠긴 듯한 느낌으로 한동안 가만히 누워있었을 때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힘든 상황들을 겪을 때마다 나를 죽음의 벼랑에서 구해주던, 나를 붙잡고 있었던 건 의외로 내 육체와 감각이었던 것 같다. 최근에야 안 사실이지만 나는 생각보다 생존 본능이 강한, 동물적인 면이 꽤 존재하는 사람이더라. 감각이 예민하고 힘들 때 몸을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칫하면 중독에 빠지기 쉬운 성향이란 것과 일할 때는 시각에 주로 의존하나 휴식할 때는 청각이나 후각을 자극하는 타입이라는 것도 꽤 최근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감각이 자극되고 그걸 스스로 인지할 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내게는 이 말이 더 와닿는지도 모르겠다.

삶의 기쁨은 자신이 의도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창조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 질문에 답한 이후 나는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고, 그 다이어리의 첫 장에 매번 이 문구를 써놓았다. 나의 매일을 의식적 창조의 순간으로 삼겠다는 다짐처럼.


한동안 무기력하던 내게 기쁨을 주는 것은 다이어리를 쓰는 것, 매일 무언가를 의도하고 창조하고 있다는 사소한 성취였다. 그냥 다이어리를 쓰며 나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꽤나 재밌는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과거의 to-do list들은 지나치게 진중했다. 그 리스트들을 쓰는 데 꼭 업무나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을 갖기로 했다. 모닝커피내리기 같은 일상적인 행위들도 내 의도와 창조적 의식의 범위에 넣고 바라보면 마치 명상같은 일이 되고 기쁨과 감사의 순간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을 알고 나니 수면시간을 칠한 보랏빛 덩어리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12시간이 될 때도 많았던 질 낮은 수면시간들이 6시간~ 8시간으로 규칙적인 패턴을 띄었다. 아침마다 일어나기 싫었던 날들이 매일 어떤 재미있고 감사한 순간들로 채울 지 설레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상이 회복되고 나니 또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뭔가 의욕이 생겨나더라. 새로운 일을 벌이고 싶고 이렇게 사소해보이는 일들이 이만큼 기쁘다면 내가 뭔가 삶을 다 바쳐 의도하고 창조하는 일은 얼마나 더 신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향적인 삶, purposeful life 혹은 meaningful life라고 하나? 아무튼 사람들이 뭔가 꿈이나 사명을 가지고 노력하라고 하는 말들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갔다. 나는 내 삶에서 무엇을 하기를 원할까? 나는 왜 존재하는가?왜 살아있는가?


삶의 의미에 대해 드디어 제대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기가 온 것 같다. 요즘은 다시 이 질문을 곱씹어보며 답하는 중이다.

아직은 알 듯 말 듯 흐리멍텅한 기분이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그렇게 자신의 사명을 찾고 확신하며 사는 걸까? 인생선배들의 조언을 좀 더 들어봐야겠다.


Tue, April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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