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인터뷰 - 조선일보 게재
[취재/글: 이준동]
동진쎄미켐(회장 이부섭·이하 동진)은 반도체·디스플레이용 재료, 대체에너지용 재료와 발포제 제조회사다. 1967년 설립돼 PVC와 고무 발포제를 국내 최초로 개발, 국산화에 성공하며 발포제 부문에서 세계 1위로 자리매김한 동진은 이제 'UNICELL'이라는 브랜드의 발포제를 전 세계에 수출하며 연매출 1조원을 이뤄내고 있다.
1980년대 반도체 불모지였던 국내에서 동진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재료 산업에 뛰어들어 '반도체용 감광액'을 미국,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자체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수입에만 의존하던 반도체·디스플레이 전자재료의 국산화를 선도하며 현재 국내에만 총 8개의 사업장을 보유하고 있다. 이어 1999년 대만 현지법인 설립을 시작으로 현재 중화권 16개, 인도네시아 2개, 말레이시아와 일본, 싱가포르와 미국 각 1개씩 총 22개의 해외 법인을 설립해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동진이 탄생하던 1960년대는 우리나라가 산업화의 걸음마를 막 시작하던 시기였다. 서울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동진의 창업자 이부섭 회장은 졸업 후 한국생산성본부의 기술부장으로 입사했다. 안정된 직장이었으나, 그는 획일화된 업무 시스템에 점차 스스로 나태해짐을 느꼈다. '화학'이라는 전공을 제대로 살리지도 못하고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과연 그가 원하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를 느끼던 그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집 안방 한켠에 반응기와 실험 설비를 들여놓고 '폴리스티렌' 생산을 개시했다.
이렇게 폴리스티렌 국산화에 성공한 이 회장은 1968년 시작된 '제2차 경제개발계획'의 영향으로 큰 위기를 맞는다. 정부는 석유화학제품 시장 확대 정책으로 제품의 관세를 없앴다. 하지만 그 제품의 주요 원료인 '스티렌모노머'의 관세는 그대로 유지해 원료의 원가는 오르고, 제품의 가격은 낮아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결국 이를 극복하지 못한 동진의 폴리스티렌 사업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그러나 이 회장은 여기서 주저앉지 않고 다시 사업 자금을 마련해 오늘날 '동진'의 모태가 된 발포제 사업을 시작한다. 발포제는 고무나 플라스틱 같은 고분자 물질에 첨가해 스펀지 등을 만들어내는 필수 부자재다. 신발 밑창, 타이어, 장판, 벽지 등에 다양하게 사용되던 발포제는 당시 국내에서는 전혀 생산되지 않고 거의 전량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러한 배경을 알게 된 이 회장은 동진의 새로운 사업 방향을 '발포제의 개발과 생산'으로 결정하고 야심차게 도전했다.
하지만 발포제 사업 역시 순탄치만은 않았다. 석유파동으로 인한 물가상승으로 인해 결국 1980년 12월 부도를 내기로 결정을 하게 된다. 부도와 법정관리라는 위기 속에서도 이 회장은 동진을 살릴 기회를 모색했고, 마침내 법정관리 8개월 만에 동진은 흑자로 돌아섰다. 이렇게 다시 일어선 동진은 어느덧 53년이라는 세월에 맞서 정밀화학제품 매출 1조원을 달성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장은 "오늘날 동진이 있을 수 있었던 이유가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는 신뢰, 그리고 위기에 굴하지 않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또한 아내 장명옥 의 헌신적인 내조가 가장 큰 힘"이라고 덧붙였다.